6장
6장
1-2. Καὶ εἶδον ὅτε ἤνοιξεν τὸ ἀρνίον μίαν ἐκ τῶν ἑπτὰ σφραγίδων, καὶ ἤκουσα ἑνὸς ἐκ τῶν τεσσάρων ζῴων λέγοντος ὡς φωνὴ βροντῆς· ἔρχου.καὶ εἶδον, καὶ ἰδοὺ ἵππος λευκός, καὶ ὁ καθήμενος ἐπ’ αὐτὸν ἔχων τόξον καὶ ἐδόθη αὐτῷ στέφανος καὶ ἐξῆλθεν νικῶν καὶ ἵνα νικήσῃ.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스테파노스)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개역개정)
『내가 보매 어린양께서 일곱 봉인들 가운데 하나를 여시더라. 그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천둥소리 같은 소리로 이르되, 오라 하더라. 이에 내가 보니, 보라, 흰 말이라 그 위에 탄 자가 활을 가졌고 월계관을 받으매 그가 나아가서 정복하고 또 정복하려 하더라.』 (헬라어 번역성경)
6장의 이야기는 하박국 3장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다. 하박국은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침략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우주 천체가 그렇게 된다는 말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성전이 로마에 의해 파괴되는 모습을 예언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옛성전의
심판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질
것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24장
에서 전쟁에 대한 귀절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6장에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리고 기근, 지진, 박해, 성전의 무너짐이 같은 내용으로 표현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성전은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과 같은 개념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옛사람(옛성전)과 새사람(새성전)과의 관계로 보아야 한다. 옛성전이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진다. 율법주의가 무너지고, 복음으로 세워진다는 것이다. 율법주의가 무너짐은 제사형식, 절기 지키는 것 등의 의식이 사라지고 심령 속에서 성령이 임하셔서 인도하는 바에 따라 가는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짐은 심판을 의미하고 동시에
새성전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므로, 동시에 우리 새사람이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있을 동안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율법에 따라 행동했지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면서 다 흩어지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으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일곱 인 중의 하나를 떼시는데(아노이고)” 아노이고는 복음의 선포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을 때 아노이고(하늘이 열림) 가 등장한다. 하늘이 열리는 것은 복음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시작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말하고 있다.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우렛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네 생물 중의 하나에게 오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 생물 중 하나가 온다. 네 생물은 성소를 이동시키는 전투 대열의 한 부분을 맡은 자들(세
지파)이다. 네 생물은 전쟁과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늘의 군대들이다.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스테파노스)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요한이 본 흰 말을 탄 자는 이미 승리한 것이다. 흰 말을 탄 자는 면류관을 가졌다. 예수님이 이미 승리하셨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승리하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나 제자를 비롯해서 성도는 고난을 겪는 것이다. 세대주의
자들은 흰말을 탄 자를 사탄으로 생각한다. 이미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휴거되고 남은 자들이 이렇게 짓밟힐
것이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3-6절에서『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 말한다. 이 말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도 이와 같은 재앙을 겪는다는
말이다.
말은 스가랴 6장 1절에서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네 병거가 두 산 사이에서 나오는데 그 산은 구리(나하쉬) 산이더라』나하쉬는 구리로 표현되는 바 말씀을 상징한다. 6장 2-8절에서 『첫째 병거는 붉은 말들이, 둘째 병거는 검은 말들이, 셋째 병거는 흰 말들이, 넷째 병거는 어룽지고 건장한 말들이 메었는지라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검은 말은 북쪽 땅으로 나가고 흰 말은 그 뒤를 따르고 어룽진 말은 남쪽 땅으로 나가고 건장한 말은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고자 하니 그가 이르되 너희는 여기서
나가서 땅에 두루 다니라 하매 곧 땅에 두루 다니더라 그가 내게 외쳐 말하여 이르되
북쪽으로 나간 자들이 북쪽에서 내 영을 쉬게 하였느니라 하더라』말은 전쟁을 상징한다. 하늘의 네 바람은 땅의 네 바람과
반대되는 세력이다. 땅의 네 바람은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등으로 표현되었다. 계시록의
네 바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불순종 하는 자들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도구인 것이다. 예수님이 일곱 인중 하나를 떼는 것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
말은 또한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이다. 흰말은 승리의 상징이다. 그리고
흰 색은 정결을 상징한다. 정결한 교회를 위해 예수님이 싸우신다.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하나님이 활을
가졌다. 노아의 심판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무지개로 언약의 증표를 삼았다. 무지개라는 히브리어가 활(케쉐트)이라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4장 3절에서도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전쟁을 위해 그리스도가 활을 가지는 것이다. 이전에는
보잘 것 없는 어린양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셔서 싸우시는 것이다. 이기고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 8-13절에서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그래서 휴거에 대한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다.
스테파노스는 면류관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의 면류관이다. 계시록 9장 7절에서 적그리스도도 면류관과 같은 것을 쓰고 있다고 한다. 면류관이 아니라 면류관과 비슷한 것이다. 계시록 12장 3절에서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디아데마)이 있는데』디아데마는
머리에 둘러 쓴 띠를 의미하는데, 땅의 왕권을 상징한다. 스테파노스와는
다른 개념이다. 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이 쓴 디아데마는
하늘의 왕권을 의미한다. 즉 참 왕권이시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옛성전은 무너지고, 새성전이 등장하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이 등장한다. 예수님은 말탄
자로서 활을 가지고 싸워 이기고 이기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고난이 있을 것이다.
말은 교회를 상징한다. 교회는 성도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로서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이다. 흰말은 승리의 상징이다.
3-4.
Καὶ ὅτε ἤνοιξεν τὴν σφραγῖδα τὴν δευτέραν, ἤκουσα τοῦ δευτέρου ζῴου λέγοντος· ἔρχου.καὶ ἐξῆλθεν ἄλλος ἵππος πυρρός, καὶ τῷ καθημένῳ ἐπ’ αὐτὸν ἐδόθη αὐτῷ λαβεῖν τὴν εἰρήνην ἐκ τῆς γῆς καὶ ἵνα ἀλλήλους σφάξουσιν καὶ ἐδόθη αὐτῷ μάχαιρα μεγάλη.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니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라베인)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개역개정)
『그분께서 둘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들었는데 둘째 생물이 이르되, 오라 하매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위에 탄 자가 땅으로부터 화평을 받도록 하는 권능을 받았으나 그들은 서로 죽이고 또 그가 큰 칼을 받았더라.』 (헬라어 번역성경)
다른 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알로스와 헤테로스가 있다. 알로스는 동질인데 약간 다른 것이고, 헤테로스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붉은 말과 흰말이 완전히 다른 것이 아니라, 거의 동질인 말이라는 것이다. 라베인은 제하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받아드리는 것이다. 평화가 받아드려 지도록 왕의 권세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지만, 둘로 나뉘어져서 싸운다는 것이다. 율법과 복음으로 나뉘어지고 영적 전쟁이 일어난다. 율법에는 복음이 감추어져 있지만, 율법이 율법주의로 가게 되면 복음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율법주의와 복음은 서로 작이 되는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는 것은 율법주의 종말을 의미한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얼굴이 사람같고 독수리가 등장한다. 말이 등장한다. 희말,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이 등장한다. 이 말들은 네 생물과 연결되는
것이다. 사자와 흰말, 송아지와 붉은 말, 얼굴이 사람 같은 이가 검은 말, 독수리가 청황색 말이다. 스가랴에서 나오는 네말과 일치한다. 말은 그리스도의 세상 심판을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인을 떼는 것은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것이다. 흰말은 정결한 신부인 교회를 상징하는데, 예수님은 정결한 교회와
함께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다. 정결한 교회에서 복음을 선포한다. 정결한
말씀을 선포하면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게 붉은 말의 모습이다.
붉은 말은 전쟁을 상징한다.『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참 복음과 가짜 복음의 전쟁이다.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새언약이 선포되면 옛언약과 전쟁이 일어난다. 유대주의와 복음이 전쟁을 한다. 성도에게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자기의 의를 내고자 하는 옛사람과의 전쟁이다.
5-6. Καὶ ὅτε ἤνοιξεν τὴν σφραγῖδα τὴν τρίτην, ἤκουσα τοῦ τρίτου ζῴου λέγοντος· ἔρχου. καὶ εἶδον, καὶ ἰδοὺ ἵππος μέλας, καὶ ὁ καθήμενος ἐπ’ αὐτὸν ἔχων ζυγὸν ἐν τῇ χειρὶ αὐτοῦ. καὶ ἤκουσα ὡς φωνὴν ἐν μέσῳ τῶν τεσσάρων ζῴων λέγουσαν· χοῖνιξ σίτου δηναρίου καὶ τρεῖς χοίνικες κριθῶν δηναρίου, καὶ τὸ ἔλαιον καὶ τὸν οἶνον μὴ ἀδικήσῃς.
『셋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개역개정)
『그분께서 셋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들으니 셋째 생물이 이르되, 오라 하더라. 이에 내가 보니, 보라, 검은 말이라 그 위에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또 내가 들으니
네 생물의 한가운데서 한 음성이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너는 주의하여 기름과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 (헬라어 번역성경)
검은 말은 기근을 상징하는데, 옛사람, 옛성전, 율법이 점차 성도들에게 줄어드는 모습이다. 밤이 낮으로 서서히 바뀌는 모습이다. 요한계시록이 작성될 당시 유대주의자들의
세력이 점차 약해지고 그리스도인들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주의로 돌아가려고
하는 움직이 많이 있었다. 요한은 율법주의로 돌아가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말해준다. 새언약을 따르지 않으면 흰말이 붉은 말로, 검은 말로, 청황색 말로 되는 것이다. 평화가 전쟁으로, 말씀의 기근으로 심판으로 나아가게 된다는 말이다.
아디케세스(ἀδικήσῃς 기본형 아디케오)는 심판하다는 의미다. 메아디케세스는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왜 심판하지
말라는 것인가?
한되(코이닉스)는 밀이 약 1L정도 된다. (군인이
하루 정도 먹는 양), 한 데나리온에 12L를 살 수 있었는데, 한 데나리온에 한 되밖에 살 수 없다는 말이다. 한 데나리온에 밀을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 산다는 것은 물가가 엄청나게 높다는 의미다. 밀은 보리보다 세배 비싼 것으로 보여진다. 로마 당시 엄청난 흉년으로
기근이 심했던 것으로 밝혀진다. 밀 보리는 곡식이고, 밀
보리는 떡을 만드는 재료이다. 밀과 보리는 옛사람, 돌성전을
나타낸다. 그리고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다. 율법의 상징은
모세이고,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제사와 관련이 있다.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떡맡은 관원장과 술맡은 관원장이 함께 있었다. 그들이
꿈을 꾸고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는데, 떡 맡은 관원장이 죽는다. 술맡은
관원장이 살고 그로 인해서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해 주고, 총리가 된다.
노아가 방주에서 내려와 포도나무를 심고 자기 장막 안에서 포도주를 마셨다. 안식이라는 의미다. 포도주는 하나님 나라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떡은 아침(알파)의 음식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저녁 음식(오메가)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은 죽고, 새창조가 되어 새사람이 부활하여 사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광야에서는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시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면 마셔라고 하신다. 포도주는 언약과 안식의 성취를
의미한다. 예수님의 첫번째 표적이 가나 혼인잔치에서 물(율법)로 포도주(복음)를 만드는
것이다. 포도주는 결혼 잔치에 등장하는 술이다. 예수님이
마지막 십자가에서 신포도주를 마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 종말의 음료가 바로 포도주인 것이다. 종말은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날이 된다. 옛사람이 죽는 것이 종말이다. 이때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마시는 자는 심판하지 않는 것이다.
감람유는 올리브유인데, 색깔이 금색이다. 그래서, 금(자하브)을 상징한다. 창세기 2장 11-12절에서『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성전의 모든 기물은 조각목으로 되어 있으며, 올리브유를 바르고, 금을 칠했다. 이는 변하지 않는 영원성을 나타낸다. 올리브유는 기름을 붓는 의식에 사용된다. 메시야(헬라어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다. 그리고 기름은 성령을 의미한다. 올리브유를 심판하지 말라는 의미는 성령으로 거듭나는 자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감람유와 포도주는 새하늘, 새생명, 복음을 상징한다. 심령 속의 성전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는 여호수아 예수이다.
7-8. Καὶ ὅτε ἤνοιξεν τὴν σφραγῖδα τὴν τετάρτην, ἤκουσα φωνὴν τοῦ τετάρτου ζῴου λέγοντος· ἔρχου.καὶ εἶδον, καὶ ἰδοὺ ἵππος χλωρός, καὶ ὁ καθήμενος ἐπάνω αὐτοῦ ὄνομα αὐτῷ [ὁ] θάνατος, καὶ ὁ ᾅδης ἠκολούθει μετ’ αὐτοῦ καὶ ἐδόθη αὐτοῖς ἐξουσία ἐπὶ τὸ τέταρτον τῆς γῆς ἀποκτεῖναι ἐν ῥομφαίᾳ καὶ ἐν λιμῷ καὶ ἐν θανάτῳ καὶ ὑπὸ τῶν θηρίων τῆς γῆς.
『넷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넷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개역개정)
『그분께서 넷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들으니 넷째 생물의 음성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더라 이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창백한 말이라. 그 위에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와 함께 따라다니더라. 그들이 땅의 사분의 일을 다스릴 권능을 받아 칼과 기근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과 함께 죽이더라.』 (헬라어 번역성경)
넷째 생물은 독수리이다. 청황색말은
클로로스(χλωρός)로서 클로로스는 암갈색이다. 청색과
황색이 섞여있다. 청황색은 시체를 의미한다. 네번째인은 두번째
세번째 인을 다 포함한다. 점층적인 모습이다.
마태복음 24장 28절에서『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주검은 시체를 의미한다.
말을 탄자의 이름이 사망이다. 의인화하고 있다. 그들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인다고 했다. 역대상 21장
12절에서『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칼 기근 전염병이 등장한다. 예레미야 14장 12절에서『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에스겔 5장 12절에서『너희 가운데에서 삼분의
일은 전염병으로 죽으며 기근으로 멸망할 것이요
삼분의 일은 너의 사방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삼분의 일은 내가 사방에 흩어 버리고 또 그 뒤를 따라 가며 칼을 빼리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ὑπὸ) 죽이더라』말탄 사람은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받았다. 사분의
일은 사(전체)의 일부분을 의미한다. 부분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나팔심판에는 삼분의 일로, 대접 심판에서는 전체로 심판하는 모습이다. 사분의 일, 삼분의 일, 전체로 심판이 확대되어 가는 것이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을
보면 심판의 저주 모습을 그린다. 복음이 없으면 그렇게 칼 기근 전염병으로 죽는 것을 표현했다. 언약적 저주가 유대인들에게 떨어졌다. 메시야가 그들에게 왔는데, 그들이 원하는 메시가 아니므로 십자가에서 죽인 것이다. A.D. 70년경에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자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하나님이 돌 성전을 무너뜨렸으며, 여전히 복원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새언약으로 인해 새성전인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기 때문이다. 심령
속의 성전이 세워지지 않으면 이와 같은 저주가 내려질 것이다. 하나님 나라(예수 그리스도)가 성도에게 임하면 성도에게는 전쟁이 일어난다. 하나님 나라를 거부하는 자들이 공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새질서를
거부하는 자들은 반드시 죄의 값(사망)을 받는 것이다. 말씀이신 호로고스를 받아드리지 않는 자는 마지막은 사망이라는 말이다. 이방인이
로마의 군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그렇게 당한 것이다. 교회 안의 이야기다. 교회 안에서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믿지 않는다면 이와 같이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를 자기가 생각하는 육체가 죽어서 가는 나라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말씀의 검을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말씀을 찾지 못하면 기갈의 상태가 된다. 그들은 말씀의 기갈이 될
것이다. 말씀의 기갈이 계속되면 죽음이 오는 것이다.
휘포(ὑπὸ)는 ~와 함께, ~에 의해서 라는 의미다.
청황색 말을 탄자는 혼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땅에 있는 짐승들과 더불어 검과 흉년과 사망으로 사분의 일을 죽인다는 것이다. 이 짐승은 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24장 1-13절에는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전쟁 기근 사망이 다 포함되어
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짐승들, 교회 안의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하는 자들이다.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는 자들은 거짓 성도들이다. 마지막은 사망이고 음부로 간다. 오늘날 교회에서 거짓 선지자들은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신비주의)자들이다. 예수님이
율법주의가 진리가 아님을 돌 성전의 파괴를 통해서 보여주셨다. 성도 역시 심령 속의 옛사람이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져야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거의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에 잠식을 당한 모습이다. 생명이 없고 형식만 강조한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없고, 현재적 부활은 없고, 죽음 후의 하나님 나라, 먼미래의 부활을 생각하는 죽은 자들이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이 타신 흰말로 표현된다. 그래서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면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교회
안에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 성전을 말하면 믿지 않고 공격한다. 전쟁이
시작되면 그 말이 심판으로 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붉은 말로, 말씀의
기근(검은 말)으로, 그래서
결국 사망(청황색 말)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9. Καὶ ὅτε ἤνοιξεν τὴν πέμπτην σφραγῖδα, εἶδον ὑποκάτω τοῦ θυσιαστηρίου τὰς ψυχὰς τῶν ἐσφαγμένων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διὰ τὴν μαρτυρίαν ἣν εἶχον.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과 그들이 가진 증거(마르튀리안)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프슈카스)이 제단 아래에 있어』(개역개정)
『그분께서 다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내가 제단 아래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들이 간직한 증언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자들의 혼들을 보니』 (헬라어 번역성경)
인을 떼는 것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땅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땅의 현상은 말들을 통해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한다.『혼들(프슈카스)이 제단 아래에 있어』성전에는 제단이 둘이 있다. 성소 뜰의 번제단과 성소 안의 분향단이다. 여기에는 기도와 연관이
있으므로 분향단을 의미한다. 성막의 기물들에는 번제단, 물두멍, 떡상, 등잔대, 분향단이
있다. 분향단은 다섯번째에 있다. 다섯번째 인을 떼고 제단이
등장한다. 오(5)라는 숫자는 기도와 관계가 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6장 9절은 분향단의 위치에서 기도하는 장면이다.
제단 아래 있는 푸쉬케들(혼), 성막으로는 성소에 있는 자들이다. 구원의 여정으로는 광야 있는
자들이다. 구원이 완성된 자들이 아니라 진행형인 것이다. 죽임을
당한 푸쉬케가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푸쉬케의 모습이다. 옛사람이 죽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그려놓은 것이다. 혼은 영에 의해서 침노당해야만 한다. 옛혼은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는데, 빨리 끝나지 않은 것이다.
교회(성도)는 이땅에서 십자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옛사람의 죽음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다. 옛사람이 죽임을 당해야
새사람이 살게된다. 성도는 새사람을 위해 옛사람이 원하는 것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를 가지므로 육체를 통해서 옛사람이 새사람을 억압하는 것이다. 옛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세상 사람들이 저주하게 된다. 마치 실패한
자인 것 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그 옛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다시 새사람의 모습을 기억하고 구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6장은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 일어나는 일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첫째 인은 흰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점차 신앙이 희미해져간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희미해지고, 여전히 옛사람의 모습과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가 결합되어 점차 붉은 말,
검은 말, 청황색 말로 죽음을 향하여 달려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6장 9절에서 참 성도는 다섯번째 인을
떼는 자들이다. 성도는 실패하고 환란 당하고 고난 중에 있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24장 9절에서『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태복음 5장 11-12절에서『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요한복음 15장 20절에서도『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죽이는 자들이 다름 아닌 교회 안에 있는 자들이다. 기복신앙과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에 사로 잡힌 자들이 성도를 죽이려 한다는 말이다. 참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지금 현재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는
순교자의 삶을 살게 된다. 생생명을 받은 자들에게 일어나는 현상들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성도의 심령 속으로 침노해 들어오셔서 옛사람을 죽게 하신다. 그렇게 하기
위해 성도를 환란과 고통 속으로 빠뜨리게 된다. 그래서 그 환란 속에서 성도는 프로슈케 기도를 통해서
오직 하나님 만을 바라볼 때, 성도의 옛것이 부셔지는 것이다.
10-11. καὶ ἔκραξαν φωνῇ μεγάλῃ λέγοντες· ἕως πότε, ὁ δεσπότης ὁ ἅγιος καὶ ἀληθινός, οὐ κρίνεις καὶ ἐκδικεῖς τὸ αἷμα ἡμῶν ἐκ τῶν κατοικούντων ἐπὶ τῆς γῆς; καὶ ἐδόθη αὐτοῖς ἑκάστῳ στολὴ λευκὴ καὶ ἐρρέθη αὐτοῖς ἵνα ἀναπαύσονται ἔτι χρόνον μικρόν, ἕως πληρωθῶσιν καὶ οἱ σύνδουλοι αὐτῶν καὶ οἱ ἀδελφοὶ αὐτῶν οἱ μέλλοντες ἀποκτέννεσθαι ὡς καὶ αὐτοί.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개역개정)
『그들이 큰 음성으로 울어 이르되, 오 거룩하고 진실하신 주여, 주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사 우리 피에 대한 원수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는 일이 얼마나 더 지속되리이까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각각 흰 예복을 주시며 또 그들의 동료 종들과 형제들도 그들처럼 죽임을 당해 그 수가 차기까지 그들이 아직 잠시동안 안식해야 한다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더라.』 (헬라어 번역성경)
마태복음 4장 1-3절에서『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광야 시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 네 힘으로 증명해보라는 것이다. 성도에게도 같은 시험이 들어온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백성답게 해보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면 복을 받은 증거를 대 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철저히 율법의 계명을 근거로 거룩한 자로서 모습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리고 복을 받은 자라는 것을 나타내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을 한다. 죽임을 당하는 순교자의 삶을 살아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1장 6절에서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영혼이라고
번역된 것은 혼(푸쉬케)이다. 옛혼은 죽어야 새혼(영의 몸)으로
갈아입게 된다. 혼의 죽음은 곧 영생으로 이어진다. 신명기
8장 2-3절에서『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2-26절에서『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성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자아를 부인하고 옛사람이 죽으라는 것이다. 내 생각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방향을 돌리라는 것이다.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성도가 고난 속에서 언제까지 이렇게 옛사람(옛성전)에게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지 호소하는 것이다. 옛성전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 위한 기도인 것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듯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때 무너질 것이다. 출애굽한 백성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광야에서 약 200만명의 옛사람이 다 죽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과 출애굽시 20세 미만의 아이들만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천국,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완전히 세워지려면
옛사람의 성전이 무너져야만 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히브리서 11장 31-40절에서『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7장은 하나님 나라의 성전이 세워지는 모습을 그리는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죽임을 당한 수가 차야 한다고 말을 한다. 궁극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것은 육체적인 죽임이 아니라, 자기 옛사람(혼)의 죽음을
의미한다. 옛사람의 죽음이 없으면 흰 두루마리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흰옷은 하나님의 의의 말씀이다. 인을 뗄 때 흰말이 등장하고 신앙이 퇴색될 때, 붉은색, 검은색, 청황색으로
되는 것이다.
성도의 옛사람이 죽는 것은 새사람이 사는 것이며, 율법에 대해서 죽고, 성령에 대해서 사는 것이다. 새사람이 되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가 부활하여 살아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흰옷을 입혀주시면) “나”라고 생각한 혼(옛사람)을 죽이고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을 한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심령 속의 하나님 말씀(호
로고스)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 수가 차기까지』라는 말은 성전에 관한 이야기로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을
말한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예루살렌 성전이 40일 후에
무너졌다. 성도의 옛성전도 이렇게 무너져야만 한다는 말씀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해진 숫자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 속에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지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그 과정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성도에게 흰옷을 주시는데, 흰옷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성도로 인정을 하시는데,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옛성전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성소의 제단에 있으며, 광야에 있으며, 요단강을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면 여리고 성이 기다리고 있고, 계속해서 무너뜨려야
할 것들이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것은 성소와 지성소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휘장이 갈라지듯이 성소에 머물러 있는 성도가 지성소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것이『그
수가 차기까지』라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의 휘장이 갈라지는 때는 바로 옛성전이 무너지는 때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때이다.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믿는 그 때가 바로 이 때인 것이다. 이는 하나님 만이 결정하시고 아시는 것이다.
12-14. Καὶ εἶδον ὅτε ἤνοιξεν τὴν σφραγῖδα τὴν ἕκτην, καὶ σεισμὸς μέγας ἐγένετο καὶ ὁ ἥλιος ἐγένετο μέλας ὡς σάκκος τρίχινος καὶ ἡ σελήνη ὅλη ἐγένετο ὡς αἷμα καὶ οἱ ἀστέρες τοῦ οὐρανοῦ ἔπεσαν εἰς τὴν γῆν, ὡς συκῆ βάλλει τοὺς ὀλύνθους αὐτῆς ὑπὸ ἀνέμου μεγάλου σειομένη, καὶ ὁ οὐρανὸς ἀπεχωρίσθη ὡς βιβλίον ἑλισσόμενον καὶ πᾶν ὄρος καὶ νῆσος ἐκ τῶν τόπων αὐτῶν ἐκινήθησαν.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개역개정)
『내거 보니 그분께서 여섯째 봉인을 여신 뒤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머리털로 짠 상복같이 검게 되고 달은 전체가 피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강풍에 흔들려 설익은 무화과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은 두루마리가 함께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며 모든 산과 섬도 그들의 자리에서 옮겨지매』 (헬라어 번역성경)
구원에 대한 묘사를 창조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주의 창조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을 새창조로 표현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4장 6절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에베소서 2장 10절에서는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크리스텐테스)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크리스텐테스(κτισθέντες)는 창조물이다. 골로새서
3장 10절에서는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구원의 반대되는 개념이 심판이다. 창조(creation)에서
역창조(타락decreation), 재창조(recreation)라는 말이 있는데, 역창조는 심판이라는 개념이다. 땅이 풀어지고, 천지(우주)가 붕괴되고 하는 용어들이 등장한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심판을 역창조로 볼 수 있다. 해, 달, 별들이 어두워지는 내용이 등장하기도 하고, 흔들리고, 피가 쏟아지는 내용들이다. 역창조가 있으면, 그 다음에는 새창조가 일어난다. 성도의 심령 속으로 보면 옛사람의
붕괴가 일어나면 새사람이 창조되는 것이다.
12-14절의 내용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한다. 비슷한
내용들이 선지서에 있다. 이사야 13장 10-13절에서 『하늘의 별들과 별 무리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추지 아니할 것이로다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분하여 맹렬히 노하는 날에 하늘을 진동시키며 땅을 흔들어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리니』이 이야기는 하나님이 바벨론을 심판하겠다는 의미다.
이사야 34장 4-5절『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여호와의 칼이 하늘에서 족하게 마셨은즉 보라 이것이 에돔 위에 내리며 진멸하시기로 한 백성 위에 내려 그를 심판할 것이라』이 내용은 하나님이 에돔을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에스겔 32장 6-8절 『네 피로 네 헤엄치는 땅에 물 대듯 하여 산에 미치게 하며 그 모든 개천을 채우리로다 내가 너를 불 끄듯 할 때에 하늘을 가리어 별을 어둡게 하며 해를 구름으로 가리며 달이 빛을 내지 못하게 할 것임이여 하늘의 모든 밝은 빛을 내가 네 위에서 어둡게 하여 어둠을 네 땅에
베풀리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이 말씀은 애굽에 대한 심판의 예언이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내용이 주로 이방 국가들에 대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요한계시록도 선지서와 같이 해석해야만 한다. 당시 요한의
편지를 받은 자들은 A.D. 1세기에 살았던 교회 사람들이다. 요한계시록은
창세기부터 성경 전체의 귀절과 연계되어 있지만, 특히 마태복음 24장의
감람산 설교와 직결된다. 24장은
예루살렘 성전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다. 그 용어들이 마치 천체에 대한 변화와 하늘의 권능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자연계의 파괴가 아니라, 성전 파괴에 대한 것을
묘사한 것이다. 즉 역창조의 모습이다. 24장 19-33절을 보면,『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나님 나라가 돌 성전에서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 속에서 옛성전인 옛사람(첫사람 아담)이 무너지고, 새성전인 새사람(마지막
사람 아담)이 등장하는 것이다. 옛사람은 심판을 받고, 새사람이 창조되는 것이다. 심판은 이렇게 재창조되는 구원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회개가 들어있다.
요엘 2장 10절에서『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2장 28-32절에서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3장 15절에서『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그 빛을 거두도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부르짖고 예루살렘에서 목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주의 날”에 유다 적국에 대한 심판을 예언하는 장면이다. 심판을
하는데, 회개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을 한다.
“주의 날”에 대한 성경 귀절은 아모스 5장
18-20절에서『화 있을진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냐 그 날은 어둠이요 빛이 아니라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여호와의 날은 빛 없는 어둠이 아니며 빛남 없는 캄캄함이 아니냐』주의 날에 대해서 이사야에서도 여러 귀절이 있다.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구원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심판이
된다는 말이다. 예레미야 30장, 스바냐 1장에서도 말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날을 기다려 왔다. 대적들을
물리치는 신원의 날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모스 선지자는 그날이 오히려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사야 예레미야는 심판과 구원이 함께 등장하는 것이다. 결국 여호와의 날은 1차적으로는 심판이요, 남은 자들에 대해서는 구원의 날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오순절날 요엘서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선언했다. 사도행전 16-21절『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사도바울은 여호와의 날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심판)과 부활(구원)으로 연결했다. 베드로는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 것이 오순절(성령이 임한 날)과 연결된다. 요한계시록은
옛성전이 파괴되고 하나님 나라가 교회로 옮겨진다는 것을 이런 무시무시한 용어를 등장시켜 설명한다. 마찬가지로
성도의 심령 속에서 옛성전(옛사람)이 무너지고, 새성전(새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율법으로 육적 이스라엘을 심판하고, 복음으로
영적 이스라엘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마태복음 21장 19절에서『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여기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하며, 심판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해, 달, 별은 옛언약(옛하늘)을
의미한다. 유대의 지도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지도자가 율법을
담당했는데 율법은 백성에게 빛이 되었다. 빛을 잃었다는 것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권위가 떨어진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들은 메시야를 거부했으므로, 하나님이 새로운 시대를
여는 것이다. 율법의 시대에서 복음(새하늘)의 시대로 바뀌는 장면이다.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하늘에 대해서 이사야 51장 13-15절『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일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하늘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창세기에서 하늘을 율법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 옛하늘이 없어진다는 말이다. 베드로후서 3장 12-13절에서『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스토이케이아]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스토이케이아(στοιχεῖα기본형은 스토이케이온)는 갈라디아서 4장 3절에서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초등학문이 스토이케이온 이다.
골로새서 2장 8절에서도 같은 표현이다. 초등학문은 율법이고 옛언약이고, 옛사람이다. 이들은 파괴되고 다시 새창조로 이어진다. 그리스도 복음, 새하늘,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베드로는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으면 안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옛것은 물질이 풀어지듯이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나내 한다는 말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은 사라지고
새성전인 새사람이 등장하는 것이 초보학문을 넘어가는 과정이다.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마태복음
21장 21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이 말씀
앞에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내용이 나오고 이 말씀이 이어진다. 옛성전이 사라지고 새성전이 등장하는 것이
마치 산을 옮기는 것처럼 이루어진다는 말을 하고 있다. 산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을 상징한다. 산이 바다로 가는 것이다. 산이 바다에 떠있는 모습이다. 바다는 이방인의 구원의 대상이기도 하다. 유대인에게서 이방인으로
구원이 이동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산을 묘사하는 성전이 바다(이방인)로 이동하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26-28절에서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성도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는 것이다.
15-17. Καὶ οἱ βασιλεῖς τῆς γῆς καὶ οἱ
μεγιστᾶνες καὶ οἱ χιλίαρχοι καὶ οἱ πλούσιοι
καὶ οἱ ἰσχυροὶ καὶ πᾶς δοῦλος καὶ ἐλεύθερος
ἔκρυψαν ἑαυτοὺς εἰς τὰ σπήλαια
καὶ εἰς τὰς πέτρας τῶν ὀρέων καὶ λέγουσιν τοῖς ὄρεσιν καὶ ταῖς πέτραις· πέσετε ἐφ’ ἡμᾶς καὶ κρύψατε ἡμᾶς ἀπὸ
προσώπου τοῦ καθημένου ἐπὶ τοῦ θρόνου καὶ ἀπὸ τῆς ὀργῆς τοῦ ἀρνίου, ὅτι ἦλθεν
ἡ ἡμέρα ἡ μεγάλη τῆς ὀργῆς αὐτῶν,
καὶ τίς δύναται σταθῆναι;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개역개정)
『땅의 왕들과 위대한 자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노예와 자유로운 자가 동굴과 산들의 바위들 속에 숨고 산들과 바위들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분의 얼굴과 어린양의 진노로 부터 우리를 숨기라. 그분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헬라어 번역성경)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일곱
종류를 나타내었는데, 세상의 모든 종류의 사람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이 예외없이 여호와의 날에 이른다. 그때 누가 설 것인가 라는 것이다. 이 말은 누가 하나님 앞에서 진리로 서게 될 것인가 라는 말이다. 그
대답이 계시록 7장에서 십사만 사천으로 설명한다. 유사한
표현이 나흠 1장 6절에서 등장한다.『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말라기 3장 1-2절에서도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바 주가 갑자기 그의 성전에 임하시리니 곧 너희가 사모하는 바 언약의 사자가 임하실 것이라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저주 아래 있는데, 숨었다는 것이다.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이 말은 처음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모습이다. 땅의
임금들은 성전 안에서 지위를 가지고 일을 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이들은 대제사장 그룹들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였으므로 그리스도 앞에서 두려워 숨는 것이다.
누가복음
23장 44-45절에서『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마가복음 15장 33절에서도 같은 말씀이다. 마태복음
27장 50-54절에서『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요한계시록 6장의 여호와의 날의 모습과 같다. 여호와의
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즉음과 부활을 의미한다. 이는 마태복음 23장에서 돌 성전(율법)이
무너지고(십자가의 죽음) 새성전(예수님의 부활)인 세워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성도의 심령 속에서 옛사람(옛성전)이 죽고, 새사람(새성전)이 등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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