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장
1.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Ἐφέσῳ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κρατῶν τοὺς ἑπτὰ ἀστέρας ἐν τῇ δεξιᾷ αὐτοῦ, ὁ περιπατῶν ἐν μέσῳ τῶν ἑπτὰ λυχνιῶν τῶν χρυσῶν·
『에베소 교회의 사자(토 앙겔러)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개역개정)
『에베소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등잔대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헬라어 번역성경)
토 앙겔로는 메신저(교회 지도자)다. 일곱 별은 교회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의미한다. 당시에는 일곱 교회를 지칭했으나, 오늘날 모든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시대별로 교회의 모습을 일곱개의 교회와 연계헤서 설명하는데, 요한은 신속히 이루어질 것이라고 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종말적인 교회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이는 종말적인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관계없는 언약적 관점에서 모든 교회의 모습인 것이다. 2장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1장에서 언급하는 바와 같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등잔대의 한가운데를 거니는 이"
타데 레게이(Τάδε λέγει)는 마치 법정 형식의 소송장 처럼 ~가 말했다 라는 것이다. 편지의 형식을 넘어서 선지서의 말씀 형식을 띤다. 일곱은 언약의 완성으로 표현된다. 이기는 자에게 주는 상급을 언급한다. 경고의 말씀과 칭찬이 섞여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각 교회에 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에베소 교회는 등잔대를 언급한다. 인내라는 의미를 가진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등잔대를 옮기겠다는 것이다. 교리를 잘 지키는데,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말이다. 진리의 핵심은 사랑인데, 말은 진리를 잘 지킨다고 하는 것이다. 니골라당이 등장한다.
서머나 교회는 몰약(죽음)을 상징한다. 환란가운데, 부요한 모습이다.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신다. 신실한 자가 되라는 것이다. 핵심 대적은 유대인이다. 유대인(율법주의)은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한다. 유대인이라는 표현은 오늘날 시대에도 율법주의로 적용된다. 그것을 경계하라는 말이다.
버가모 교회는 날선 검으로, 회개하지 않으면 검으로 싸우시겠다는 것이다.
발람이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짐승(발락)과 거짓 선지자(발람)로 등장한다.
두아디라 교회는 눈이 불꽃같고 발이 풀무불에 단련된 것과 같은 모습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말한다. 그래서 불꼴같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살핀다.대적하는 자로 이세벨이 등장한다. 계시록 17장의 음녀를 상징한다.
사데교회는 일곱 별과 일곱 영으로 표현된다. 몇몇 사람 외에는 온전함을 찾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일곱영은 온전한 말씀을 의미한다. 사데교회 처럼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포로기의 모습이다. 계시록 18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나타낸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다윗의 열쇠와 관련이 있다. 메시지는 열린 문이다. 열쇠를 열고 문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대적하는 자가 유대인(사탄의 회당)이다. 빌라델피아 교회는 승리하는 교회의 모습이다. 계시록 19장에서 예수님이 앞장서고 뒤따르는 성도들의 군대의 모습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충성된 증인으로 상징된다. 이기는 자에게 보좌에 함께 앉게 하신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의 귀로에 서 있는 교회의 모습이다.
니골라당, 발람, 이세벨은 같은 의미를 갖는다. 니골라는 니콘(승리)관 연관된다. 백성에게 승리는 자가 니골라이다. 발람은 히브리어로 비르함(1077)이다. 실패, 부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백성을 부패시킨다. 히브리어 비르함이 헬라어 발람과 같은 것이다. 니골라당은 비진리로 백성을 미혹하는 무리들이다.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것이다. 발람은 민수기에 등장하는데, 이스라엘을 행음에 빠지게 하여 더럽히게 만든 자이다. 이세벨은 악녀로 등장했다. 아합 왕의 왕비였다. 엘리야를 대적하고 죽이려 한 여자였다. 이세벨이 섬긴 신은 바알과 아세라 신이었다. 남자 신과 여자 신의 행음을 하게 하는 것이다. 백성들로 하여금 행음을 하게 하여 신을 깨워 풍요가 일어난다는 원리다. 농사의 신이였다. 위의 세사람은 행음과 우상과 관련이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도 교회 안에서 다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면 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세상의 축복, 번영을 비는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 신앙을 갖는 자들이 다 이런 유형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기도와 찬양이 이런 자기를 위한 신을 깨우는 것이 될 수 있다. 초대 기독교에서는 이방인이 교회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우상의 제물 먹는 것과 음행을 삼가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사도행전 12장). 니골라를 따르는 자들이 이런 것들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니골라당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율법의 때는 지나갔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다. 육은 악하고 영은 선하다 은혜의 시대이므로 영의 시대라는 것이다. (영지주의) 은혜로 구원받기 때문에 육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니골라당은 율법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이들도 영지주의의 한 분파이다. 영적지식으로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나쁜 것이 아니지만, 오직 이것만 추구하는 자들이 있었다. 특별한 지식이 없는 자들은 구원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지식이 있으면 하늘의 백성이 된다는 식이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라고 말한다.
자칭 유대인들은 율법주의(유대교)를 나타내었다. 계시록은 이들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말했다. 그 당시 얼마나 극성을 떨었는지 알 수 있다. 복음과 율법주의로 혼합시키는 것이다. 주로 복음으로 들어왔지만, 할례도 해야한다는 식이었다. 율법주의는 율법의 규정을 철저히 지켜서 육을 통제해야 한다는 식이다. 이들도 영지주의와 연계된다. 그들은 금욕주의들이다.
2. οἶδα τὰ ἔργα σου καὶ τὸν κόπον καὶ τὴν ὑπομονήν σου καὶ ὅτι οὐ δύνῃ βαστάσαι κακούς, καὶ ἐπείρασας τοὺς λέγοντας ἑαυτοὺς ἀποστόλους καὶ οὐκ εἰσὶν καὶ εὗρες αὐτοὺς ψευδεῖς,
『내가 네 행위(에르가)와 수고(텐 코톤)와 네 인내(휘포모네)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바스타사이)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휴레스) 것과』 (개역개정)
『내가 네 사역과 바로잡음과 보좌에 머무는 인내와 또 네가 사악한 자들을 세우지 않음을 아노니 스스로 사도라고 말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네가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하는 자들임을 찾아내었으며』 (헬라어 번역성경)
에베소 교회가 잘 하는 것에 대해서 말하는데, 에르가는 사역을 의미한다. 텐 코톤은 (잘못된 것을)잘라내다 라는 의미다. 휘포모네는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서 머물러있는 것을 의미한다. 바스타사이는 들어올리다 세우다는 것이다. 즉 악한 자들을 세운다는 것을 할 수 없다는 말이다. 휴레스는 (악한 자를) 찾아내다 라는 의미다. 악한 자들은 니골라 당의 거짓된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무율법주의로 육신은 악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 가르쳤다.
3. καὶ ὑπομονὴν ἔχεις καὶ ἐβάστασας διὰ τὸ ὄνομά μου καὶ οὐ κεκοπίακες.
『또 네가 참고(휘포모넨)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에바스타사스)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개역개정)
『또 네가 보좌에 나아가 머물고, 내 이름을 위하여 사역자를 세우고, 지쳐 쓰러지지 않은 것을 아노라』 (헬라어 번역성경)
휘포모네는 보좌에 나아가 머무는 것이고, 에바스타사스는 들어올리는(사역자로 세우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네가 보좌에 나아가 머물고, 내 이름을 위하여 사역자를 세우고, 지쳐 쓰러지지 않은 것을 아노라』라는 것이다.
4. ἀλλ’ ἔχω κατὰ σοῦ ὅτι τὴν ἀγάπην σου τὴν πρώτην ἀφῆκες.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아가펜)을 버렸느니라』(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기 때문이라.』 (헬라어 번역성경)
아가펜은 이웃의 영을 살리는 것이다. 진심은 식어버리고 의무감으로 수고하고, 인내하며 버티는 신앙의 모습을 꾸중하신 것이다. 처음 사랑은 성령세례를 받고, 이웃의 영을 살리려는 사명을 받은 때를 의미한다. 첫사랑을 잃어버린다는 말은 사역의 목표가 잘못되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일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는 정도로 모범이 되는 삶이 목표가 되는 것처럼 사역하는 것이다.
5. μνημόνευε οὖν πόθεν πέπτωκας καὶ μετανόησον καὶ τὰ πρῶτα ἔργα ποίησον· εἰ δὲ μή, ἔρχομαί σοι καὶ κινήσω τὴν λυχνίαν σου ἐκ τοῦ τόπου αὐτῆς, ἐὰν μὴ μετανοήσῃς.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메타노에손) 처음 행위(에르곤)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네가 어디로부터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돌이켜 처음 사역을 행하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네가 돌이키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메타노에손은 (원래 목적대로) 돌이키라는 것이다. 에르곤은 사역이다. 사역은 영을 살리는 일이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교회가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첫사랑을 잃으면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말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흙에 갇혀 죽었던 영을 살리러 오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올바른 사역으로 돌이키는 것이 곧 첫사랑을 회복하는 일인 것이다.
6. ἀλλὰ τοῦτο ἔχεις, ὅτι μισεῖς τὰ ἔργα τῶν Νικολαϊτῶν ἃ κἀγὼ μισῶ.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개역개정)
『그러나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그것을 미워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니골라 당은 성경에 두 번 언급된다. 에베소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한 번 언급되고, 버가모 교회에 보낸 편지에 다시 한 번 언급된다. 에베소교회는 니골라 당의 사역이고,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 당의 교훈이다. 니골라 당은 신자들은 자유하기 때문에 부도덕이나 방종에 대해서 관대하게 말을 하는 것이다.
7.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Τῷ νικῶντι δώσω αὐτῷ φαγεῖν ἐκ τοῦ ξύλου τῆς ζωῆς, ὅ ἐστιν ἐν τῷ παραδείσῳ τοῦ θεοῦ.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클레시아이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개역개정)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낙원 안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에클레시아이스는 교회들로서 일곱교회 전체를 의미하며, 나아가 성도들의 심령 속에 세워진 성전을 의미한다. 그래서 잘못된 신앙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바르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긴다는 말은 자신의 생각을 성령이 주시는 말로 극복하는 것이다. 에베소 교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에덴과 연결됨), 그래서 처음 사랑을 말한다.
8.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Σμύρνῃ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πρῶτος καὶ ὁ ἔσχατος, ὃς ἐγένετο νεκρὸς καὶ ἔζησεν·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개역개정)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처음이요 마지막인 이 곧 전에 죽었다가 지금 살아나신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헬라어 번역성경)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말은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과 연결된다. 처음은 죽어야 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마지막은 다시 살린다는 의미다. 그래서 첫사람 아담은 죽음의 몸을 전해주고, 마지막 아담은 살리는 영의 몸을 주시는 분이다. 첫사람 아담은 데리고 오시는 그리스도이시며, 마지막 아담은 데리고 가시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 대상은 하나님 나라의 영을 의미하는 것이다.
9. οἶδά σου τὴν θλῖψιν καὶ τὴν πτωχείαν, ἀλλὰ πλούσιος εἶ, καὶ τὴν βλασφημίαν ἐκ τῶν λεγόντων Ἰουδαίους εἶναι ἑαυτοὺς καὶ οὐκ εἰσὶν ἀλλὰ συναγωγὴ τοῦ σατανᾶ.
『내가 네 환난(들맆신)과 궁핍(텐 프로케이안)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플루시오스)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텐 플라스페미안)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개역개정)
『네가 보좌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은혜를 갈망하는 것을 내가 아노니 그러나 네가 부유하도다 또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신성모독을 아노라.』 (헬라어 번역성경)
들맆신은 영어의 push로서 하나님이 성도에게 보좌에 들어가도록 미는 것을 의미한다. 텐 프로케이안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한다는 의미다. 플루시오스는 영적으로 부하게 된다는 말이다. 즉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영적으로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텐 플라스페미안은 신성모독을 의미한다.
서머나교회는 예루살렘 멸망 후 이곳에 이주하여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온갖 훼방과 핍박을 받았으며, 심지어는 황제 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죽음을 당해 순교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사도 요한의 제자이자 서머나 교회의 초대 감독이었던 폴리갑 역시, 당시 황제숭배를 거부하다 화형을 당해 순교한 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서머나교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란, 아득한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이었다.
10. μηδὲν φοβοῦ ἃ μέλλεις πάσχειν. ἰδοὺ μέλλει βάλλειν ὁ διάβολος ἐξ ὑμῶν εἰς φυλακὴν ἵνα πειρασθῆτε καὶ ἕξετε θλῖψιν ἡμερῶν δέκα. γίνου πιστὸς ἄχρι θανάτου, καὶ δώσω σοι τὸν στέφανον τῆς ζωῆς.
『너는 장차 받을 고난(파스케인)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퓔라켄)에 던져 시험(페이라스데테)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드륖신)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피스토스)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개역개정)
『네가 사역을 위해 나타나는 어려움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에서 몇 사람을 곤경에 처하도록 너희를 미혹하리니 너희가 열흘 동안 보좌에 머물고 죽도록 신실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월계관을 네게 주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파스케인은 열정(passion)으로, 사역을 위해 나타나는 힘든 과정을 참아내는 열정을 의미한다. 퓔라켄은 세상의 감옥이 아니라, 어려운 곤경에 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페이라스데테는 유혹이다. 들륖신은 하나님의 보좌에 떠 밀려 들어가는 것이다.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가 은혜를 받고 영적으로 부유하게 되지만, 마귀는 그렇게 되니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이다. 교인들 중에 몇사람이 마귀의 시험에 걸려들어서 어려운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럴지라도 열흘동안 들륖시스를 통하여 마귀로 부터 벗어났다는 것이다. 피스토스는 신실한 자라는 의미다. 신실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들륖시스가 필요한 것이다.
11.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Ὁ νικῶν οὐ μὴ ἀδικηθῇ ἐκ τοῦ θανάτου τοῦ δευτέρου.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개역개정)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서머나 교회는 환란과 핍박과 순교와 죽음에 관계되는 말이 전개된다. 둘째 사망은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은 악한 자들이 음부에서 받는 심판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과 함께 둘째 사망으로 십자가에서 죽은 자들이다.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다. 첫째 사망은 하나님 나라에서 천사들이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으므로 이 땅의 흙속에 갇힌 것을 의미한다.
12.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Περγάμῳ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ἔχων τὴν ῥομφαίαν τὴν δίστομον τὴν ὀξεῖαν·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개역개정)
『버가모에 있는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양날의 날카로운 칼을 가진 이가 말하노라.』 (헬라어 번역성경)
당시 검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자는 식민지를 통치하는 총독이었다. 총독은 사람을 사형시키는 권한을 가지고 있어서, 통치에 필요하다면 식민지 백성을 말 한마디로 사형시킬 수 있었다. 특히 가이사를 주로 고백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든지 그 권한을 행사하였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로마 총독의 검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시고 영원한 심판을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밝히고 계신다.
13. οἶδα ποῦ κατοικεῖς, ὅπου ὁ θρόνος τοῦ σατανᾶ, καὶ κρατεῖς τὸ ὄνομά μου καὶ οὐκ ἠρνήσω τὴν πίστιν μου καὶ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Ἀντιπᾶς ὁ μάρτυς μου ὁ πιστός μου, ὃς ἀπεκτάνθη παρ’ ὑμῖν, ὅπου ὁ σατανᾶς κατοικεῖ.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토 오노마 무)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개역개정)
『네가 사탄의 권세가 있는 곳에 거하지만 내 이름을 굳게 잡고, 사탄의 권세가 있는 곳에서 너희 가운데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죽임을 당한 그 때에도 너는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것을 나는 알고 있다.』 (헬라어 번역성경)
토 오노마 무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버가모는 사탄의 권좌가 있고 사단의 영향력이 강하고 이교적인 삶의 현장이지만, 성도들이 그곳을 떠나지 않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붙잡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부활의 증인이다. 안디바는 이 사탄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 죽임을 당했고, 성도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예수님은 안디바를 충성된 증인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셨고 성도들의 믿음을 칭찬하셨다. 초대교회에서 증인은 곧 순교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14-15. ἀλλ’ ἔχω κατὰ σοῦ ὀλίγα ὅτι ἔχεις ἐκεῖ κρατοῦντας τὴν διδαχὴν Βαλαάμ, ὃς ἐδίδασκεν τῷ Βαλὰκ βαλεῖν σκάνδαλον ἐνώπιον τῶν υἱῶν Ἰσραὴλ φαγεῖν εἰδωλόθυτα καὶ πορνεῦσαι.οὕτως ἔχεις καὶ σὺ κρατοῦντας τὴν διδαχὴν [τῶν] Νικολαϊτῶν ὁμοίως.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몇 가지 있나니 거기에 발람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네게 있기 때문이로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 제물을 먹게 하고 또 음행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잡는 자들이 있도다.』 (헬라어 번역성경)
출애굽을 연상하게 하는 내용들이 전개된다. 발람은 민수기에 등장하는데, 광야에서 있있던 사건이다. 몇가지 책망할 일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이다. 이 둘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영적으로 타락시키는 교리였다. 발람은 모압 여인들을 통해 이스라엘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행음하게 하는 죄를 하나님 앞에서 짓게 하였다. 베드로후서 2장 15절에서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을 저주하지 말라고 세 번이나 금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발람은 거대한 뇌물에 눈이 멀어 그들을 타락시키는 방법을 알려주고 불의한 돈을 받으며 타협하였다.
니골라당의 교리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받는 것은 영혼뿐이며, 몸은 땅에 묻혀서 썩어질 것이므로 육신을 마음대로 즐겨도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육신은 세속적인 쾌락을 즐겨도 괜찮고, 육신의 정욕을 억제시킬 필요가 없으며, 원하는 대로 먹고 마셔도 영만 순수하면 된다고 가르쳤다. 즉, 교회로 하여금 절대적인 거룩한 진리를 이 세상의 관습, 도덕과 타협시키려 했고 세속적인 세상과 거룩한 교회의 구별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이것으로 인해 교회 안에 더러운 죄와 세상의 온갖 것들이 다양한 형태로 타협하며 들어왔다.
16. πολεμήσω μετ’ αὐτῶν ἐν τῇ ῥομφαίᾳ τοῦ στόματός μου.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개역개정)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그들은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다. 니골라 당의 교훈을 행하는 자는 쉽게 돌이키지 않는다. 그래서 싸움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리스도의 입의 검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싸움을 통해서 이겨내고 승리하는 자가 되라는 것이다.
17.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Τῷ νικῶντι δώσω αὐτῷ τοῦ μάννα τοῦ κεκρυμμένου καὶ δώσω αὐτῷ ψῆφον λευκήν, καὶ ἐπὶ τὴν ψῆφον ὄνομα καινὸν γεγραμμένον ὃ οὐδεὶς οἶδεν εἰ μὴ ὁ λαμβάνων.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개역개정)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 둔 만나를 주어 먹게 하고 또 흰 돌을 그에게 주리니 그 돌에는 새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그 돌을 받는 자 외에는 아무도 그 이름을 알지 못하느니라.』 (헬라어 번역성경)
세상에서는 우상의 제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기는 자에게는 감추인 만나인 하늘의 양식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교회 안에서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의 양식인 호 로고스의 말씀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지만, 주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값싼 구원론에 빠져 있었으며, 영을 살리는 일에는 무관심하였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에 흰 돌은 운동경기에서 황제가 이기는 자에게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흰 돌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징표를 받는 것이요, 만나를 주고 새 이름을 주시는데, 만나와 새 이름은 동일 선상에서 생각할 수 있다. 그 돌 위에 쓰여진 새 이름은 받은 자만이 알 수 있는 이름, 예수 그리스도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핍박과 타협과 혼합 속에서도 끝까지 믿음과 진리를 지키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신 예수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기록된 초청장을 받게 될 것이다. 버가모 교회는 시내산 언약을 생각나게 한다.
18.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Θυατείροις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υἱὸς τοῦ θεοῦ, ὁ ἔχων τοὺς ὀφθαλμοὺς αὐτοῦ ὡς φλόγα πυρὸς καὶ οἱ πόδες αὐτοῦ ὅμοιοι χαλκολιβάνῳ·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개역개정)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눈이 불꽃 같고 발이 빛나는 청동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것들을 말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불꽃같다는 말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본다는 의미이고, 발이 빛나는 청동같다는 말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권능을 나타내신다.
19. διακονίαν καὶ τὴν ὑπομονήν σου, καὶ τὰ ἔργα σου τὰ ἔσχατα πλείονα τῶν πρώτων.
『내가 네 사업(타 에르가)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휘포모네)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타 에르가)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개역개정)
『내가 네 사역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보좌에 머무는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의 사역이 처음 것보다 크도다.』 (헬라어 번역성경)
타 에르가는 사역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휘포모네는 심령 속의 하나님 보좌(지성소)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두아디라 교회의 신앙이 좋으며, 갈수록 더 좋아지는 것을 말해준다. 시간이 갈수록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보좌에 머무는 것이 더 풍성해지는 성장하는 교회였다.
두아디라는 상공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만난 자주장사 루디아가 이 도시 출신이다. 두아디라에서 생산되는 자주색 염료는 당시에 가장 비싼 물건 중 하나였다. 두아디라에서 생업에 종사하려면 조합에 가입이 되어야하는데 그 조합들은 각각 수호신이 있어서 음란하고 우상숭배로 가득한 의식을 행해야 했다. 조합에 가입하지 않으면 많은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신앙의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두아디라 교회는 그런 어려움 가운서도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심령 속의 보좌에 머무는 것을 가지고 살았다.
20. ἀλλ’ ἔχω κατὰ σοῦ ὅτι ἀφεῖς τὴν γυναῖκα Ἰεζάβελ, ἡ λέγουσα ἑαυτὴν προφῆτιν καὶ διδάσκει καὶ πλανᾷ τοὺς ἐμοὺς δούλους πορνεῦσαι καὶ φαγεῖν εἰδωλόθυτα.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귀나이카)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네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이라는 여자를 용납하기 때문이라.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또 우상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헬라어 번역성경)
구약에 등장하는 이세벨은 시돈 왕의 딸로 아합왕의 아내가 된 여인이다. 바알신과 아세라 우상을 이스라엘에 끌어들여 이스라엘 온 땅을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물들게 했던 여자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이세벨은 아마도 구약의 이세벨처럼 두아디라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들을 꾀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음행을 저지르게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던 것이다. 귀나이카(귀네)는 사역자의 아내를 나타낸다.
21. καὶ ἔδωκα αὐτῇ χρόνον ἵνα μετανοήσῃ, καὶ οὐ θέλει μετανοῆσαι ἐκ τῆς πορνείας αὐτῆς.
『또 내가 그에게(아우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개역개정)
『내가 그녀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으나 그녀가 음행을 회개하지 아니하였도다.』(헬라어 번역성경)
아우테는 그녀라는 의미로서, 이세벨과 같은 결혼한 여자를 의미한다.
22. ἰδοὺ βάλλω αὐτὴν εἰς κλίνην καὶ τοὺς μοιχεύοντας μετ’ αὐτῆς εἰς θλῖψιν μεγάλην, ἐὰν μὴ μετανοήσωσιν ἐκ τῶν ἔργων αὐτῆς,
『볼지어다 내가 그(아우테)를 침상(클리넨)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에안 메 메타노에소신) 큰 환난(들맆신) 가운데에 던지고』(개역개정)
『보라, 내가 그녀를 병상의 침대에 넣을 것이요 그녀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자기 행실을 회개하지 아니하면 심령 속의 보좌에 들어가도록 밀어 넣을 것이며』 (헬라어 번역성경)
아우테는 그녀이다. 그녀를 침상에 던진다는 것이다. 클리넨은 병상의 침대를 의미한다. 지도자의 부인이 영적으로 병든 상태를 말해주고, 병상에서 치료하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지도자는 들맆신을 하라는 것이다. 간음한 자들은 남편인 사역자들을 의미한다. 들맆신(들맆시스)은 하나님이 보좌에 나가도록 떠미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보좌에 나가므로 회개의 기회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는『에안 메 메타노에소신』이 마지막 부분에 있다. 이 말은 회개의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말이 23절과 연결된다. 회개하지 않으면 죽인다는 표현이 나온다.
23. καὶ τὰ τέκνα αὐτῆς ἀποκτενῶ ἐν θανάτῳ. καὶ γνώσονται πᾶσαι αἱ ἐκκλησίαι ὅτι ἐγώ εἰμι ὁ ἐραυνῶν νεφροὺς καὶ καρδίας, καὶ δώσω ὑμῖν ἑκάστῳ κατὰ τὰ ἔργα ὑμῶν.
『또 내가 사망으로(엔 다나토) 그의 자녀(타 테크나 아우테스)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네프로스)과 마음(카르디아스)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개역개정)
『또 내가 사망으로 그녀의 자녀들을 죽이리니 그리하면 모든 교회가 나를 사람의 몸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또 내가 너희 사역에 따라 너희 각 사람에게 갚아 주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엔 다나토는 영적인 죽음으로 라는 의미로, 그 여자의 자녀들이 영적인 죽음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표현이다. 타 테크나 아우테스는 그 여자의 자녀들이다. 네프로스는 몸의 장기인 신장을 의미하고, 카르디아스는 마음이다. 즉 하나님이 그 사람(목회자와 그의 아내)의 몸과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행위대로 갚아준다는 말은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하겠다는 말이다. 두아디라 교회는 신도들의 신앙은 좋은데, 목사 부인이 왕노릇하므로서 사역자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24. ὑμῖν δὲ λέγω τοῖς λοιποῖς τοῖς ἐν Θυατείροις, ὅσοι οὐκ ἔχουσιν τὴν διδαχὴν ταύτην, οἵτινες οὐκ ἔγνωσαν τὰ βαθέα τοῦ σατανᾶ ὡς λέγουσιν· οὐ βάλλω ἐφ’ ὑμᾶς ἄλλο βάρος,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개역개정)
『그러나 내가 너희와 두아디라에 있는 남은 자들 곧 이 가르침을 가지지 아니하고 사탄의 깊은 곳을 알지 못하는 모든 자들에게 말하노니 내가 어떤 다른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너희는 사역자의 아내와 사역자를 의미한다. 사탄의 깊은 것은 목회자의 아내가 왕노릇하므로서 목회자가 잘못된 길로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짐을 지울 것이 없다는 말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25. πλὴν ὃ ἔχετε κρατήσατε ἄχρι [ς] οὗ ἂν ἥξω.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개역개정)
『다만 너희는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 (헬라어 번역성경)
너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사역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보좌에 나가는 인내를 의미한다. 이것을 끝까지 붙잡아라는 것이다.
26. Καὶ ὁ νικῶν καὶ ὁ τηρῶν ἄχρι τέλους τὰ ἔργα μου, δώσω αὐτῷ ἐξουσίαν ἐπὶ τῶν ἐθνῶν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개역개정)
『이기고 나의 사역을 끝까지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능을 주리니』 (헬라어 번역성경)
이것을 끝까지 붙잡는 자는 예수님의 통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는 의미다. 만국을 다스리는 자는 왕이다.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왕은 다윗이며, 이세벨과 비교된다. 두아디라 교회는 다윗 언약을 상징한다.
27.καὶ ποιμανεῖ αὐτοὺς ἐν ῥάβδῳ σιδηρᾷ ὡς τὰ σκεύη τὰ κεραμικὰ συντρίβεται,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개역개정)
『그가 철장으로 그들을 다스리며 토기장이의 그릇같이 부수어 조각 내듯이 나도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은 것을 그렇게 하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토기장이의 비유인데, 토기를 구웠는데, 질그릇이 잘못나오면 막대기로 깨어버리는 것이다. 주님이 마귀의 권세를 이렇게 깨뜨려버리듯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이 주님이 성부로부터 받은 권세에 끝까지 붙잡는 자를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28. ὡς κἀγὼ εἴληφα παρὰ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καὶ δώσω αὐτῷ τὸν ἀστέρα τὸν πρωϊνόν.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개역개정)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헬라어 번역성경)
새벽별은 계명성이라고 해서 루시퍼를 나타내기도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새벽별로 표현하기도 한다. 새벽별은 여명의 어둠에서 빛을 발하므로 새벽별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기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으뜸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게 한다는 것이다.
두아디라 같은 교회가 되면 사역자나 신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데, 마귀가 사역자의 아내를 통하여, 교회를 흔들어놓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역자가 이를 이겨내면 하나님이 왕 같은 제사장으로 되게 하겠다는 것이다. 사역자가 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사역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보좌에 나가는 인내를 끝까지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29.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개역개정)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그래서 교회가 성령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역자의 부인이 왕같이 행동하려는 이유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하와 처럼 뱀의 말을 듣는다면, 선악과를 먹게되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는 것이며, 이세벨과 같은 자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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