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4장 

1. Μετ τατα εδον, κα δο θρα νεγμνη ν τ οραν, κα  φων  πρτη ν κουσα ὡς σλπιγγος λαλοσης μετ’ μο λγων· νβα δε, κα δεξω σοι  δε γενσθαι μετ τατα.

이 일 후(메타 타우타)에 내가 보니 하늘(엔 토 우라노)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게네스다이)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개역개정)

이 일 후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문이 열려 있는데, 내가 들은 첫 음성 곧 나팔 소리같이 내게 하던 음성이 이르되, 여기로 올라오라 이후에 반드시 일어날 것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일 이후"라는 말은 이전의 일곱 교회에 대한 이야기 후에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일곱 교회를 말씀하시면서 회개하라,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려 일곱번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음성을 듣는 자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는 것이다. 2-3장은 세상에 있는교회를 상징하지만, 4-5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를 설명한다. 계시록 3장 21절에서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라고 말한다.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엔 토 우라노"에서 관사가 있는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만일 복수 하늘인 경우는 심령 속에 임재하는 하나님 나라가 된다. 하나님 나라는 세가지로 표현된다. 첫째 하늘은 보좌의 하나님이 계시는 곳, 둘째 하늘은 그리스도, 셋째 하늘은 성도의 심령속의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천국을 의미한다. 천국은 바로 셋째 하늘을 상징하는 것이다.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는 부활과도 같은 개념이다. 이전의 것은 죽고 하늘로 부터 나타나는 것이다. 이게 하늘의 문이 열렸다는 표현이 된다. 예수님이 세례를 받고 올라올 때 하늘이 갈라진 것이다. 그래서 세 하늘이 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늘이 하나됨은 인간으로 보면 "자기"라는 존재는 다 없어지는 것이다. 셋째 하늘이 심령 속에 세워지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게 세례다. 세례는 물에서 빠져 죽고, 성령의 불로 타 죽은 자가 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노아시대 홍수에 죽었고, 롯 시대 소돔성에서 불로 타 죽은 존재라는 말이다. 세례를 받은 자가 부활로 하나님 나라가 열리는 것이다. 


나팔소리 같은 음성은 예수님의 음성이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다. 나팔소리는 다양하게 나에게 들릴 수 있는 것이다. 직접 또는 성경을 읽으면서 감동으로 드릴 수 있다. 고린도전서 15장 52절에서,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말은 부활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는 그 분과 함께 부활한 자이고,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진 자인 것이다. 부활은 부모로 부터 받은 죽었던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몸으로 하늘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영이 영의 몸을 입는 모양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이 있은즉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은 혼이다. 옛사람의 혼(네퓌쉬 하이)은 죽고, 새사람의 혼으로 살아나서 영과 결합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다른 종교 중에서 옛혼(옷과 같은 것)을 열심히 깨끗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의의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전쟁과도 같다. 나팔소리는 전쟁의 신호탄인 것이다. 


"올라오라"(아나바:νβα)는 마가복음 1장 10절에서 "곧 에서 올라오실새(아나바이온ἀναβαίνων)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같은 아나바를 사용했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계시록 4장 1절을 두고 휴거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절에서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단순히 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문을 여시고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게네스다이는 기본형이 기노스케(영어의 become)로서 ~되다 라는 의미다. 마땅히 일어날 일은 반드시 되어질 일들이다. 성도의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는 일이다. 이것이 전쟁인 것이다. 


2. Εθως γενμην ν πνεματι, κα δο θρνος κειτο ν τ οραν, κα π τν θρνον καθμενος,

『내가 곧 성령에(엔 프뉴마티)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개역개정)

내가 즉시로 성령 안에 있었는데, 보라, 하늘에 좌가 놓여 있고 그 좌에 한 분이 앉아 계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엔 프뉴마티는 성령 안에서 라는 의미다. 성령 충만이다.  하나님의 보좌는 성도의 심령 속의 보좌를 의미한다. 보좌 위에 앉아있는 분은 성부 하나님이시다. 그분이 성도를 다스린다. 보좌가 성도의 심령 속에 놓였다는 말은 다스린다는 의미가 된다. 3장까지 일곱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는 자신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신과의 싸움은 성령 안에서의 싸움이다. 그래서 그 성령 안에서 싸움을 이기고 보니 하늘의 보좌가 보인 것이다. 여기서 보좌는 하나님의 능력과 통치를 상징하는 말이다. 또한 하나님의 통치의 장엄함은 이 세상 그 어떠한 통치자의 영광과도 비교될 수가 없다. 즉, 요한이 살았던 1세기의 로마 황제의 영광도 심령 속의 하나님의 통치의 영광과는 전혀 비교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3. κα  καθμενος μοιος ρσει λθ ἰάσπιδι κα σαρδίῳ, κα ρις κυκλθεν το θρνου μοιος ρσει σμαραγδν.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개역개정)

앉으신 분의 모습은 벽옥과 홍보석 같고 좌 둘레에 무지개가 있어 보기에 에메랄드 빛 같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보석은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도 보석과 같이 귀하다는 것이다. 출애굽기 28장 17-20절에서 "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첫 줄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이요 둘째 줄은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요 셋째 줄은 호박 백마노 자수정이요 넷째 줄은 녹보석 호마노 벽옥으로 다  테에 물릴지니 이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보석마다 열두 지파의 한 이름씩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새기고" 제사장의 흉패의 모습이다. 요한이 대제사장의 흉패와 같은 모습을 본 것이다. 홍보석은 유다지파, 녹보석은 단 등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상징하고 있다. 


리고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다고 한다.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나타낸다. 에스겔 1장 26-28절에서,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오는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요한계시록 21장 10-11절에서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새 예루살렘 성에도 이렇게 표현된다. 성도의 심령 속에 보석처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자는 귀하고  적다는 말이다. 


4. Κα κυκλθεν το θρνου θρνους εκοσι τσσαρες, κα π τος θρνους εκοσι τσσαρας πρεσβυτρους καθημνους περιβεβλημνους ν ματοις λευκος κα π τς κεφαλς ατν στεφνους χρυσος.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개역개정)

또 그 좌 둘레에 스물네 자리가 있고 내가 보니 그 자리들 위에 스물네 장로가 흰옷을 입고 앉아 있는데 머리에 면류관을 썼더라.』(헬라어 번역성경)


구약시대 성막을 통해서 보면 열두 지파가 있고, 레위 지파에도 열두명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가 된다. 이십사 장로는 성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법궤(하나님)를 중심으로 같이 움직이는 이스라엘의 모습이며, 오늘날 성도의 모습이기도 하다. 역대상 24-25장에서는 제사장 그룹과 찬양대는 이십사 순번으로 계속 돌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성전을 운행하는 숫자가 바로 이십사인 것이다. 신약에 와서는 장로는 왕같은 제사장을 표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 21장 12,14절에서 열두문과 열두기둥이 등장한다.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로 합쳐져서 이십사로 나아가게 된다. 


구약에서는 대제사장이 면류관을 썼는데, 신약에 와서 성도가 왕같은 제사장이 된다. 에베소서 2장 5-6절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미 부활하여 하늘에 앉히였다고 표현했다. 골로새서 3장 1-4절에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이 말들은 성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한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썼다고 한다. 흰 옷은 싸워 이긴 자의 거룩함을 나타내며, 거룩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를 의미한다. 세상에 대해서 죽으라는 것이다. 온갖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의 세계관에서 빠져 나와 진리로 들어가라는 말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비진리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흰옷은 그리스도의 옷이며, 예복을 의미한다. 


면류관은 이기는 자의 생명의 면류관이다. 이십사 장로들은 이 면류관을 받았다. 요한계시록 4장 10-11절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면류관을 받은 자는 자기의 것으로 취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린다. 베드로전서 5장 3-4절에서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을 얻으리라" 오늘날 교회에서 거짓 선지자들은 그 영광의 면류관을 자기의 것으로 내세운다. 계시록 12장 4절에서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5. Κα κ το θρνου κπορεονται στραπα κα φωνα κα βροντα, κα πτ λαμπδες πυρς καιμεναι νπιον το θρνου,  εσιν τ πτ πνεματα το θεο,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개역개정)

그 좌로부터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이 나오고 좌 앞에는 일곱 등불이 타고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헬라어 번역성경)


번개, 음성, 우렛소리는 출애굽기 19장 16절에서 "셋째  아침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하나님의 임재는 등불로 나타난다. 일곱 영은 성령을 의미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입으로 부터 나오는 말씀을 의미한다.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어 있다는 표현이다. 성령 안에 있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대부분 성경의 지식으로 말씀을 대하므로 성령의 감동이 없는 것이다. 완전힌 일곱 영의 말씀을 아는 것이 아니라, 여섯 영으로 알게 된다. 이를 육육육이라고 표현한다. 즉 부족한 말이 되는 것이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 위에 있다. 역사하시어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일곱 영은 성전에서 일곱 등잔대로 표현된다. 성도의 심령 속에 성령이 임하시면 일곱 등잔대가 된다. 등잔대는 성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한다. 떡상을 비추고 분향단을 비춘다.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 분향단은 기도를 의미한다. 그래서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생명의 말씀과 기도가 이루어진다. 


6. κα νπιον το θρνου ς θλασσα αλνη μοα κρυστλλ. Κα ν μσ το θρνου κα κκλ το θρνου τσσαρα ζα γμοντα φθαλμν μπροσθεν κα πισθεν.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개역개정)

그 좌 앞에 크리스탈 같은 투명한 바다가 있고 좌 가운데와 둘레에는 앞뒤에 눈이 가득한 네 생물이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유리 바다는 크리스탈같은 투명한 바다라는 말이다. 투명하다 라는 말은 불규칙이 아니라 규칙적으로 되어 있다는 의미가 있다. 규칙이라는 말은 하나님 말씀의 투명성과 정확성을 의미한다. 말씀이 투명하지 못하면, 마치 구름 속 있는 것처럼 의미가 불분명하게 된다. 창세기 1장에서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뉘어진다. 궁창(하늘)이 열린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막혔던 담이 열리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크리스탈과 같은 투명한 바다라는 것이다. 궁창이 열려 궁창 위의 물을 마셔야만 한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는 궁창 아래 물이다. 생명 나무의 열매는 궁창 위의 물이다. 두 열매가 하나의 나무에 있지만 하늘이 열리면 생명나무의 열매를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신앙은 성소로 비유된다. 성소 뜰에서 왔다갔다 하는자, 성소에 머무는 자, 지성소에 들어가는 자이다. 그래서 신앙은 자라간다는 말을 한다. 영적 눈을 떠야만 하는 것이다. 영적 눈은 성령 충만을 통해서 하늘이 열리게 되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  


먼저 네바람을 이해해야 한다. 네 바람에 대해서,  다니엘서 7장 1-3절에서 "바벨론 벨사살 왕 원년에 다니엘이 그의 침상에서 을 꾸며 머리 속으로 환상을 받고 그 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이후에 4-7절까지는 사자(바벨론),  곰(페르시아), 표범(헬라), 열뿔 가진 짐승(로마)이 등장한다. 이 네 짐승(국가)이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침공한다. 네 바람은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나라들에 대한 에언이다. 하나님 나라를 공격하는 사탄의 나라이다. 교회 안에서 거짓선지자들이다. 계시록에서는 네 생물에 대비되는 네 바람을 육육육으로 표현한다. 


네 생물은 법궤와 법궤를 지키는 그룹과 관련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유다지파로 부터 나왔다. 첫째 생물은 사자로서 성막으로 보면 동쪽을 의미한다. 창세기 49장 8-9절에서 "유다야 너는 네 형제 찬송이 될지라 네 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유다지파에서 통치자가 나온다는 말씀이다. 


7. κα τ ζον τ πρτον μοιον λοντι κα τ δετερον ζον μοιον μσχ κα τ τρτον ζον χων τ πρσωπον ς νθρπου κα τ τταρτον ζον μοιον ετ πετομν.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개역개정)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으며 셋째 생물은 사람 같은 얼굴을 가졌고 넷째 생물은 는 독수리 같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에스겔 1장 10절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요한이 본 환상과 에스겔이 본 환상이 같은 모습이다. 이를 두 증인이라고 한다. 


열두지파는 성막을 향하여 네 방향으로 서 있다. 유다 등 세지파(사자)를 세웠으며, 남쪽에는 르우벤 등 세지파(송아지), 서쪽은 에브라임(독수리) 등 세 지파, 북쪽에는 단(사람) 등 세 지파, 이렇게 진을 치고 행군했다. 네 바람으로 상징되는 나라에 대비되는 하나님 나라의 군대가 이렇게 네 방향으로 진을 치는 것이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군대를 의미하며 그 대표가 네 생물이다. 


출애굽기 2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행군을 할 때는 레위인들이 중앙에 서서 법궤를 들고 이동하며, 나머지 열두 지파가 그들을 둘러싸는 형태로 이동한다. 창세기 3장 24절에서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불칼을 두어 생명 나무  지키게 하시니라" 


그룹(케루빔)은 "지식을 다루는 천사"라는 의미다. 출애굽기에서 법궤를 지키는 그룹으로 등장한다. 천사의 날개는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데, 하나님의 지식대로 다루면 천사가 되고, 인본주의 율법주의로 다루면 사탄이 되는 것이다.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하나님 말씀을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 천사가 에동산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참 진리의 말씀을 보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참 지식은 감추어져 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지식으로 감추어져 있다. 호세아 4장 1절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따라서 그룹은 성막을 상징한다. 네 생물은 그룹에 해당한다. 


두루도는 불칼(화염검)에 대해서 마태복음 10장 34절에서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에베소서 6장 17절에서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라고 말한다. 두루도는 불칼은 예수 그리스도(말씀)을 의미하며, 이것은 곧 생명나무인 것이다. 출애굽으로 연결하며, 지성소에 있는 법궤를 상징한다. 두루도는 불칼에 맞아 죽어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으라는 것이다. 


8. κα τ τσσαρα ζα, ν καθ’ ν ατν χων ν πτρυγας ξ, κυκλθεν κα σωθεν γμουσιν φθαλμν, κα νπαυσιν οκ χουσιν μρας κα νυκτς λγοντες· γιος γιος γιος κριος  θες  παντοκρτωρ,  ν κα  ν κα  ρχμενος.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개역개정)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것들의 안과 모든 둘레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것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여, 계속 존재해 왔으며 지금도 계시고 지금도 계속 오고 있는 분이시로다 하고』(헬라어 번역성경)


여섯 날개에 대해서, 성소를 이동할 때 지파별로 움직였다. 네 부분인데, 각 각 한 부분이 세지파이므로  마치 한 사람이 손을 펼치면 두개의 날개처럼 보인다. 세 지파이므로 여섯 날개로 표현하는 것이다. 천사는 하나님의 사자이지만, 말씀을 전하는 사자이다. 이를 지파별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들은 법궤를 보호하는 것이다. 


눈들이 가득하다는 말은 안팎으로 다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의 안과 겉모양도 다 살펴본다. 성경으로 보자면 율법과 복음의 생명을 다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렇게 안팎을 다 보아야 한다. 옛것(구약)과 새것(신약)을 볼 줄 알아야 하고, 문자적인 말씀과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도 볼 수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52절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눈이 어두운 사람은 겉만 보는 사람인 것이다. 세상적인 일과 하나님의 일을 동시에 비교하면서 바라보아야 하는데, 세상적인 기복신앙에 젖어있다면 눈이 어두운 자가 된다. 


요한복음 20장 11-15절에서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부려 무덤 안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이르되 여자 어찌하여 우느냐 이르되 사람들이 내 주님을 옮겨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으나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 알고 이르되 주여 당신이 옮겼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법궤에 천사 둘이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법궤의 실체임을 의미한다. 창세기 1-3장에서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을 설명하고, 로마서, 고린도전서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설명한다. 동산지기는 에덴동산의 아담, 예수님은 마지막 아담을 의미한다. 에덴동산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에덴동산의 마지막 아담으로 천국을 회복했으나, 마리아는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안팎을 보는 자들은 이 땅에서 하늘의 군대가 된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거룩(코데시)은 세상으로 부터 분리(구별)된 자라는 의미다. 그런 자가 성도이다. 전능하신 분은 만물을 지배하는 자이다. 그 분은 계속 존재해 왔으며, 현재도 존재하고, 현재도 오고 있는 분이다. 현재의 개념이다. 성경은 오늘을 강조한다. 즉 산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살아있다면 살아있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 말씀을 통해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다. 


9-11. Κα ταν δσουσιν τ ζα δξαν κα τιμν κα εχαρισταν τ καθημν π τ θρν τ ζντι ες τος αἰῶνας τν αἰώνων, πεσονται ο εκοσι τσσαρες πρεσβτεροι νπιον το καθημνου π το θρνου κα προσκυνσουσιν τ ζντι ες τος αἰῶνας τν αἰώνων κα βαλοσιν τος στεφνους ατν νπιον το θρνου λγοντες·ξιος ε κριος κα  θες μν, λαβεν τν δξαν κα τν τιμν κα τν δναμιν, τι σ κτισας τ πντα κα δι τ θλημ σου σαν κα κτσθησαν.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도수신)에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페순타이)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개역개정)

그 생물들이 좌에 앉으신 분 곧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드릴 때에 스물네 장로가 좌에 앉으신 분 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시는 분께 예배하고 자기들의 관을 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당신은 당신이 창조한 것들로 인해서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신 우리의 주 하나님이시며 그것들이 주의 뜻대로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9-11절의 의미는 송영에 해당된다. 성령 충만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격해서 올리는 찬양과 기도의 말씀이다. 


도수신은 미래시제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장차 돌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일곱 교회를 통하여 이기라고 하셨으며, 이기는 자가 이십사 장로가 되어 그들의 보좌에 흰옷을 입고 있는데,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 말씀(메신저)을 통해서 세상을 다스리게 되며 그로 인해 이 땅을 하나님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승리자가 그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고, 감사하는 것이다. 


페순타이도 역시 미래시제다. 이기는 자가 엎드리게 될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싸우고, 그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면 더 이상 싸움에 사용되는 왕관은 필요없으므로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다. 


이기는 자가 승리한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존귀와 권능에 대해서 찬양하는 것이다. 만물에 대해서 창세기 2장 1절에서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말 번역에는 만물이라고 했는데, 이는 군대라는 의미다. 즉 하늘의 군대와 땅의 군대가 다 재편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땅의 군대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기는 자는 성령과 진리(예수 그리스도)로 예배하신다. 요한복음 4장 23-24절에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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