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7장 


1. Μετ τοτο εδον τσσαρας γγλους σττας π τς τσσαρας γωνας τῆς γῆς, κρατοντας τοὺς τσσαρας νμους τῆς γῆς να μ πν νεμος π τῆς γῆς μτε π τῆς θαλσσης μτε π πν δνδρον.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개역개정)

이것들 후에 내가 보니 네 천사가 땅의 네 모퉁이에 서서 땅의 네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땅 위에나 바다 위에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일이란 여섯번째 인을 땔 때, 진노의 큰 날이 임한 것을 의미한다. 진노의 큰 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과 같이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묘사했다. 불신 자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성도에게는 새성전으로 태어나는 구원이 된다. 7장은 6장과 7장의 중간의 모습인데, 8장에서 일곱째 인을 떼시기 때문이다..

땅의 사방의 바람은 진노의 바람이다. 그런데, 네 천사들이 네 모퉁이에서 진노의 바람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81절에서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바람을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줄어들었고』출애굽기 1013『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네 천사를 등장시키는 이유는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는 말씀이다. 성경에는 네생물(하나님의 군대), 구약성경에서 특히 네바람(바벨론, 메대 헬라, 로마)으로 표현했다. 계시록에서는 네 바람은 신약시대 초기에 로마가 된다. 로마가 성전을 무너뜨리는데, 잠깐 천사를 통해서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심령 속의 성전을 무너뜨리려고 하는 자들은 교회 안의 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런데, 천사가 이를 붙잡아 주는 것이다.

(3)은 하늘의 숫자를 상징하고 사(4)는 땅(세상)을 상징한다. 이사야 1112절에서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요한계시록 208절에서『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6장 마지막 부분에『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7장은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다. 남은 자,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자에 대해서 말을 한다.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7장은 두 환상으로 나뉘어진다. 십사만 사천(1-4)과 흰옷을 입고 있는 큰 무리(5-17)

심판을 피할 수 있는 무리는 십사만 사천과 남은 자로 표현한다. 십사만 사천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지파를 강조한다. 남은 자에 대한것은 나라, 족속, 백성, 방언으로 표현된다. 이는 이방인으로 표현된다. 십사만 사천은 구체적인 어떤 무리를 상징하고, 셀수 없는 큰 무리라고 표현되었는데, 전세계의 교회 공동체를 상징한다.

 

2. Κα εδον λλον γγελον ναβανοντα π νατολς λου χοντα σφραγδα θεο ζντος, κα κραξεν φων μεγλ τος τσσαρσιν γγλοις ος δθη ατος δικσαι τν γν κα τν θλασσαν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받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개역개정)

또 내가 보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동쪽으로부터 올라와 땅과 바다를 해할 권능을 받은 네 천사에게 큰 음성으로 외쳐(헬라어 번역성경)

다른 천사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네 천사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했는데, 헬라어 성경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되도록 주어져있는 이라고 되어 있어서, 권세라는 말은 없다. 하나님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하는 분이 아니라 인간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즉 인간들에 의해서 땅과 바다가 해롭게 되었는데,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자가 네 천사라는 것이다. 그런데, 천사들이 막고 있다가 놓는 순간 땅과 바다가 해를 받는 것이다. 천사들이 막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해돋는 데서 올라온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을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인이라는 것은 도장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가 해돋는데서 올라온다는 표현은 누가복음 178절에서『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에베소서 514절에서『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대해서 천사들을 통제한다는 말이다.

 

3. λγων· μ δικσητε τν γν μτε τν θλασσαν μτε τ δνδρα, χρι σφραγσωμεν τος δολους το θεο μν π τν μετπων ατν.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개역개정)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찍어 봉인할 때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인을 찍는 것은 도장을 찍는 행위다. 인은 보호, 소유를 의미한다. 계시록에서는 신자를 보호한다는 의미다. 구약시대에서는 제사에서 사용되는 동물에 인을 새겼다. 이것은 하나님이 나의 것이라는 표현이다. 동물에게 새겨진 표가 있는 짐승만 희생제물로 사용되었다. 이와 반대되는 것이 짐승의 표(거짓 선지자)를 의미한다.

에스겔 94-6절에서『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에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 하시고 그들에 대하여 내 귀에 이르시되 너희는 그를 따라 성읍 중에 다니며 불쌍히 여기지 말며 긍휼을 베풀지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이와 여자를 다 죽이되 이마에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하지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심판이 성소에서, 늙은이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오늘날 교회, 장로를 의미한다.

이마에 표가 있는 자는 심판하지 말라는 것이다. 에스겔서는 바벨론 멸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바벨론 멸망은 돌성전(예루살렘)의 멸망이요 성도의 옛사람의 멸망이다. 이마에 표를 받은 자를 남은 자로 표현했다. 하나님이 그 바람을 막도록 천사들에게 지시한 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해되지 못하도록 막아라는 것이다. 이마의 표를 받은 자는 출애굽기 2836절에서『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신명기 66-8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표는 하나님의 언약이다. 언약이 없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다. 고린도후서 121-22절에서『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인이 성령으로 설명된다. 성령의 인을 받은 자는 심판의 인을 받은 자에 해당되지 않는 것이다. 오순절 성령이 임했을 때는 약 A.D. 30년경이었으나, 예루살렘 성전의 심판은 그로부터 40년 뒤인 A.D. 70년에 이루어졌다. 유보기간인 것이다. 심판이 있기 전에 유보기간으로 성도에게 인을 치는 것이다. 노아의 경우 유보기간이 120년 주어졌다. 인을 치는 것에 대해서 묘사했다. 요한복음 334절에서『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에베소서 113절에서『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네 바람이 불기 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을 받는 것이다.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나무는 사람을 상징한다. (유다인)과 바다(이방인) 나무들에게 임하는 바람은 모든 사람에게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예루살렘 심판을 잠시 중단시키고 있다. 먼저 유대인에게, 이후 헬라인에게 말씀을 전하고 인을 쳐서 심판을 시행하는 것이다.

 

4. Κα κουσα τν ριθμν τν σφραγισμνων, κατν τεσσερκοντα τσσαρες χιλιδες, σφραγισμνοι κ πσης φυλς υἱῶν σραλ·

『내가 인침을 받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개역개정)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천천이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십사만 사천은 사람 수가 아니라 단순히 숫자이다. 십사만 사천은 장막을 의미하며, 그 장막을 이끄는 군대를 의미한다. 인을 친다는 것은 전쟁에 나가는 숫자를 세는 것이다. 성전의 숫자를 십사만 사천으로 표현한 것이다. 창세기 324절에서『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성막을 지키는 모습이다. 이스라엘 성소에는 안쪽에 레위지파(12), 바깥에는 야곱의 열두 지파(12)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1212를 합하면 24장로가 되고, 곱하면 144가 된다. 십이(12)는 하늘의 뜻(3)이 땅(4)에서 이르어지는 의미를 갖는다. 3곱하기 4를 하면 12가 되는 것이다. 더하기는 합해지는 숫자이다. 합해져서 하나가 되지만 하늘과 땅의 구분처럼 분명한 구분이 있다. 그러나 곱하기는 섞인다는 의미를 갖는다. 너와 나의 구분을 알 수 없듯이 섞여서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1000)은 히브리어 알파벳 중 알렙(1)에서 시작된다. 알렙은 천을 나타내기도 하는 것이다. 베드로가 말하기를 하루가 천년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나님은 알파요 오메가이다. 일이요 천인 것이다. 천은 하나님의 임재, 통치를 의미한다. 그래서 천년왕국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천년왕국은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를 의미한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그 시점부터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1260, 3년 반으로 표현된 기간은 짧지만 고통의 기간이다. 예수님은 삼년 반 공생애를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고난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천년왕국은 길다는 의미가 있다.

십사만 사천에서 144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존재를 의미하고, (1000)은 존재들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는 완성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숫자 개념이 아니라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의 신앙의 상태를 표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성전의 규모도 144규빗이라고 했다. 성도가 바로 144규빗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결혼식 장의 신부를 표현한 말이다. 회복된 에덴을 나타내며, 셋째 하늘, 새하늘을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과 성도가 완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 바로 144라는 말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και ηκουσα τον αριθμον των εσφραγισμενων ρμδ χιλιαδες εσφραγισμενοι εκ πασης φυλης υιων ισραηλ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천천이더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Κα κουσα τν ριθμν τν σφραγισμνων, κατν τεσσερκοντα τσσαρες χιλιδες, σφραγισμνοι κ πσης φυλς υἱῶν σραλ·

또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

스테파누스 성경에는 봉인된 숫자가 천천이요, 넷슬 알란드 성경은 십사만 사천으로 표현되었다. 스테파누스 성경의 천천이라는 말은 수가 많음을 표현한다.이 부분은 7 5-8절까지 이어진다.

 

5-8. κ φυ λς οδα δδεκα χιλιδες σφραγισμνοι, κ φυλς ουβν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Γδ δδεκα χιλιδες,κ φυλς σρ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Νεφθαλμ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Μανασσ δδεκα χιλιδες,κ φυλς Συμεν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Λευ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σσαχρ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Ζαβουλν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ωσφ δδεκα χιλιδες, κ φυλς Βενιαμν δδεκα χιλιδες σφραγισμνοι.

『유다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수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침을 받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개역개정)

유다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갓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아셀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시므온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스불론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서 봉인된 자가 수천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요한계시록의 십사만 사천은 숫자가 아니라,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는 성전(성소)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성소 진영은 열두 지파로, 열두 지파가 성소를 받드는 것이다. 이들은 하늘의 군사들이다.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군대라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에 해당되는 성도는 여호와의 군대가 된다. 영적 전쟁에 나가는 자들인 것이다. 한글 개역개정은 넷슬 알란드 성경을 따라 번역되여 일만 이천으로 되어 있으나, 스테파누스 성경은 봉인된 자가 수천으로 되어 있다.

하나님은 먼저 유대인을 부르셨다. 로마서 116절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인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군대이고, 그 다음에는 나팔이 등장한다. 영적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 되는 자들만이 진노의 날을 피해 갈 수 있다. 그들에게는 은혜의 날이 된다.

 

9-10. Μετ τατα εδον, κα δο χλος πολς, ν ριθμσαι ατν οδες δνατο, κ παντς θνους κα φυλν κα λαν κα γλωσσν σττες νπιον το θρνου κα νπιον το ρνου περιβεβλημνους στολς λευκς κα φονικες ν τας χερσν ατν,κα κρζουσιν φων μεγλ λγοντες· σωτηρα τ θε μν τ καθημν π τ θρν κα τ ρνίῳ.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개역개정)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보라,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 곧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왕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구원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은 이방인을 의미한다. 구원받은 자들이 이방인에서 셀 수 없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 구원받는 자들은 십사만 사천이라는 군사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군대를 상징한다. 그래서 열두 지파를 통해서 이 땅의 모든 이방인들을 구원하려고 하신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져버린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들을 배척하고 자신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선민사상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새로운 영적 이스라엘을 세우시고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에 이르런 것이다. 그래서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에서 하나님의 군대가 나오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이라는 군대가 이루어져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할 때까지 이 세상에 오는 진노의 큰 날을 네 천사가 막고 있는 것이다.

흰옷은 제사장의 옷을 의미한다. 셀수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다.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이 되는 것은 엄청나게 힘들었다. 그런데, 수많은 제사장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흰색은 정결, 승리를 표현한다. 정결한 말씀을 입은 의인(제사장)이라는것이다.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종려나무(타마르) 가지(포이니케스 φονικες)를 들었다. 타마르의 어근은 다말이다. 시편 9212절에서 『의인은 종려나무(타마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리로다』사사기 44-5절에서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에 거주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종려나무 아래서 재판을 했다고 한다. 드보라가 다바르에서 나온 것이다. 다바르는 진리의 말씀의 의미를 갖는데, 똑바로 세우다 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유대인들이 종려나무를 흔들었다. 종려나무는 잘라도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난다. 남은 자의 구원이라는 의미가 있다.

종려나무는 수전절에 사용되었다. 마카비 왕조가 세워진 왕조를 기념하는 것이다. 성전에 돼지 피를 섞어 오염시킨 셀류쿠스 왕조(안티오쿠스 4)를 물리치고 나라를 세웠다는 것이다. 성전을 회복시킨 것이다. 장막절과 개념이 유사하다. 그래서 장막절에 종려나무를 사용한다.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요한이 로마 황제를 반대해서 말을 하는 것이다. 시편 38절에서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지면 새성전이 세워진다. 옛언약(율법)은 지나가고, 새언약(복음)이 되는 것이다. 옛언약에 집착하면 복음의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구원은 남은 자에 대한 구원이다. 노아의 홍수에서 8명만 구원받았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는 극소수의 남은 자만 살아남았다. 이사야 1021-23절에서『남은 자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파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된 파멸을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로마서 927절에서『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로마서 115절에서『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모든 사람이 멸망당해야 하는데, 남은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라는 성도이다.

마태복음 24 15-16절에서 피할 길을 알려주신다.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기독교인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피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2120-22절에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갈 것이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 것이며 촌에 있는 자들은 그리로 들어가지 말지어다 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징벌의 날이니라』

11-12. Κα πντες ο γγελοι εστκεισαν κκλ το θρνου κα τν πρεσβυτρων κα τν τεσσρων ζων κα πεσαν νπιον το θρνου π τ πρσωπα ατν κα προσεκνησαν τ θε λγοντες·μν, ελογα κα δξα κα σοφα κα εχαριστα κα τιμ κα δναμις κα σχς τ θε μν ες τος αἰῶνας τν αἰώνων· μν.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개역개정)

모든 천사들이 보좌와 장로들과 네 짐승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그들의 얼굴 위의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영원무궁토록 있으시로다 아멘,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10절은 구원받은 백성이 찬양하지만, 11절은 천사가 화답을 하고 있다. 첨사는 말씀을 전하는 자이다. 천사를 대변하는 말씀을 전하는 자와 십사만 사천이라는 성도가 서로 화답하면서 찬양하는 것이 곧 예배라는 것이다.

 

13-14. Κα πεκρθη ες κ τν πρεσβυτρων λγων μοι· οτοι ο περιβεβλημνοι τς στολς τς λευκς τνες εσν κα πθεν λθον; κα ερηκα ατ· κρι μου, σ οδας. κα επν μοι· οτο εσιν ο ρχμενοι κ τς θλψεως τς μεγλης κα πλυναν τς στολς ατν κα λεκαναν ατς ν τ αματι το ρνου.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테스 들맆세오스)에서 나오는(에르코메노이)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하이마티)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개역개정)

장로들 중에서 한 사람이 내게 이르되, 흰옷을 차려입은 이 사람들은 누구며 또 그들이 어디서 왔느냐 하매 내가 그분께 이르되,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분께서 내게 이르되, 이들은 심령 속의 지성소에 밀려 들어가는 어려움으로 부터 벗어나 그들이 그들의 옷들을 씻어 어린양의 피 안에서 그것들을 희게 한 자들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한 장로가 요한에게 흰옷 입은 자에 대해서 물었다. 그런데, 요한이 주님께 방향을 돌려서 당신이 잘 아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님이 큰 환란에서 어린양의 피로 깨끗게 된 자라고 말하는 것이다. 테스 들맆세오스는 환란이 아니라 영어로 push에 해당되는 말로서, 주님의 지성소에 들어가도록 등을 떠미는 것을 의미한다.

에르코메노이(ἐρχμενοι)는 환란에서 나오는 자라는 것으로 번역되어있다. 문법적으로 현재분사이다. 현재 독자가 겪고 있는 것을 암시한다.『와 있는』이라는 의미다. 환란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들맆세스이다. 들맆세스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옛성전의 무너짐과 새성전의 세워짐에 대한 언약적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 눈으로 보는 관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로마의 핍박을 받는 그런 것이 아니라, 유대교의 교리와 관계가 깊은 것이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육체가 죽고 난 후에 가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현재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다고 믿은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어려움이었다. 비록 유대인들로부터 물리적 공격이 있었지만, 이것이 환란이 아니라, 그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심령 속의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 어려운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날마다 심령 속의 지성소 기도에 매진한 것이다.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 너무나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그들에게 말하면 당장 공격받는다. 마태복음 2421절에서『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는 눈으로 보는 성전에 관한 것인데, 이 옛성전이 무너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심령 속에 새하늘과 새땅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새창조는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는 큰 환란인 것이다.

흰옷을 입은 자는 심령 속의 보좌(지성소)에 와 있는 자들인 것이다. 어린양의 피로 옷을 빠니 희게 되었다는 것이다. 들맆세스와 어린양의 피가 연관이 있는 것이다. 피는 영적 생명을 상징한다. 대속의 피흘림은 영적으로 죽은 죄인이 하늘로부터 오는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들맆세스가 된다는 말은 신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지성소의 제사장이 된다는 말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제사장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은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되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십자가로 들어가는 것을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신도들을 떠미는(들맆세스) 것이다. 지성소로 그 어린양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는 자는 새생명을 얻는 것이다.

 

15. δι τοτ εσιν νπιον το θρνου το θεο κα λατρεουσιν ατ μρας κα νυκτς ν τ να ατο, κα καθμενος π το θρνου σκηνσει π’ ατος.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라트류우신)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개역개정)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분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느니라 또한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헬라어 번역성경)

들맆세스가 된 신도가 심령 속의 지성소에 나아가 주님을 섬기는 것을 라트류우신이라고 한다. 헬라어로 디아코니아는 종이 상전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라트류우신은 제사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예배)을 의미한다. 그래서 주님이 라트류우신 하는 신도들 위에 장막을 쳐 주시는 것이다. 장막은 옷으로 비유된다. 의의 옷을 입히는 것이다.

예배에 대해서, 로마서 12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영적 예배는 마땅한 예배라는 것이다. 몸이 성전이 되는 것이다. 영적 예배는 심령 속의 성전에서 제사장이 되어 호 로고스와 말씀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16절에서『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요한복음 423-24절『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영은 성령이다.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성령이 임하는 것은 곧 진리가 되는 것이다. 예배는 의례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 진리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진리로 예배하는 자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진 자들이다. 여기에 주님이 임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십사만 사천이 된 자가 천년왕국을 누린다. 천년왕국은 새성전, 새하늘, 셋째 하늘(천국)인 것이다. 보이는 성전은 사라지는 것이다.

 

16. ο πεινσουσιν τι οδ διψσουσιν τι οδ μ πσ π’ ατος λιος οδ πν καμα,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개역개정)

그들이 다시는 굶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며 태양이나 어떤 열기도 그들 위에 내리쬐지 아니하리니(헬라어 번역성경)

안식의 개념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의 옷을 입는 자들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는 것이다. 주리고 목마른 것은 심판을 의미한다. 복과 저주가 함께 한다. 심판이 구원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안식의 개념은 진리의 목마름을 해갈하는 것이다. 환란 후의 안식이다.

 

17. τι τ ρνον τ ν μσον το θρνου ποιμανε ατος κα δηγσει ατος π ζως πηγς δτων,
κα
ξαλεψει θες πν δκρυον κ τν φθαλμν ατν.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개역개정)

『보좌의 한가운데 계시는 어린양께서 그들을 먹이시고 생명수의 샘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들로 부터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리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어린양이 흰옷을 입은 자들의 목자가 되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안식이 된다. 요한복음 737절에서『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명절 끝날은 장막절이다. 738-39절에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성령에 대해서 언급하고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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