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장 

1.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ἣν ἔδωκεν αὐτῷ ὁ θεὸς δεῖξαι τοῖς δούλοις αὐτοῦ ἃ δεῖ γενέσθαι ἐν τάχει, καὶ ἐσήμανεν ἀποστείλας διὰ τοῦ ἀγγέλου αὐτοῦ τῷ δούλῳ αὐτοῦ Ἰωάννῃ,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아포칼륖시스)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게네스다이)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개역개정)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것들을 자신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분께 주신 것이라 그분께서 자신의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 요한에게 그것을 보내시고 표적으로 보여 주시니』(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다. 이는 호데오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준 계시의 근원이 호 데오스라는 것이다. 그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빠른 시간 안에서 반드시 되어져야 할 일들을 그의 종 요한에게 그의 천사를 통하여 급히 진리를 세워 상징을 통하여 보이는 것이다.

아포칼륖시스(601)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서 요한계시록의 주제이기도 하다. 601번은 덮개를 제거하다 라는 말이다. 감추어 둔 것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언약궤를 열어버리는 것이다. 숨겨둔 돌판을 보여주는 것이다. 덮개를 열므로, 그 의미를 깨달았다는 말이다. 그 의미의 실체는 칠 언약인 것이다. 십계명으로 알려진 것은 계명이 아니라 십 언약이다. 칠언약을 십언약으로 알게되면 칠십이 된다. 십은 양적으로 완전수라고 하며, 칠은 질적으로 완전수라 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어진 것은 십언약인데, 이것을 통해서 칠언약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약을 계명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힘으로 이를 지켜보려고 한 것이다. 자기 힘으로 하려고 한 것이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인 것이다.

성경은 언약에 관한 책이고, 창세기도 요한계시록도 언약에 관한 것이다. 언약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것은 비밀이지만, 성령으로 깨닫는 자만 이 비밀을 알게되는 것이다. 게네스다이는 되어지게 하다(become)라는 의미다


2. ὃς ἐμαρτύρησεν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τὴν μαρτυρίαν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ὅσα εἶδεν.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톤 로곤 투 데우)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텐 마르튀리안 예수 크리스투)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에이덴)하였느니라』(개역개정)

요한이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와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ὃς ἐμαρτύρησεν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이 부분을 보면, 이는 호데오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넘겨주었던 계시라는 것이다. 넘겨주는 절차는 호 데오스가 예수 그리스도(데오스: 호로고스)에게, 천사에게, 요한에게, 교회(종들)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는 것이다. 톤 로곤 투 데우는 성부 하나님의 그 말씀(말씀이신 그리스도)이며, 텐 마르튀리안 예수 크리스투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의미한다. 에이덴은 보았다는 말이다. 요한은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를 보았다는 것이다.

창세기 11절에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라고 되어 있는데, 태초라는 말은 베레쉬트(בְּרֵאשִׁ֖ית) 이다. 성전(בְּ)의 머리(시작רֵאשִׁ֖י) 완성(ת) 이다. 그리스도 라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리스도가 성전의 머리로서 시작해서 완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리고 아들로 끝낸다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절에서『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3. Μακάριος ὁ ἀναγινώσκων καὶ οἱ ἀκούοντες τοὺς λόγου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καὶ τηροῦντες τὰ ἐν αὐτῇ γεγραμμένα, ὁ γὰρ καιρὸς ἐγγύς.

『이 예언의 말씀(투스 로구스)을 읽는(아나기노스콘)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카이로스 엥귀스)』(개역개정)

이 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투스 로고스는 복수로서 말씀들이다. 관사가 없는 로고스는 말(talk하는 말)이다. 그런데, 관사가 붙으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복수로 될 때는 하나님 말씀이 되는 것이다. 아나기노스콘 (ἀναγινώσκων)은 아나(위에서)와 기노스콘(알다:히브리어 야다)과의 합성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서 말씀을 알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이다.

복은 영생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복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복을 말씀(투스 로구스)을 읽는(아나기노스콘)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 세가지로 표현했다. 읽는 것은 문자를 통해서 위의 것을 깨닫고 알고 느끼는 것이다. 위의 것을 깨달은 자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것이다.

듣는 것은 예언의 말씀이다. 예언은 속히 일어날 일이다. 계시록은 묵시적인 성격을 띤 예언의 서신서이다. 그래서 묵시적인 표현과 역사적 사실적인 것들과 상징적인 표현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래서 창세기(1-3)와 다른 서신서와 사도행전을 비교해 보면 유사한 표현들이 많이 등장한다. 계시록은 율법과 복음이라는 관점, 성전의 개념과 이해, 옛것과 새것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기본으로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성전으로 표현할 때 예루살렘 성전, 예수 그리스도,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으로 표현된다. 근본적인 하나님의 뜻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새우기 위함이다. 이런 표현도 상징적인 것들이다. 계시록을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대비하여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나, 그것이 핵심은 아닌 것이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셨다. 이것은 곧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며, 곧 성도의 옛사람(첫사람 아담의 흔적)도 죽어야만 한다는 의미가 된다. 이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은 곧 성도의 심령에 성전이 새워지는 것이며, 이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군대가 서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육체로는 죽고 성도의 심령 속으로 그리스도로 오셔서 천년왕국을 살아가는 천국 백성의 부활의 삶을 표현한 것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반드시 이 두가지를 생각해야만 한다.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ἐν αὐτῇ γεγραμμένα) 기록한 것은 성도의 심령 속의 새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 새겨진 것을 잘 지켜라는 것이다.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때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맥락이 같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전쟁의 대상은 나의 심령 속에 있는 다른 나인 것이다. 그래서 나를 부인한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에 순응하는 나와 육체를 따르려고 하는 나의 싸움인 것이다


4. Ἰωάννης ταῖς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ς ταῖς ἐν τῇ Ἀσίᾳ·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ἀπὸ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καὶ ἀπὸ τῶν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 ἃ ἐνώπιον τοῦ θρόνου αὐτοῦ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오르코메노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헾타) 영(프뉴마톤)과』(개역개정)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이제 오시려고 하는 분과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헬라어 번역성경)

개역개정에는 편지하노니 라고 말을 했지만, 헬라어에는 이 말이 없다. 요한(히브리어 3110에서 유래)에 대해서, 3076의 한 형태; 아홉 이스라엘인의 이름‘요하난’:- 요하난 Yuwtah 유타: 3194를 보라. 3076 3068 2603에서 유래;‘야훼께서 총애하심’ 여덟 이스라엘인의 이름‘여호아난’: 여호아난, 요하난

하나님이 언약을 주셨는데, 언약은 아들이 되게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언약은 창세기 1장에서 일곱째 날로 등장한다. 칠은 엘로힘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마음은 인간이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이며, 사랑이다. 그래서 인간에게 알려주신 것이 십계명이다. 이 십계명은 계명이라기 보다 언약을 의미한다. 십을 둘로 나누면 위(하늘)의 오와 아래()의 오로 나뉘어진다. 이 모든 것의 축약은 사랑인 것이다. 사랑은 에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자를 하나되는 자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그리스도와 하나되는 자를 하나님이 아들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아시아는 아침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즉 새로운 시대를 나타낸다. 에클레시아(~강권하여 밖으로 불러냄)는 오늘날 교회라고 부른다. 세상 밖으로 불러내진 자들이다. 교회는 엑스도스된 자들이다. 모세가 바로의 왕궁으로부터 나오는 것, 성도가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신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말을 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심령 속에 세워진 교회가 된 성도들이 모이는 것을 교회라고 할 수 있지만, 참 성도가 없다면 교회라고 볼 수 없으며, 마치 동아리 모임과도 같은 그런 곳이 된다.

교회는 여자로 비유된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신랑을 기다리는 정결한 다섯처녀인 것이다. 신랑은 씨(쩨라)를 가진 남자(자칼:언약을 기억하다)이다. 씨는 언약의 말씀의 씨이며,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통해서 요한을 통해 아시아 일곱 교회 들에게 선포하는 것이다. 일곱 교회의 의미는 언약을 가지고 있는 성도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에서 일곱째 날이 계시록에서 일곱 교회로 표현되는 것이다. 이 언약은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세상에 온 자들을 마지막 아담이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이제 오시려고 하는 분. ἀπὸ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현재 존재하고, 미완료로 존재하고, 지금도 오고 계신 하나님이다.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미래에도 오실 그 분이라는 번역은 잘못된 것이다. 에르코메노스(ἐρχόμενος)는『오시려고 하는』(문법적으로 현재시제 중수디포테)이라는 의미다. 미래가 아니라 이제 오시려 하는 것이다. 출애굽기 314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나는 스스로 있는자 (하야 아세르 하야)라는 표현은 헬라어로는 에이미(존재)가 된다. 하야 아세르 하야는 하늘의 하나님이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온 존재의 하나님이시다. 하야가 현재이면서 미완료이고 지금도 역사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시제에 얽매이지 않는다. 산 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헾타) (프뉴마톤)』보좌(드로노스) 먼저 보좌에 대해서 보면, 마태복음 534절에서『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하늘이 호 데오스의 보좌라는 것이다. 하늘은 단수로 사용되므로 보좌는 성전에 있다. 요한계시록 45절에서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일곱 등불(등잔대)이 일곱 영이다. 보좌는 일곱 등잔대 뒤에 있으므로 지성소에 있는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이나, 성막의 지성소나 같은 개념이다.

히브리서 81-2절에서『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우라노이스:복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복수의 우라노이스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히브리어 샤마임)를 의미한다. 하늘은 샤마임으로 표현되는데, 진리의 말씀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비진리는 땅을 의미한다. 보좌는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928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보좌는 심판의 장소인데,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성도 역시 열두 보좌들에 앉아서 심판한다는 의미가 된다.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있기 때문이다.

『일곱(헾타) (프뉴마톤)』은 일곱 등잔대라 했다. 일곱은 언약, 영은 말씀이다. 언약의 말씀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일곱을 통해서 구원을 말씀하시는데, 비진리의 인간들은 육으로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계속 계시록에서 칠(언약)을 말하고 있다. 언약의 말씀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주어지는 것이다. 언약의 말씀이 없고, 율법으로 살아가면 은혜와 평강이 없다는 말이다. 언약을 성취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성도 역시 언약의 성취자가 된다


5. καὶ ἀπὸ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ὁ μάρτυς, ὁ πιστός, ὁ πρωτότοκος τῶν νεκρῶν καὶ ὁ ἄρχων τῶν βασιλέων τῆς γῆς. Τῷ ἀγαπῶντι ἡμᾶς καὶ λύσαντι ἡμᾶς ἐκ τῶν ἁμαρτιῶν ἡμῶν ἐν τῷ αἵματι αὐτοῦ,

『또 충성된(피스토스)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개역개정)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자들 중에서 처음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 통치하시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우리를 사랑하사 자신의 피를 통하여 우리의 죄들로부터 우리를 해방하시고』(헬라어 번역성경)


헬라어 성경은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라고 되어 있으며, 있을지어다 라는 표현은 개역개정이 추가한 것이다. 은혜와 평강은 칠에 해당되며, 안식에 들어간 존재의 개념이다. 이렇게 되라는 말이다. 은혜라는 말은 창세기 68절에서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히브리어 헨2603)를 입었더라(마차)』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노아가 진리를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마차는 발견하다 라는 의미다.

2603기본어근【2583과 비교】; 본래의미는‘구부리다’,또는 아랫사람에게 호의로 몸을 굽히다;‘은혜를 베풀다,‘주다’, 사역동사 ‘애걸하다’(, 간청으로 은혜를 얻다 ):- 간구하다, 은총입다, 베풀다, 은혜롭게(대하다,베풀다), 자비롭다, 자비를 베풀다, 긍휼히 여기다, 기도하다, 기원하다,

2583은 파생된 내용으로서, 2580 1908에서 유래; 본래 의미는‘기울다’ 함축적으로 (저녁의 비낀 빛이)‘기울어지다’ 특히 진을‘치다’ 일반적으로‘진치다’(거주, 또는 공격을 위해) :- (장막에) 거하다, 장막치다, 거하다, 진치다, 끝나다, 눕다 라는 의미다.

요한복음 114절에서『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ἐν ἡμῖν 엔 혜민) 거하시매 (ἐσκήνωσεν에스케노센)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거하시매 라는 말이 히브리어로는 헨과 같은 단어인 것이다. 에스케노센(ἐσκήνωσεν) 엔 헤민은 우리(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텐트(심령 속에 성전) 안에서 라는 말이다. 그래서 은혜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는 개념인 것이다. 은혜는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는 것이다.

평강은 결합하다, 하나가 되다, 안식 등의 의미가 있다. 하나가 되므로 안식이 된다. 히브리어 샬롬과 같은 의미다. 샬롬은 샤람(완전하다)에서 나온 단어다. 완성된 상태를 의미한다. 세상에서 나타나는 평강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평강이다.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면 세상에 대한 고통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쁨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고통과 기쁨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둘이 나누어지면, 고통은 악하게, 기쁨은 선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나누어지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5절에서는 예수님에 대해서, 죽음으로부터 먼저 일어나신 믿음이라는 증인 이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네가지로  소개하고 있다. 피스토스는 신실하다 라는 의미다. 신실한 증인, 처음 나신 분, 통치하신 분, 죄들로부터 해방하시는 분으로 소개된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도들의 심령 속에 대제사장으로 함께 거하신다. 대제사장은 하나님과 성도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부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이다.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났다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 하늘의 생명으로 나신 분을 의미하며, 부활의 첫열매를 의미한다. 그리고 땅의 임금들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땅의 임금들은 세상에서 권세를 쥐고 있는 사탄 아래 있는 모든 세력을 의미한다. 결국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다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정기간 그들에게 세상 통치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그의 피로 성도들을 죄로부터 해방시켜 주신다.

위의 네가지를 통해서, 성도들도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 하나님에 대한 증인이 되고, 예수님의 부활(거듭남)에 참여하고, 땅의 세력(사탄의 세력)을 통치하는 왕 같은 제사장(왕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죄로부터 해방시켜주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6. καὶ ἐποίησεν ἡμᾶς βασιλείαν, ἱερεῖς τῷ θεῷ καὶ πατρὶ αὐτοῦ, αὐτῷ ἡ δόξα καὶ τὸ κράτο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ἀμήν.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개역개정)

그의 하나님 아버지를 위해 우리를 왕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분께 영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심령 속에 임재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되게 하고,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신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자가 제사장이다. 출애굽기 196절에서『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왕과 제사장은 하나님과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하는 말은 곧 하나님이 백성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여기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를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아버지 우편에 앉아셨다. 우편이라는 말이 바로 하나가 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사장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이다. 세상에서 머무는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서도 존재하는 자임을 나타낸다. 따라서 성도가 날마다 죄인이며, 죄를 용서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땅에 있는 제사장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로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사역을 할 수 있다는데 대해서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이다.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모든 심판하는 권세가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영광(독사δόξα)은 보이지 않는 곳에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아버지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능력(크라토스 κράτος)은 심판하는 능력인데, 하나님이 아들에게 넘겨준 것이다. 즉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통치할 것이라는 것이다


7. Ἰδοὺ ἔρχεται μετὰ τῶν νεφελῶν,καὶ ὄψεται αὐτὸν πᾶς ὀφθαλμὸς καὶ οἵτινες αὐτὸν ἐξεκέντησαν, καὶ κόψονται ἐπ’ αὐτὸν πᾶσαι αἱ φυλαὶ τῆς γῆς. ναί, ἀμήν.

『볼지어다 그가 구름(네펠론)을 타고 오시리라(에르케타이)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개역개정)

보라 그분께서 구름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애통하리로다 아멘.』(헬라어 번역성경)


『볼지어다(이두 Ἰδοὺ)』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관심을 이끈다. 네펠론(νεφελῶν)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표현이다. 에르케타이(ἔρχεται )는 미래시제가 아니라 현재 중수디포태 시제로서 오시게 한다 라는 표현이다. 중수디포태는 수동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의미는 능동이다. 자신을 위해 타인에 의해 보내짐을 받는 능동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시므로 천국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는 것이다. 에르케타이는 미래가 아니라 현재적인 용법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오고 있는 것이다.

구름들(네펠론:여성복수 νεφελῶν)과 함께(메타μετὰ)라는 말에서 함께라는 말은 연합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마태복음 123절에서『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메타) 계시다 함이라.』임마누엘(6005)에서 60055973과 접미대명사가 삽입된 410에서 유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사야가 말한 메시야의 예표적 이름이다.

구름은 상징적인 표현이다. 단수로 사용되면, 물리적인 구름이다. 이것을 여호와의 영광(임재)과 심판으로 표현했다. 그러나 복수로 사용되는 것은 성도에 대한 이야기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말씀들이다.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천사와 함께 온다는 표현을 했다.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다니엘서 713절에서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문법적으로 복수)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개역개정은 구름을 타고 라고 되어있는데, 마찬가지로 구름과 함께이다. 인자같은 이는 보통 사람을 의미하며 사람이 심판권을 받기 위해 하늘 보좌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재림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님이 부활하신 다음에 성부 하나님 우편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심판의 권능을 받기 위함이다.

사도행전 233절에서『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권능을 받는 모습이다. 사도행전 531절에서『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심판의 권능을 받는 모습이다. 마태복음 1628절에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마태복음 24 30절에서『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여성 복수)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531절에서『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따라서 구름들은 왕권과 심판의 권능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심판과 구원을 가지고 온다는 말이다. 예루살렘(성전)을 심판하기 위해 구름들(왕권의 권능)과 함께 오신다는 표현이다. 로마 군대에 의해 A.D.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짐으로 통곡과 슬픔으로 가득찬 모습을 보여준다.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는 유대인들이다. 찌른 자들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목격했다. 역사 속에서 성취되었다. 역사는 그림자이다. 실체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해준다. 성도의 옛사람(예성전)을 다 부숴버리고 새로운 성전을 세우는 것이다. 생명으로 거듭난 자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의 재림과 연계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땅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의미다. 스가랴 1210절에서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스가랴 12장부터 14절까지는 이스라엘에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개와 애통함을 나타낸다


8. Ἐγώ εἰμι τὸ ἄλφα καὶ τὸ ὦ, λέγει κύριος ὁ θεός,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온)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에르코메노스)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개역개정)


이제도 계시고 계속 계셔왔고 지금도 오고 계시는 전능자이신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시작과 끝마침이라 하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이제도 있고』에서 온은 지금 존재하시는 분이며,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신다. 전에도 있었다는 표현은 그 분이 성부와 함께 존재해 있어왔던 것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서 여호와라는 표현이다. 요한복음 1 1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에르코메노스는 현재 중수디포태 시제로서 오고있다 라는 표현이다. 전능하신 분이라는 말은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성도의 심령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시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를 세우는 것은 왕이 한다. 예수님을 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은 시작이고 끝이라는 말이다. 히브리어로는 에트(את)이다. 에트는 목적격 조사로 사용된다. (א)는 알레프로서 하나님, (ת)는 타우로서 십자가를 표현한다. 알레프(1)가 타우(400)로 완성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완성하겠다는 의미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게 하겠다는 말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세상의 흙속에 넣음으로 사람이 되고 하나님 처럼 스스로 되어 보라고 했지만, 결국 하나님이 스스로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으므로 그들과 다시 하나가 되겠다는 언약이 포함된 것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탕자)을 돌아오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게 하나님의 뜻이고 목적인 것이다.

창세기 11절에서 성전의 머리되시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바라)하시니라 (בְּרֵאשִׁ֖ית בָּרָ֣א אֱלֹהִ֑ים אֵ֥ת הַשָּׁמַ֖יִם וְאֵ֥ת הָאָֽרֶץ) 직역하면 성전의 머리되시는 하나님이 하늘을 바라하시고 땅을 바라하시니라 라는 것이다. (에레츠)(에트) 바라(창조)한다는 말은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미다. 마찬가지로 하늘(샤마임)(에트) 바라(창조)하신다는 말은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위의 것과 합하면 하나님은 하늘의 하나님과 땅의 하나님이 되겠다는 의미다. 이것이 창세기 21절에서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라고 번역했는데,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이루어지다 라는 말이다.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일곱째 날에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범죄한 영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으로 시작한 땅의 군대가 마지막 아담에 이르러 하늘의 군대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과의 관계는 아브라함과 멜기세덱과의 관계로 표현될 수 있다. 첫사람 아담의 게보 안에 있는 아브라함은 부모 형제 친척으로부터 나온 자이다. 이는 첫사람 아담으로 부터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아브라함은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사람 아담으로 만나야만 하는 것을 말해준다. 마지막 사람 아담을 만나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인자)이 되는 것이다. 인자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으나,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상이 없는 자들은 인자가 아닌 것이다.

에트는 알레프부터 타우까지 이어진다. 히브리어의 자음에는 엘레프(1 하나님) 베트(2 성전) 기멜(3) 달렛(4) (5) 와우(6) 자인(7) 헤드(8) 테드9) 요드(10) 카프(20) 라멧(30) (40) (50) 사멕(60) 아인(70) (80) 차데(90) 코프(100) 레시(200) (300) (300) 타우(400)로서 21개가 신과 쉰은 같은 의미(이빨)이다. 그래서 사실상 20개의 자음이 들어있다. 이것들이 알레프와 타우 가운데 연결되어 있다. 창조 첫째날부터 일곱째 날 까지 히브리어 알파벳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가운데 있는 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표현한 것이다.

이사야 446절에서『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미숀)이요 나는 마지막(에하론)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라고 말한다. 구원이 첫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사람 아담으로 끝나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 따로, 마지막 아담 따로가 아니라는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첫사람 아담의 흔적이 있으며, 마지막 아담에게는 첫사람 아담에게 주어진 약속의 흔적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여인의 후손이라는 약속과 하나님이 가죽옷을 입히셨다는 것이다. 그것의 실현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나타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을 전능자로 표현되었는데, 히브리어는 엘 샤다이에서 출발한다. 창세기 171절에서『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샤다이(7703)본래의미는 ‘굵고 튼튼하게 하다’, (상징적으로, ‘강력한’수동적으로 ‘공략할 수없는’);함축적으로, ‘파괴하다’:죽은, 파괴하다(-하는 사람), 압박하다, 약탈자, 철저히 황폐하게 하게 하다 등의 의미다.

엘 샤다이는 신약에서는 호 데오스로 표현된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성도들은 데오스(복수)로 표현한다. 톤 우라논과 같은 개념이다. 호 로고스(말씀)는 그리스도이시다. 엘은 하나님이다. 엘에 글자가 붙으면 여러가지 하나님의 모습으로 된다. 엘로힘은 백성과 짝이 되는 하나님이다. 임마누엘은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다. 호 데오스는 과거 현재 미래의 하나님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인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재림도 먼 미래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성도는 예수와 함께 죽었고, 부활하며, 승천하고 재림하여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께서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올 때, 살아있는 부활의 영적 존재가 된다.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죽는 혼적인 존재인 것이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라는 말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혼적인 자)가 아무리 하나님을 외쳐도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2230-32절에서『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죽은 자의 부활을 논할진대 하나님이 너희에게 말씀하신 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임마누엘이 된 성도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며, 아들들의 계보에 들어가는 것이다. 단순히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심령 속에 임마누엘이 되는 자가 구원받는 것이다


9. Ἐγὼ Ἰωάννης, ὁ ἀδελφὸς ὑμῶν καὶ συγκοινωνὸς ἐν τῇ θλίψει καὶ βασιλείᾳ καὶ ὑπομονῇ ἐν Ἰησοῦ, ἐγενόμην ἐν τῇ νήσῳ τῇ καλουμένῃ Πάτμῳ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τὴν μαρτυρίαν Ἰησοῦ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엔 테 들맆세이)과 나라(바실레이)와 참음(휘포모네)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개역개정)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증언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엔 테 들맆세이(ἐν τῇ θλίψει)는 심령 속의 지성소를 통해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라고 떠미는 것을 의미한다. 바실레이는 하나님 나라 왕국을 의미한다. 휘포모네(ὑπομονῇ)는 하나님 보좌 아래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자는 이 같은 자가 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신도들은 심령 속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라는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εγω ιωαννης ο και αδελφος υμων και συγκοινωνος εν τη θλιψει και εν τη βασιλεια και υπομονη ιησου χριστου εγενομην εν τη νησω τη καλουμενη πατμω δια τον λογον του θεου και δια την μαρτυριαν ιησου χριστου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함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Ἐγὼ Ἰωάννης, ὁ ἀδελφὸς ὑμῶν καὶ συγκοινωνὸς ἐν τῇ θλίψει καὶ βασιλείᾳ καὶ ὑπομονῇ ἐν Ἰησοῦ, ἐγενόμην ἐν τῇ νήσῳ τῇ καλουμένῃ Πάτμῳ διὰ τὸν λόγο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τὴν μαρτυρίαν Ἰησοῦ

나 요한은 또한 너희 형제요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어려움과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동참하는 자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함으로 인해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스테파누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로 표현되었으나,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예수로만 표현되었다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노라 이 말은 요한이 핍박을 받자,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와 그 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 그 보좌에 머무는 인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510절에서『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마태복음에서는 천국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강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들어갔는데, 들어가자 말자 전쟁이 일어난다. 이것은 성도의 심령이 세워지면 곧바로 핍박이 도래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밧모섬과 같이 일곱 적들이 둘러싸는 모습이다. 그래서 성도는 넘어지기도 한다. 일곱 귀신들린 막달라 마리아가 최초로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된다.

사도행전 1422절에서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여기도 환란은 들리세스 로서 심령 속의 호 로고스에게 들어가라는 압박을 의미한다. 핍박이 오면 바로 심령 속의 호 로고스를 찾으라는 말이다. 인내는 휘포모네인데, 성도가 보좌에 머무는 인내이다. 영적 전쟁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워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오로지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하나님께 간구하는 일만 필요한 것이다.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가 이런 상태로서 들맆세스와 휘포모네가 필요한 상태임을 말해주신다. 성도들은 심령 속의 성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이 이를 알려주는 말이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갇혀있는데,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본 것이다. 성도가 핍박이 올 때, 심령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거 인내하면서 간구하면 하늘 문이 열려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10-11. ἐγενόμην ἐν πνεύματι ἐν τῇ κυριακῇ ἡμέρᾳ καὶ ἤκουσα ὀπίσω μου φωνὴν μεγάλην ὡς σάλπιγγος λεγούσης· ὃ βλέπεις γράψον εἰς βιβλίον καὶ πέμψον ταῖς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ς, εἰς Ἔφεσον καὶ εἰς Σμύρναν καὶ εἰς Πέργαμον καὶ εἰς Θυάτειρα καὶ εἰς Σάρδεις καὶ εἰς Φιλαδέλφειαν καὶ εἰς Λαοδίκειαν.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개역개정)

내가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을 때에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필라델피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 하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주의 날은 여호와의 날이다. 주께서 성령으로 임재하실 때에 음성이 들려오는 바로 그때가 주의 날이라는 것이다. 교회에서 일요일에 주의 날이라고 모이는 그런 날이 아니라는 의미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고 호 로고스의 음성이 들여오면 바로 그 성도에게는 주의 날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38절에서 『그들이 그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바람은 성령을 의미한다. 그 날 바람이 불때는 여호와의 날과 같은 개념이다. 그리고 음성이 들려온다. 여호와의 날은 심판과 구원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성도에게 여호와의 날이 될 때 옛사람은 불타서 죽고, 성전이 세워져서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부활한 자만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525-29절『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성령이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실때 영적으로 살아나야 음성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귀신이 쫒겨나가는 것이다. 나팔이 불어지는 것은 생명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이 성도의 심령을 울릴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죽었던 영이 깨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설교하는 대부분의 말씀은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로 오염된 설교가 나무나 많은 것이다. 생명의 소리가 아니라, 그저 인간들이 부르짖는 소리일 뿐이다.

몸을 돌이켜 어떤 소리인지 알아보려는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며 네가 경험한 것을 글로 써서 일곱 교회에게 보내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림을 보여주셨고, 그것을 글로 써서 대표적인 일곱 교회에 보낸 것이 요한계시록인 것이다. 편지를 쓰는 것은 살아있는 영(성령)으로 편지를 쓰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33절에서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육의 마음 판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인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전이 되는 사람 만이 영을 살릴 수 있는 말씀을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시며, 산자의 하나님과 함께 사는 자(성도:성전)가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가 임재할 때 핍박이 오며, 하나님은 들맆세스(보좌에 들어가려고 미는 압박)와 휘포모네(보좌에 머무는 인내)하게 해 주신다. 그 핍박은 요한이 밧모섬에 갇힌 것과 사도바울이 빌립보에서 감옥에 갇혀있을 때를 생각해본다. 성도 역시 심령 속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때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마음 판에 기록하고 그것을 전하는 자가 된다. 그래서 성도가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고, 진리를 마음 판에 새긴 사람이 되며, 그런 사람 만이 그리스도의 편지를 쓸 수 있다. 그것을 생명책이라고 한다. 하나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어 생명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성도는 주의 날에 심령 속에 성전이 되고, 생명책이 되고 그 생명책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샘솟듯이 편지로 나가, 영적으로ㅜ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이다


12. Καὶ ἐπέστρεψα βλέπειν τὴν φωνὴν ἥτις ἐλάλει μετ’ ἐμοῦ, καὶ ἐπιστρέψας εἶδον ἑπτὰ λυχνίας χρυσᾶς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개역개정)

내가 돌아서서 나와 말씀하신 그 음성을 알아보려 돌아설 때에 내가 일곱 금 등잔대를 보았는데』(헬라어 번역성경)


에테스트레파(기본형은 에파스트로퍼ἐπέστρεψα)는 회개하다, 돌이키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물리적으로 방향을 틀지만, 마음을 바꾸는 그런 의미를 갖는다. 요한은 나팔소리 같은 크고 우렁찬 소리로 누군가 말하는 것을 들었고, 그 소리의 주인을 보기 위하여 돌아설 때에, 일곱 금촛대 사이에 계신 주님을 보았다. 환상을 보게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본것으로 끝난다면 의미가 없어진다

개역개정에는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일곱 금 등잔대를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일곱 등잔대는 계시록 120절에서『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결국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를 의미한다. 등잔대는 성소의 기물이며, 하나 밖에 없다. 하나이지만 일곱 가지처럼 뻣어나서 일곱개의 불을 밝히고 있는 모양이다. 한 달란트로 두들겨서 만든 것이다

계시록에서 일곱 등잔대라고 했지만, 성소에 있는 하나의 등잔대에 뻗어있는 일곱 가지의 등불인 것이다. 일곱 교회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세상의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로 하나가 된다. 이것은 온 세상에 있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말한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교회와 함께 계시고 모든 교회를 돌보시고 계신다.  교회는 세상을 밝히는 촛불(등잔)이다. 금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고 가슴에는 금띠를 띠고 계셨다.


13. καὶ ἐν μέσῳ τῶν λυχνιῶν ὅμοιον υἱὸν ἀνθρώπου ἐνδεδυμένον ποδήρη καὶ περιεζωσμένον πρὸς τοῖς μαστοῖς ζώνην χρυσᾶν.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개역개정)

그 일곱 등잔대의 한가운데에 인자 같으신 분께서 발까지 내려온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인자 같은 분은 등잔대 한 가운데 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되시고 함께 하신다는 의미다. 레위기 8 7-9절에서 대제사장이 입는 옷을 표현하고 있다. 인자가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레위기 164절에서는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히브리서 414절에서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세마포 옷은 말씀을 상징한다. 허리에 띠를 매는 것은 진리를 의미한다. 에베소서 614절에서『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금으로 되어 있다. 금은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이다. 계시록 113절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고 있는 장면이다. 인자 같은 이라고 요한이 말한 것은,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요한이 본 주님의 모습과는 매우 다른 부활하신 분으로서 찬란하고 영광스럽고 위엄 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14. ἡ δὲ κεφαλὴ αὐτοῦ καὶ αἱ τρίχες λευκαὶ ὡς ἔριον λευκὸν ὡς χιὼν καὶ οἱ ὀφθαλμοὶ αὐτοῦ ὡς φλὸξ πυρὸς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개역개정)

그분의 머리와 털은 양털같이 희고 눈같이 희며 그분의 두 눈은 불꽃 같고』(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여준다. 마태복음 283절에서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마가복음 93절에서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변화산에서 보여준 흰 모습은 계시록 114절의 모습과 유사하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머리와 털(수염)은 순결한 흰 색이었다. 흰 양털은 거룩을 상징한다. 눈은 영을 대변한다. 눈이 불꽃같다 라는 말은 영이 살아서 움직인다는 의미가 된다. 예수님의 눈은 어두운 곳을 밝히고 그 속에 감춰진 모든 것을 드러내는 강렬하고 환한 불꽃과 같았다. 예수님의 눈앞에서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어둠 속에 숨을 수 없다. 


15. καὶ οἱ πόδες αὐτοῦ ὅμοιοι χαλκολιβάνῳ ὡς ἐν καμίνῳ πεπυρωμένης καὶ ἡ φωνὴ αὐτοῦ ὡς φωνὴ ὑδάτων πολλῶν,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개역개정)

그분의 두 발은 용광로에서 달군 듯한 정제된 놋 같으며 그분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도 같고』(헬라어 번역성경)


요한은 예수님의 발을 보았는데, 마치 용광로에서 단련하여 빛나는 주석 같다고 하였다. 주석은 부식되지 않는 성질을 가진 금속으로 기원 삼천년 전부터 구리와 합금하여 청동을 만드는데 사용했으며, 오늘날에도 다른 금속과 합금하거나 도금에 사용하는 등 다양하게 이용되고 있다. 요한이 본 예수님의 발은 마치 풀무불로 달궈 새로 주조한 주석처럼 단단해 보였고 광택이 났다. 베드로전서 16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금보다 귀한 하나님의 아들들은 시험과 시련의 믿음을 통해서 창조된다. 예수님의 발은 주석과 같이 연단하시는 생명의 말씀을 나타낸다.

예수님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이 크고 우렁차고 멀리 울려 퍼지는 소리였다. 많은 물소리 같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많은 말씀을 하시고 있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말씀인 것이다. 그래서 많다는 표현을 한다. 죽이는 물은 마라의 물처럼 고여있는 쓴물이지만 살리는 물은 생수의 강이 넘치고 흐르는 물로서 단물이다. 시편 293절에서『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에스겔 432절에서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16. καὶ ἔχων ἐν τῇ δεξιᾷ χειρὶ αὐτοῦ ἀστέρας ἑπτὰ καὶ ἐκ τοῦ στόματος αὐτοῦ ῥομφαία δίστομος ὀξεῖα ἐκπορευομένη καὶ ἡ ὄψις αὐτοῦ ὡς ὁ ἥλιος φαίνει ἐν τῇ δυνάμει αὐτοῦ.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개역개정)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으며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 날카로운 칼이 나오고 그분의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빛나는 것 같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의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었는데,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로서, 세상에 있는 모든 주의 종들(사역자)을 말한다. 다니엘 123절에서『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창세기 1장 에서 넷째 날 해와 달과 별이 등장한다. 해와 달과 별은 성소에 상징적으로 표현된다. 해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 달은 해의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것으로 율법을 상징한다. 율법을 통하서 복음(그리스도)를 깨달았을 때, 그 사람을 별이라고 한다. 이를 소금언약이라고 한다. 소금 언약이 된 사람은 빛으로 나가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복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을 별이라 하는데, 그 별을 사자(앙겔로스)라고 말을 한다. 즉 등잔대에 해당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에 별과 같이 많게 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별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성령의 능력으로 하늘로부터 태어난 자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사자들을 오른쪽에 두고, 진리를 선포하고 보호하고 권능을 주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왔는데, 좌우에 날선 검은 정확하고 예리하게 심판하시는 주님의 심판도구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심판도 말씀으로 행하신다. 이사야 492절에서『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의  그늘에 숨기시며 나를 갈고 닦은 화살로 만드사 그의 화살통에 감추시고.』호세아 65절에서『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에베소서 617절에서『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히브리서 412절에서『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양날의 검에서, 한 부분은 심판이고 다른 한 부분은 구원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심판)과 사랑의 하나님(구원)이심을 항상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사역자가 비진리를 진리와 섞어서 말을 하면 하나님의 날선 검이 심판이 되는 것이다. 비진리는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를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214-16절에서『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예수님의 오른편에 있는 사자들이(올바른 사역자) 말씀을 선포하므로서 싸우는 것이다. 가나안에서 여호수아가 일곱 족속과 싸우는 것이나, 예수님이 일곱 귀신 들린 막달라 마리아를 치유하는 모습이나, 오늘날 인본주의 율법주의에 대항해서 진리를 선포하는 것, 우리의 심령 속에 미혹되는 영을 쫒아내고 성전을 세우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양날의 검으로 싸우는 것이다.

예수님의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이 환하고 강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도행전 2613-15절에서『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사울(이흐 사도바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실체를 빛으로 본 것이다


17. Καὶ ὅτε εἶδον αὐτόν, ἔπεσα πρὸς τοὺς πόδας αὐτοῦ ὡς νεκρός, καὶ ἔθηκεν τὴν δεξιὰν αὐτοῦ ἐπ’ ἐμὲ λέγων· μὴ φοβοῦ· ἐγώ εἰμι ὁ πρῶτος καὶ ὁ ἔσχατος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개역개정)


내가 그분을 볼 때에 죽은 자같이 그분의 발 앞에 쓰러지니 그분께서 오른손을 내 위에 얹으시며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헬라어 번역성경)


요한이 본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너무나 놀라워서 죽은 것 같이 넘어졌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본체를 보려면 육적인 몸이 죽어야 함을 말해준다. 단순히 지식이나 신비한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분이며, 자아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분이다. 요한은 찬란하고 위엄 있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두려워하였고 그 앞에서 죽은 자 같이 엎드려졌다. 이러한 현상은 다니엘도 경험하였고, 사도 바울도 경험하였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변화산에서 직접 주님의 영광의 모습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며 엎드렸다.예수님은 엎드러져 죽은 자처럼 되어버린 요한에게 손을 얹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다시 처음이요 마지막이라는 표현을 했다. 알파와 오메가 라는 표현과 같은 말이다. 처음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세상에 와서 마지막 사람으로 십자가에서 그 죽음의 대속을 하셨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하나님 나라로 만드시는 것이다. 원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 대적한 범죄한 천사들로 인해서 세상에 물질세계로 들어와 범죄한 영들에게 죽어야 할 몸을 만들어주신 분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십자가에 대속의 죽음을 이루어신 분이다. 알파와 오메가는 히브리어로 알렙프(하나님)와 타우(십자가)이다. 알레프와 타우가 결합된 단어가 에트로서 목적격 조사인 것이다. 목적은 죽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것이다. 죽음의 단어는 히브리어로 무트이다. 말씀으로 완성한다는 의미다. 죽어야 하는 몸(예수)로 와서 죽지 않는 몸(그리스도)로 완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이와 같은 것이다. 성도가 예수로만 알고 있고 그리스도로 넘어가지 못하면, 하나님 아버지는 두려운 분이 된다. 예수로만 알고 그리스도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죽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사랑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환상이던 꿈이던 만나는 예수님은 육신으로 보는 분이므로 그 분이 두렵게 여겨진다. 그러나 육신이 아니라 영으로 바라보는 자는 그 분이 두렵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이유는 죄를 대속하러 오시고(첫사람 아담),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신(마지막 아담) 분이라는 말이다.

로마서 83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요한복음 1230-33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 이니라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사탄이 쫒겨난 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 임금이 쫒겨나면 성령께서 오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68절에서『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성도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연합되어 죽으면, 심령 속의 사탄이 쫒겨나고, 그러고 나면 성령이 임하셔서 죄에 대해서, 의에 대해서, 심판에 대해서 책망하신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 죄가 된다. 그리스도 를 믿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면 구원이라는데도 믿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이 죄라는 말이다. 의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부활하여 성부 하나님께로 모든 세상죄를 짊어지고 가셨으므로, 죄에 대해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심판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성령이 오는 것이다. 그 증인이 그리스도이고 성령인 것이다.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의 관계를 모르면 죄가 무엇인지, 왜 구원이 필요한지, 그리고 심판을 당하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제는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의 이야기와 연계되어 이해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반쪽짜리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에덴동산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첫사람 아담의 실체)만 부여잡고 있다면 알레프에 머무는 신앙이 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반쪽짜리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려운 하나님으로 머물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 아담은 부활하셔서 하늘에 승천하시고 성도의 심령 속에 성령의 능력으로 임재하셔서 성전으로 오시면 테드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으로 되는 것이다. 구원의 완성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인 것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첫사람 아담으로 태어나고, 마지막 아담으로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성도가 부부와 같이 하나가 된다


18. καὶ ὁ ζῶν, καὶ ἐγενόμην νεκρὸς καὶ ἰδοὺ ζῶν εἰμι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 καὶ ἔχω τὰς κλεῖς τοῦ θανάτου καὶ τοῦ ᾅδου.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개역개정)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음부와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전에 죽었다는 말은 영적으로 죽은 자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이 흙에 갇힌 것이 죽은 것이다. 그리고 또 죽어야 한다. 이게 둘째 사망이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이미 둘째 사망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사망이 없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자기 십자가이며, 자기 부인이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다. 영적으로 산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는 것이다. 신이 들린 자가 된다. 이를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하나님 만이 존재이고, 나 라고 여겨진 흙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사망과 음부의 열쇠(심판)를 가졌다는 것이다. 히브리어는 스올이라고 한다. 히브리 사람들은 하늘, 땅, 지하 3단계로 생각한다. 스올은 지하의 세계로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옥이나 음부를 마치 지하의 불 속에 갇혔는 곳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 음부는 둘째 사망이 있는 곳이다. 


음부는 하도우(기본형은 하데스ᾅδου1492)인데, 부정 불변사이다. 알파와 에이도의 합성이다. 하데스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하나님 아버지에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보지 못하는 것도 음부이다.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하나가 되지 못하면 그것이 음부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육에 갇혀있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그게 지옥이고 음부인 것이다. 땅에 존재하는 자들은 음부요 지옥에 있는 것이다. 육체가 실제로 죽으면 천국과 음부로 나뉘어 질 것이다. 이는 장소적인 개념이라기 보다 영생과 영생이 없는 그런 의미로 받아드려진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그것이 셋째 하늘이며 천국인 것이다. 그러나 성전이 세워지지 않은 자는  그곳이 지옥이며 음부인 것이다. 지옥이라는 표현은 음부를 잘못 번역한 것으로 여겨진다. 지옥이라는 개념은 영이 육체 속에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것이 죽음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육체 속에 있으므로 "자아"라는 비존재가 나타나므로, 하나님이 이것을 부인하라는 말씀이다. 이게 둘째 사망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이 강제로 둘째 사망에서 심판하시겠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16장 16-19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지 못하는 자는 음부에 들어간 말이다. 그 모든 권세를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면 사망에 있는 것이다. 



19-20. γράψον οὖν ἃ εἶδες καὶ ἃ εἰσὶν καὶ ἃ μέλλει γενέσθαι μετὰ ταῦτα.τὸ μυστήριον τῶν ἑπτὰ ἀστέρων οὓς εἶδες ἐπὶ τῆς δεξιᾶς μου καὶ τὰς ἑπτὰ λυχνίας τὰς χρυσᾶς· οἱ ἑπτὰ ἀστέρες ἄγγελοι τῶν ἑπτὰ ἐκκλησιῶν εἰσιν καὶ αἱ λυχνίαι αἱ ἑπτὰ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 εἰσίν.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개역개정)


네가 본 것들과 지금 그들이 존재하는  것들과 그가 수행하려고 하는 것들을 기록하라 이것은 일곱 별과 일곱 금 등잔대의 신비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메신저들이요 네가 본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지금 있는 일은 현재 3인칭 복수 능동태이다. "그들이 존재한다"라고 번역된다. 호 미스테리온은 비밀(신비)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11절에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누가복음 8장 10절에서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전서 2장 7절에서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미리 정하신 것이 비밀이라는 말이다. 


고린도전서 15장 51절에서도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에베소서 1장 9절에서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예정의 실체는  에베소서 5장 32절에서 말하는 비밀이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교회는 성전된 자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를 떠나 흙속에 갇혀 영적으로 죽었지만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부활하여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짐으로 하나님 나라가 되는 자를 의미하다. 그래서 비밀은 부활이며,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성도의 성전 안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는 것이 큰 비밀인 것이다. 비밀은 심령 속의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되는 것이다. 요한이 1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성도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그리스도를 나타내고자 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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