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3장
1.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Σάρδεσιν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Τάδε λέγει ὁ ἔχων τὰ ἑπτὰ πνεύματα τοῦ θεοῦ καὶ τοὺς ἑπτὰ ἀστέρας· οἶδά σου τὰ ἔργα ὅτι ὄνομα ἔχεις ὅτι ζῇς, καὶ νεκρὸς εἶ.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개역개정)
『사데에 있는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아 있다는 이름은 가지고 있으나 죽었도다.』(헬라어 번역성경)
일곱 영과 일곱 별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살아있다 죽었다 하는 의미는 영적인 상태를 말해준다. 영적으로 죽은 자는 주님이 모른다고 말을 하실 것이다.
2. γίνου γρηγορῶν καὶ στήρισον τὰ λοιπὰ ἃ ἔμελλον ἀποθανεῖν, οὐ γὰρ εὕρηκά σου τὰ ἔργα πεπληρωμένα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μου.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타 로이파) 죽게 된(아포다네인) 것을 굳건하게(스테리손)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타 에르가)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개역개정)
『너는 깨어서 죽게하려는 그 남은 것을 강하게 하라. 내가 하나님 앞에서 네 사역의 완전함을 찾지 못하였나니』(헬라어 번역성경)
사데교회 교인들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은 사역이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행위로 번역된 것은 사역을 의미한다. 사역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역은 죽었던 영을 살리는 것이 주 목적이 되어야 하는데, 세상작인 일에 몰두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이 깨어있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다. 깨어있기 위해서는 죽게하려는 그 남은 것들을 강하게 하라는 것이다.
아포다네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한다. 죽게하려는 그 남은 것을 강하게 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라는 것이다. 타 로이파는 영적으로 죽은 자와 함께 휩쓸리지 않은 남은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합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스테리손은 강하게 하라는 것인데, 즉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강하게 하라는 것이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고, 동물의 희생제사를 드릴 때, 죽은 동물이 곧 죄인과 동일시하는 것처럼, 죽어야 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회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데교회의 문제점은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식으로 믿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죽어야 할 죄인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어야 함에도 회개가 없는 교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3. μνημόνευε οὖν πῶς εἴληφας καὶ ἤκουσας καὶ τήρει καὶ μετανόησον. ἐὰν οὖν μὴ γρηγορήσῃς, ἥξω ὡς κλέπτης, καὶ οὐ μὴ γνῷς ποίαν ὥραν ἥξω ἐπὶ σέ.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테레이) 회개하라(메타노에손)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개역개정)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 기억하고 회개하여 굳게 붙잡아 지켜나가라. 그런즉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같이 네게 이르리니 내가 어느 시각에 네게 이를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구원에 대해서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예수믿기만 하면 구원인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롭게 태어났는지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테레이는 지켜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바른 길을 지켜나가라는 것이다. 바른 길이란 예수와 함께 죽어야 영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이 없다면 성령세례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깨어있지 못하면, 심판받을 것이라는 경고다. 예수님이 도둑같이 오신다는 말은 심판을 말하는 것이다.
4. ἀλλ’ ἔχεις ὀλίγα ὀνόματα ἐν Σάρδεσιν ἃ οὐκ ἐμόλυναν τὰ ἱμάτια αὐτῶν, καὶ περιπατήσουσιν μετ’ ἐμοῦ ἐν λευκοῖς, ὅτι ἄξιοί εἰσιν.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올리가 오노마타)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앜시오이) 자인 연고라』(개역개정)
『그러나 사데에 그들의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몇 이름이 네게 있으며 그들은 가치있는 자로서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걸으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올리가 오노마타는 몇 명의 이름이다. 그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이다. 옷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은 잘못된 신앙으로 빠지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앜시오이는 가치있다는 의미다. 하나님 나라의 사역자로서 가치있는 자라는 것이다.
5. Ὁ νικῶν οὕτως περιβαλεῖται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 καὶ οὐ μὴ ἐξαλείψω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κ 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καὶ ὁμολογήσω τὸ ὄνομα αὐτοῦ ἐνώπιον τοῦ πατρός μου καὶ ἐνώπιον τῶν ἀγγέλων αὐτοῦ.
『이기는(니콘)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개역개정)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버리지 아니하고 그의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니콘은 싸워서 이기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자신의 신앙이 잘못되지 않게 자기를 향해 싸우는 것이다. 생명책에 기록된 자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간다는 말이다.
6. 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개역개정)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은 사데 교회는 종말 교회의 영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육적인 열매를 자랑하는 사데 교회처럼 망할 교회는 성령의 열매는 없고 외적인 육적 열매를 과시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죄도 사탄도 세상도 이길 수 없다는 말씀이다. 요한계시록에서『이기는 자』를 강조한다. 세상의 모든 죄가 없어지던지, 그대로 있던지 두 종류의 인간 만이 존재한다. 모든 죄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예수 안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자기』라는 자아는 사탄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옛사람을 이기기 위해서는 온갖 노력을 다하는 그런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죽어야만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완전한 연합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십자가와 연합되지 않으면 육신에 머물고 있는 것이며, 성령 안에 있지 않은 것이다. 중간은 없다. 성령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믿음이란 성령으로 인도를 받을 때 갈라디아서3장 25절에서처럼 하늘로부터 오는 믿음이 되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예수와 함께 다시 사는 자만 이기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 있다. 이기는 자에게 흰옷을 입혀주신다. 흰옷을 입혀주시는 자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자들이다. 순종하는 자가 흰옷을 입고 순결하게 된다. 이는 포로시대의 언약을 상징한다. 남은 자의 사상이다.
7.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Φιλαδελφείᾳ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 Τάδε λέγει ὁ ἅγιος, ὁ ἀληθινός, ὁ ἔχων τὴν κλεῖν Δαυίδ, ὁ ἀνοίγων καὶ οὐδεὶς κλείσει καὶ κλείων καὶ οὐδεὶς ἀνοίγει·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개역개정)
『빌라델피아에 있는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며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니 그가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그가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여섯 번째 편지를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다. 빌라델비아는 무시아와 브루기아, 루디아가 만나는 접경에 있는 도시로, 동방과 서방을 연결하는 관문으로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로가 있었다. 포도재배와 포도주 산업이 아주 활발하였고, 온갖 신전이 즐비하여, 작은 아테네라는 별명으로도 불리었다. A.D. 17년, 소아시아에 발생한 대지진으로 빌라델비아를 포함한 10개 이상의 도시가 초토화가 되었다. 재건사업으로 일어난 다른 도시들과 달리 빌라델비아는 지속된 여진으로 불안을 느낀 시민들은 도시를 벗어나 들과 평야에 흩어져 지냈다. 도심에 있더라도 여진이 느껴지면 서둘러 도심을 벗어나는 불안한 생활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믿음 생활을 이어갔던 빌라델비아 교회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가장 영향력이 없던 교회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룩하고 진실하신 분으로 소개한다. 다윗의 열쇠는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는 열쇠다. 예수님이 열쇠를 가졌으므로 그 분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8. οἶδά σου τὰ ἔργα, ἰδοὺ δέδωκα ἐνώπιόν σου θύραν ἠνεῳγμένην, ἣν οὐδεὶς δύναται κλεῖσαι αὐτήν, ὅτι μικρὰν ἔχεις δύναμιν καὶ ἐτήρησάς μου τὸν λόγον καὶ οὐκ ἠρνήσω τὸ ὄνομά μου.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타 에르가)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톤 로곤)을 지키며 내 이름(토 오노마)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개역개정)
『내가 네 사역을 아노라. 보라, 내가 네 앞에 문을 열어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지 못하리라. 네가 적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아니하였도다.』(헬라어 번역성경)
빌라델비아 교회를 위해 하나님이 문을 열었다고 선언하신다. 아무도 그 문을 닫을 수 없다고 말을 하므로 빌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는 것이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평가는 작음이다. 빌라델비아 교회은 작은 능력을 가졌던 교회였다. 에베소와 서머나, 버가모 내노라하는 도시에 자리 잡은 영향력 있는 공동체도 아니었고, 선교사역 등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교회는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고, 예수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았다.
타 에르가는 사역을 의미한다. 톤 로곤은 호 로고스(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사역을 할 때 사역자의 능력보다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역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사주의 신앙의 폐단에 대해서 경고하는 것이다. 토 오노마인데, 그 이름이다. 이름은 호 로고스이시다.
9. ἰδοὺ διδῶ ἐκ τῆς συναγωγῆς τοῦ σατανᾶ τῶν λεγόντων ἑαυτοὺς Ἰουδαίους εἶναι, καὶ οὐκ εἰσὶν ἀλλὰ ψεύδονται. ἰδοὺ ποιήσω αὐτοὺς ἵνα ἥξουσιν καὶ προσκυνήσουσιν ἐνώπιον τῶν ποδῶν σου καὶ γνῶσιν ὅτι ἐγὼ ἠγάπησά σε.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개역개정)
『보라,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라 내가 그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리라. 보라, 내가 그들을 네 발 앞에 경배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당시, 유대인의 회당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전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말씀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던 약속의 백성들은, 차츰 변질하기 시작했다. 말씀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을 전할 때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앞세웠고, 바울을 통해 주신 복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전통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려 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빌라델비아에 쓴 예수님의 편지에는 주님의 회당이 되어야 할, 회당을 사탄의 회당으로 표현되었다.
사탄의 회당은 자신들의 이득을 지키기 위해, 거짓으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오늘날에도 심령 가운데 임재하시는 말씀이신 호 로고스에 대해서 말을 하면 이단이라고 공격하는 자들이 있다. 그런 자들이 사탄을 추종하는 자들인데, 그들 중에 말씀이신 호 로고스를 받아드리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10. ὅτι ἐτήρησας τὸν λόγον τῆς ὑπομονῆς μου, κἀγώ σε τηρήσω ἐκ τῆς ὥρας τοῦ πειρασμοῦ τῆς μελλούσης ἔρχεσθαι ἐπὶ τῆς οἰκουμένης ὅλης πειράσαι τοὺς κατοικοῦντας ἐπὶ τῆς γῆς.
『네가 나의 인내(테스 휘포모네스)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페이라스무) 때라』(개역개정)
『네가 심령 속의 보좌에 들어가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인내로 머물고 지켰으므로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그것은 곧 앞으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때라.』(헬라어 번역성경)
테스 휘포모네스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서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보좌 앞에 나아가는 이유는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함이다. 주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는 주님의 보좌에 나아가 그의 발치 아래서 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빌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는 이유는 바로 휘포모네를 잘했기 때문이다. 페이라스무는 마귀의 시험을 의미한다. 하와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마귀가 유혹하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생겼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을 듣는 자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다.
11. ἔρχομαι ταχύ· κράτει ὃ ἔχεις, ἵνα μηδεὶς λάβῃ τὸν στέφανόν σου.
『내가 속히 오리니(에르코마이)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개역개정)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그것을 굳게 붙잡아라 아무도 네 관을 빼앗지 못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에르코마이는 문법적으로 현재 시제이다. 주님이 현재 와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다. 그래서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중에 임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호 로고스를 붙잡아라는 것이다.
12-13. Ὁ νικῶν ποιήσω αὐτὸν στῦλον ἐν τῷ ναῷ τοῦ θεοῦ μου καὶ ἔξω οὐ μὴ ἐξέλθῃ ἔτι καὶ γράψω ἐπ’ αὐτὸν τὸ ὄνομα τοῦ θεοῦ μου καὶ τὸ ὄνομα τῆς πόλεως τοῦ θεοῦ μου, τῆς καινῆς Ἰερουσαλὴμ ἡ καταβαίνουσα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ἀπὸ τοῦ θεοῦ μου, καὶ τὸ ὄνομά μου τὸ καινόν.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토 오노마 투 데우)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투 우라논)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개역개정)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서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다시는 나가지 아니하리라. 또 내가 내 하나님의 이름과 내 하나님의 성 곧 내 하나님으로부터 심령 속의 천국으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고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이기는 자는 말씀을 붙잡아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를 의미한다. 토 오노마 투 데우는 성부(하나님 아버지)를 의미한다. 새 예루살렘의 이름은 이 땅에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나의 새 이름은 부활하신 호 로고스이시다. 그래서 이기는 자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며,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며,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투 우라논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필라델피아의 교회의 상징성은 포로후 회복된 새땅에 대한 말씀으로 회복언약을 의미한다.
14. Καὶ τῷ ἀγγέλῳ τῆς ἐν Λαοδικείᾳ ἐκκλησίας γράψον·Τάδε λέγει ὁ ἀμήν, ὁ μάρτυς ὁ πιστὸς καὶ ἀληθινός, ἡ ἀρχὴ τῆς κτίσεως τοῦ θεοῦ·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피스토스) 참된(알레디노스) 증인(호 마르티스)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헤 아르케) 이가 이르시되』(개역개정)
『라오디게아 교회의 메신저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에 권세가 되시는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아멘이라는 말은 성부 하나님에게 아멘이라고 화답하는 분이라는 말이다. 피스토스는 신실하다 라는 의미이고 알레디노스는 참되다는 의미다. 신실하고 참되신 분이 성부 하나님의 증인이라는 것이다. 호 마르티스는 증인이다. 헤 아르케는 시작, 권세라는 의미다. 헤 아르케는 여성명사로 아르콘(남성명사)에서 비롯된 단어다. 아르콘은 통치, 왕좌라는 의미로 사용된다.『창조의 근본이신 이』라고 번역된 부분은『하나님의 창조에 권세가 되시는 분』이라는 의미다.
15. οἶδά σου τὰ ἔργα ὅτι οὔτε ψυχρὸς εἶ οὔτε ζεστός. ὄφελον ψυχρὸς ἦς ἢ ζεστός.
『내가 네 행위(에르가)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개역개정)
『내가 네 사역을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헬라어 번역성경)
에르가는 사역을 의미한다. 차다는 말은 신앙이 없다는 의미이며, 뜨겁다는 것은 신앙이 좋다는 것이다.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것은 신앙의 상태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16. οὕτως ὅτι χλιαρὸς εἶ καὶ οὔτε ζεστὸς οὔτε ψυχρός, μέλλω σε ἐμέσαι ἐκ τοῦ στόματός μου.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개역개정)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헬라어 번역성경)
이 말은 온천수에 관한 이야기다. 미지근한 온천수는 마시는 물로 착각해서 마시는 경우가 있는데, 온천수에 유황 성분이 있어서 마시면 쓴맛에 뱉어내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비유하여 주님은 미지근한 신앙에 대해서 토해낸다는 것이다.
17. ὅτι λέγεις ὅτι πλούσιός εἰμι καὶ πεπλούτηκα καὶ οὐδὲν χρείαν ἔχω, καὶ οὐκ οἶδας ὅτι σὺ εἶ ὁ ταλαίπωρος καὶ ἐλεεινὸς καὶ πτωχὸς καὶ τυφλὸς καὶ γυμνός,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개역개정)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헬라어 번역성경)
자신이 부자라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는 자를 의미한다.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예수믿으면 구원이라는 구원의 확신만을 갖고 있는 자들이 대부분 이 경우에 해당한다. 이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곤고한 자요, 가난한 자, 눈먼자 라는 것이다.
18.συμβουλεύω σοι ἀγοράσαι παρ’ ἐμοῦ χρυσίον πεπυρωμένον ἐκ πυρὸς ἵνα πλουτήσῃς, καὶ ἱμάτια λευκὰ ἵνα περιβάλῃ καὶ μὴ φανερωθῇ ἡ αἰσχύνη τῆς γυμνότητός σου, καὶ κολλ [ο]ύριον ἐγχρῖσαι τοὺς ὀφθαλμούς σου ἵνα βλέπῃς.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하라』 (개역개정)
『내가 네게 권하노니 너는 내게서 불로 정제한 금을 사서 부유한 자가 되고 또 흰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내지 말며 또 네 눈에 안약을 사서 발라 볼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다 구원받았다』라고 생각하는데,예수님께서 불(성령)로 연단한 금 (하나님 말씀)을 사라 고 하셨다. 성령에 의해서 감동으로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부자가 되어라 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부자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는 뜻이다. 흰옷은 하나님의 의를 말한다. 흰옷을 사기 위해서는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 벌거벗었다 라는 것은 의인이 아니라 죄인이라 는 말이다. 안약을 사서 발라 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눈이 열어지라는 말이다.
19. ἐγὼ ὅσους ἐὰν φιλῶ ἐλέγχω καὶ παιδεύω· ζήλευε οὖν καὶ μετανόησον.
『무릇(에안)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개역개정)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헬라어 번역성경)
에안은 만일(불가능에 가까운) 이라는 의미다. 내가 저들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사랑하므로 저들을 책망하고 징계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심을 내라는 것이다.
20. Ἰδοὺ ἕστηκα ἐπὶ τὴν θύραν καὶ κρούω· ἐάν τις ἀκούσῃ τῆς φωνῆς μου καὶ ἀνοίξῃ τὴν θύραν, [καὶ] εἰσελεύσομαι πρὸς αὐτὸν καὶ δειπνήσω μετ’ αὐτοῦ καὶ αὐτὸς μετ’ ἐμοῦ.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개역개정)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은 수없이 많이 유대인들에게 마음의 문을 두들겼다. 그러나 그들은 문을 열지 않았다. 예수님은 여전히 교회(심령 속의 교회) 문밖에서 두드리고 있다. 그들이 문을 열지 않으므로 예수님이 들어가지 못한다 라는 말이다. 문을 여는 것은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지 않은 자는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자들이다.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들은 성령세례를 받고, 그들의 심령 속에 호 로고스가 임재하여, 그와 더불어 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21-22. Ὁ νικῶν δώσω αὐτῷ καθίσαι μετ’ ἐμοῦ ἐν τῷ θρόνῳ μου, ὡς κἀγὼ ἐνίκησα καὶ ἐκάθισα μετὰ τοῦ πατρός μου ἐν τῷ θρόνῳ αὐτοῦ.Ὁ ἔχων οὖς ἀκουσάτω τί τὸ πνεῦμα λέγει ταῖς ἐκκλησίαις.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 같이 하리라 귀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개역개정)
『이기는 자에게는 나 역시 이긴 뒤에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게 된 것 같이 내 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헬라어 번역성경)
이기는 자는 주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함께 먹고 마시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버리심으로 세상을 이기셨다. 세상에 대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기신 것이다. 세상에 대하여 죽고, 죄에 대하여 죽고, 율법에 대하여 죽으셨기 때문에 이기신 것이다. 성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성령세례를 받고,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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