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장

1- 2. Κα δειξν μοι ποταμν δατος ζωῆς λαμπρν ὡς κρσταλλον, κπορευμενον κ το θρνου το θεο κα το ρνου. ν μσ τς πλατεας ατς κα το ποταμο ντεθεν κα κεθεν ξλον ζως ποιον καρπος δδεκα, κατ μνα καστον ποδιδον τν καρπν ατο, κα τ φλλα το ξλου ες θεραπεαν τν θνν.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개역개정)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그 의 거리 한가운데와 강의 양쪽에는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 종류의 열매를 맺고 달마다 자기 열매를 냈으며 그 나무의 잎사귀들은 그 나라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생명수 강의 근원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고 했다. 창세기 2장 에서 강의 근원은 에덴이라고 말을 한다. 에스겔 47장 5절에서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을 건너게 하시니 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을 건너게 하시니 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을 건너게 하시니 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문지방 밑에서 물이 흘러니와 큰 강을 이루었다. 에덴도 성전의 개념이다. 성전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22장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를 다시 언급하신다. 먼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영적 하나님 나라와 이 땅에 살면서 심령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가 동시에 적용된다. 


여기는 바다가 아니라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라는 것이다. 바다는 궁창 아래의 물로서 율법을 상징하면, 생명수의 강은 궁창 위의 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말씀을 의미한다. 생명수의 강의 근원이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라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생명나무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마치 율법 속에 복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달마다 열매를 맺으므로 항상 계속 먹으라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먹으라는 것이다. 그 말씀이 상한 심령을 치유케 할 것이다. 심령 속에 하나님 나라가 임한 자들은 항상 생명 나무의 말씀을 먹는 것이다. 만국을 치료한다는 말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성도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심어나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에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한복음 7장 37-38절에서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명절 끝날은 초막절(수장절)이다. 초막절은 마지막 절기이다. 생명수의 강이 초막절에 생긴다. 성전이 완성되는 말이다. 이는 성령이 연관된다. 성령으로 성도의 심령 안에서 장막을 치시는 것이다. 성도의 장막에는 성부 성자 성령이 함께 역사하시는 것이다. 


"길 가운데(엔 메소 테스 플라테이아스ν μσ τς πλατεας)로 흐르더라" 메소는 가운데가 아니라, 넓다는 의미다. 에덴에서 강이 네 사방으로 흐른다. 보좌의 생명수도 넓은 곳으로 흐르는 것이다. 넓다는 말은 온세상을 의미한다. 성도의 심령에 생명수가 들어오면 복음 전파를 통해서 다른 곳으로 흐르게 된다.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엔튜덴 카이 에케이덴 엑큐론 조에스ντεθεν κα κεθεν ξλον ζως) 생명나무가 좌우에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한그루가 있다. 엑큐론(나무)은 문법적으로 단수이다. 좌나 우는 헬라어로 엔튜덴으로 사용하고 있다. 생명 나무가 강 안에 있다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다. 신부가 남편인 그리스도를 만나면 아들을 낳는 것이다.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열두가지 열매를 맺으며, 달마다 열매를 넘겨주었다.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만국의 치료를 목적으로 그 나무의 잎사귀도 넘겨주었다." 라는 것이다. 잎사귀는 이방인을 치유하는 약재를 의미한다. 탕자를 아들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재 번역해 보면  "그강에 넓은 중앙에 그 안(강) 그곳에 생명나무 하나가 있는데, 열두가지 열매를 맺으며, 달마다 열매를 넘겨주었다 그리고 만국의 치료를 목적으로 그 나무의 잎사귀도 넘겨주었다." 라는 것이다. 열매가 열매를 맺는 것이다. 아들을 낳는 이야기가 된다. 


3. κα πν κατθεμα οκ σται τι. κα  θρνος το θεο κα το ρνου ν ατ σται, κα ο δολοι ατο λατρεσουσιν ατ

『다시 저주(카타데마)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라트류수신)』(개역개정)

다시는 저주가 없으며 오직 하나님과 어린양의 좌가 그안에 있으리니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헬라어 번역성경)


지금까지는 저주(카타데마:κατθεμα)였는데, 이제 저주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세상에 있는 것이 저주 상태인 것이다. 카타(~아래)와 데마(진열하다, 나타내다)의 결합어이다. 저주는 ~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저주를 통해서 하나님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자체가 저주 아래 있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고린도후서 4장 18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로마서 8장 24절에서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죄를 깨닫고 돌이킬 때 다시는 저주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돌이켜 하나님을 섬기며,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가 하나님 나라가 되며,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는 성도의 심령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의 종들(δολοι듈로이:기본형은 듈로스)에서 듈로스는 묶다 라는 의미다. 주인(하나님)과 함께 묶여 있는 것이다. 라트류수신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예배)을 의미한다. 디아코니아는 섬기는 것을 의미한다. 왕 같은 제사장은 십사만사천의 기도하는 자들이며, 그들에게는 다시는 저주가 없다는 것이다. 창세기에서 아바드(경작하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이 아바드가 예배와 관련된다. 하나님과 묶인 자는 예배하는 자인 것이다. 


4. κα ψονται τ πρσωπον ατο, κα τ νομα ατο π τν μετπων ατν.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개역개정)

그들이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헬라어 번역성경)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창세기 32장 30절에서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는 자들은 그들의 이마에 사탄의 표(육육육)가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의 이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있는 것이다. 그 이름은 주님시요 말씀이시다. 이마에 이름이 있는 그리스도는 예수 그리스를 주로 여기고, 그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종은 그리스도와 묶이는 자인 것이다. 


5. κα νξ οκ σται τι κα οκ χουσιν χρεαν φωτς λχνου κα φωτς λου, τι κριος  θες φωτσει π’ ατος, κα βασιλεσουσιν ες τος αἰῶνας τν αἰώνων.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개역개정)

거기에는 밤이 없겠고 등잔불이나 햇빛이 그들에게 필요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라. 그들이 영원무궁토록 통치하리로다.』(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자에게 나타나는 모습이다. 어둠이 아니라 빛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 빛은 하나님에게로부터 와서 그 빛으로 부활한 자에게 세상의 왕노릇을 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둠이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죽어서 왕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부활한 자) 왕노릇 하는 것이다. 종은 하나님께 대하여, 왕노릇은 세상에 대해서 한다는 것이다. 만일 현재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 이런 일이 없는 것이다. 


6. Κα επν μοι· οτοι ο λγοι πιστο κα ληθινο, κα  κριος  θες τν πνευμτων τν προφητν πστειλεν τν γγελον ατο δεξαι τος δολοις ατο  δε γενσθαι ν τχει.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톤 프뉴마톤 톤 프로페톤)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개역개정)

또 그가 내게 이르기를, 이 말씀들은 신실하고 참되도다. 주 곧 선지자들의 영들의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이루어질 것들을 보이시려고 자신의 천사를 보내셨도다.』(헬라어 번역성경)


말씀들은 믿음과 진리의 존재들이다. 그래서 아들(종)이 된 자들을 의미한다. 톤 프뉴마톤 톤 프로페톤은 그 선지자들의 영들(복수)이다. 프뉴마톤은 복수이므로 각각의 영들이다. 그러나 단수로 사용되었다면 성령을 의미하게 된다. 우리말의 번역은 단수로 영으로 표현되었으나 번역의 오류다. 


7. κα δο ρχομαι ταχ. μακριος  τηρν τος λγους τς προφητεας το βιβλου τοτου.

『보라 내가 속히(타퀴) 오리니(에르코마이)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테론)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개역개정)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언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타퀴(ταχ)는 급하게 라는 의미다. 에르코마이(ρχομαι)는 현재시제 중수디포테로서 지금 오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님의 재림인가 아니면 심령 속에서 예수님이 임재하시는 것인가? 재림이라면 세상의 종말이 되는 것이다. 종말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테론(τηρν)도 현재시제이다. 두루마리(요한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급히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이다. 지키는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시고, 그의 말씀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지키는 것은 보존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말씀 속의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진리에 있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비진리의 교회에서 진리를 보존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다.  


8-9. Κγ ωννης  κοων κα βλπων τατα. κα τε κουσα κα βλεψα, πεσα προσκυνσαι μπροσθεν τν ποδν το γγλου το δεικνοντς μοι τατα. κα λγει μοι· ρα μ· σνδουλς σο εμι κα τν δελφν σου τν προφητν κα τν τηροντων τος λγους το βιβλου τοτου· τ θε προσκνησον.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개역개정)

나 요한이 이것들을 보고 들었노라 내가 듣고 본 뒤에 이것들을 내게 보여 준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리매 그때에 그가 내게 이르기를, 나는 네 동료 종이요, 선지자들인 네 형제들과 이 책의 말씀들을 지키는 자들 가운데 속한 자니 너는 주의하여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요한이 천사에게 경배하니 그러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종들도 이미 천사와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신도들이 교역자를 하나님처럼 섬기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토 데오 프로스퀴네손τ θε προσκνησον) 이 말은 하나님 안에서 경배하라는 의미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성도가 하나되어, 하나님 안에서 경배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 밖에서 두려워 떨며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0. Κα λγει μοι· μ σφραγσς τος λγους τς προφητεας το βιβλου τοτου,  καιρς γρ γγς στιν.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개역개정)

또 그가 내게 이르되, 이 책의 언의 말씀들을 봉인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다니엘 12장 4절에서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그러나 요한은 인봉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말씀에 대해서 인봉하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진리를 설교 하지 않고, 신도들도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봉하지 말라는 말은 정확히 알고 있으라는 것이다. "때가 가까우니라" 이는 십자가 사건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로 인하여 모든 것이 성취된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구원과 심판으로 나뉘어진다. 


11.  δικν δικηστω τι κα  υπαρς υπανθτω τι, κα  δκαιος δικαιοσνην ποιηστω τι κα  γιος γιασθτω τι.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개역개정)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하게 두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게 두며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롭게 두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둘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십자가 사건 이후로 분리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구원받는 대상과 구원받지 못하는 자는 그들의 방향대로 계속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두 부류의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여기고, 그의 말씀대로 살아가는가의 여부이다. 그들의 심령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임재하셔서 말씀하시고,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가의 여부이다. 그렇지 못하면 예수믿는다고 말을 하여도 그들의 종교심에 의해서 믿는 자들에 불과한 것이다. 종교심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는 능동태이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는 수동태이다. 마찬가지로 거룩도 수동태이다. 자기라는 옛사람을 내려 놓을 때 하나님이 의롭게, 거룩하게 만들어주신다는 말이다. 


12. δο ρχομαι ταχ, κα  μισθς μου μετ’ μο ποδοναι κστ ς τ ργον στν ατο.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에르코마이 타퀴)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에르곤) 대로 갚아 주리라(아포두나이)』(개역개정)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보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사역에 따라 주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에르코마이 타퀴(ρχομαι ταχ)는 속히 온다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예수님의 재림인가 아니면 성도의 심령 속에 임하시는 임재인가? 이 말은 재림에 대한 말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임하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된다. 문법적으로 현재시제 중수디포테이다. 


예수님이 급히 오는 것과 미래 상이 있다는 말이 연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주를 영접하고 주의 말씀대로 살아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상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영생이 상이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열심히 교회 봉사하고, 선교하고, 헌금 잘 하면 하나님이 미래에 죽어서 부활할 때 상을 준다는 말을 대부분 하고 있다. 이신칭의로 구원을 얻었지만, 상급은 노력 여하에 따라 달라진다는 이야기이다. 상에 대한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 이런 말을 한다. 


에르곤(ργον)은 사역을 의미한다. 아포두나이(ποδοναι)는 수식하는 부정사 이다. 즉 그가 행한대로 갚아주기 위한 것을 의미한다(미래). 그가 행하는 일은 요한복음 6장 28-29절에서 의미를 말한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믿음의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자기의 믿음으로는 율법에 놓여있는 상태가 된다. 


13. γ τ λφα κα τ  πρτος κα  σχατος,  ρχ κα τ τλος.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개역개정)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헬라어 번역성경)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마지막은 첫사람 아담과 마지막 사람 아담을 의미하며, 그 분이 데리고 와서 그 분이 데리고 간다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이 되시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백성들을 다시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시는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는 히브리어로는 알레(א하나님)와 타우(ת자가)이다. 알레프와 타우를 결합하면 에트(אֵ֥ת)가 되는데, 문법적으로 목적격 전치사에 해당되지만, 그 의미는 하나님(알레프)이 목적을 완성(타우:십자가)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목적은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죄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하여 세상에 오므로 하나님괴 관계가 끊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는 다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게 구원의 개념이다. 십자가의 사건이 끝이라는 말이다. 


14. Μακριοι ο πλνοντες τς στολς ατν, να σται  ξουσα ατν π τ ξλον τς ζως κα τος πυλσιν εσλθωσιν ες τν πλιν.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개역개정)

의 들을 빠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 그들이 생명나무에 이르는 권리를 소유하게 하며 그 문들을 지나 그 성에 들어가게 하려 함이로다.』(헬라어 번역성경)


두루마리는 심령 속에 성전을 의미한다. 자기 옷들을 빠는 자는 성전을 청소하고 주께서 임재하실 그런 준비가 된 것을 의미한다. 성전을 청소하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고 다시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이게 복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영생이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에서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에 그 옷(스톨레)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스톨레는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제사장이 입은 옷은 피가 많이 묻는다. 그런데, 그 피는 그리스도의 피로 바뀌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서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에르곤)이로다 하더라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예수 그리스도는 대제사장이다. 성도는 대제사장과 연합하여 지성소에 들어가므로 동물의 피가 필요없게 된 것이다.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성도의 권세이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은 생명나무에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생명나무는 천사와 두루도는 화염검이 지키고 있다. 


15. ξω ο κνες κα ο φρμακοι κα ο πρνοι κα ο φονες κα ο εδωλολτραι κα πς φιλν κα ποιν ψεδος.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개역개정)

개들과 마법사들과 음행을 일삼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누구든지 밖에 있느니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을 열거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 잘못된 교역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개들은 율법주의를 의미하고, 술객은 영지주의자들, 음행하는 자들은 예수를 믿지만 인본주의, 율법주의를 신봉하는 자들이다. 살인자들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종교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예수와 함께 죽지 않고 예수의 피만 요구하는 자들이다. 우상숭배하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에 집착하는 자들이다. 교회 안에 형상을 만들고, 마치 그것이 하나님인양 바라보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자들은 성경을 왜곡하여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자들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더러운 옷은 창세기에서는 흙이라는 옷(가죽옷)으로 표현했다. 


창세기 3장 21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가죽옷을 히브리어로 가죽(오르)의 옷(코트노트)이다개역개정에서 가죽옷이라고 번역했는데이는 영어성경의 skin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된 것 같다그러나 skin은 살도 된다즉 가죽이라는 오르는 레위기 1 6절의 살 덩어리를 의미하는 것이다그리고 옷은 번제물의 가죽에 해당된다.

가죽옷(살과 가죽)에서 가죽에 해당하는 오르는 벌거벗음을 면하다 라는 의미다. 벌거벗은 것은 살을 나타낸다벌거벗은 살은 육체이며영이 갇힌 곳이기도 하다영이 갇혔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천사들의 영이 옥에 갇힌 것이다베드로후서 2장 4절에서『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세상에 던져진 자들은 다 벌거벗은 자들인 것이다첫사람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모든 인간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인 것이다그래서 벌거벗었음을 면하기 위해 옷을 입히는 것이다.

가죽옷에서 옷(코터노트 כָּתְנֹ֥ות )은 긴옷이다제사장들이 입는 세마포를 의미한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옷이라고 한다베드로전서 2 9절에서『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가죽옷은 예수 그리스도는 벌거벗기는 모습이다그의 죽음으로 입혀지는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한다옷을 지어 입히시는 분은 엘로힘이시다가죽은 동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가죽은 장막에 사용된다장막의 덮개로 사용되는 것이 오르이다가죽은 죽음을 전제로 만들어진다누군가 죽는 것이다그래서 가죽옷은 유월절 어린양을 상징한다예수님은 양들의 목자이시다예레미야 50 6절에서『내 백성은 잃어 버린 양 떼로다 그 목자들이 그들을 곁길로 가게 하여 산으로 돌이키게 하였으므로 그들이 산에서 언덕으로 돌아다니며 쉴 곳을 잊었도다』

이사야53 6절에서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그래서 예수님이 미혹되어 그릇된 방향으로 간 영들을 위하여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으시는 것이다이 의미는 예수라는 이름 속에 있다예수는『여호와가 구원하다』라는 의미다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자기 백성(영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여자가 가죽옷(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하와가 되어 생명을 얻는다는 말씀이다그래서 생명을 낳는 산자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요한계시록 3장 18절에서『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그리고 갈라디아서 3장 27절에서 말한다.『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16. γ ησος πεμψα τν γγελν μου μαρτυρσαι μν τατα π τας κκλησαις. γ εμι  ῥίζα κα τ γνος Δαυδ,  στρ  λαμπρς  πρωϊνς.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개역개정)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너희들에게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뿌리는 선조라는 의미다. 예수님이 다윗의 선조이면서 자손(약속의 씨)이라는 말씀이다. 다윗의 선조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다윗의 혈통(약속의 씨)으로 태어났다는 말이다. 마태복음 22장 41-45절에서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대답하되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하나님은 다윗에게 마음에 드는 자라고 칭찬하신바 있다. 왕 같은 제사장의 모델이 다윗이라는 말이다. 다윗은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 자였다. 성도가 바로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것이다. 


광명한 새벽 별에 대해서 요한계시록 22장 16절에서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빛이라는 말씀이다. 요한일서 1장 5절에서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요한계시록 2장에서 이기는 자에게 새벽별을 준다고 했다. 성도가 그렇다는 말이다. 


17. Κα τ πνεμα κα  νμφη λγουσιν· ρχου. κα  κοων επτω· ρχου. κα  διψν ρχσθω,  θλων λαβτω δωρ ζως δωρεν.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에르쿠:2인칭)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에레케스도:3인칭)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개역개정)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하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가 되어 말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신부의 말이 하나가 되는(호모로기오) 것이다. 사탄은 하나가 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자이다. 에르쿠( ρχου 2인칭)는 "오라" 라는 말인데, 2인칭인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말하는 것이다. 뒷부분의 오라( ρχσθω에르케스도:3인칭 복수)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성령과 예수님의 신부(성도)가 신도들에게 예수님께 오라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들도 신부가 되라는 것이다.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고 하는 것이다.  에르코마이는 종말때 예수님의 재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으로 그리스도께서 들어오시라는 것이다. 그래서 신도들도 그리스도에게로 오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예배의 전형적인 귀절이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통해서 신도들에게 내 안에 거하라고 하시고, 그러면 내가 너희 안에 거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부분 교회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성령이 들어온다고 말을 한다. 신도가 예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와 연합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신도들에게 들어오시는 것이 바로 재림인 것이다. 


18-19. Μαρτυρ γ παντ τ κοοντι τος λγους τς προφητεας το βιβλου τοτου· ἐάν τις πιθ π’ ατπιθσει  θες π’ ατν τς πληγς τς γεγραμμνας ν τ βιβλίῳ τοτ, κα ἐάν τις φλ π τν λγων το βιβλου τς προφητεας τατης, φελε  θες τ μρος ατο π το ξλου τς ζως κα κ τς πλεως τς γας τν γεγραμμνων ν τ βιβλίῳ τοτ.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개역개정)

내가 이 책의 언의 말씀들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어떤 사람이 이것들에 더하면 하나님께서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이 이 언의 책의 말씀들에서 빼면 하나님께서 생명책과 거룩한 성과 이 책에 기록된 것들로부터 그의 부분을 빼시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이 당시에 성경은 필사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으므로 펜으로 적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보게 했다. 제대로 필사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고의적으로 필사자들이 원본을 변경하기도 한 것이다. 필사자들이 자기 생각을 넣어서 추가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자기 생각과 성경 원본이 맞지 않으므로 빼거나 넣거나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이 것이 그 배경이다. 


요한1서 5장 6절에서 "이는  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로만 아니요  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5장 7-8절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개역개정에는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킹제임스 번역은 For there are three that bear record in heaven, the Father, the Word, and the Holy Ghost, 스테파누스 성경(5장 7절)은 τι τρες εσιν ο μαρτυροντες, 그런데, 넷슬 알란드 성경은 τι τρες εσιν ο μαρτυροντες, (τ Πνεμα κα τ δωρ κα τ αμα, κα ο τρες ες τ ν εσιν.) 괄호로 되어 있는 부분이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없다. 스테파누스 성경을 번역한 것이 킹제임스 성경 번역이다. 그러나 넷슬 알란드 성경을 번역한 것의 모체가 NIV이며, 한글 개역개정이다.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인가? 개역개정에는 삼위일체의 의미가 담겨져 있지 않다. 그러나 스테파누스(킹제임스) 성경은 삼위일체의 의미가 담겨져 있다. 스테파누스의 원조는 에라스무스이다. 서로 상대방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헬라어 성경의 원본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전체의 문맥을 통해서 깨달을 뿐이다. 


20-21. Λγει  μαρτυρν τατα· ναρχομαι ταχμν, ρχου κριε ησο.  χρις το κυρου ησο μετ πντων.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이르코마이 타퀴)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개역개정)

이것들을 증언하신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성도 모두와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헬라어 번역성경)


에르코마이 타퀴는 신속히 오고 있다는 현재시제 중수디포테를 취하고 있다. 성도의 심령 속에 예수님이 오셨고 현재도 오며, 미래도 급히 오고 있다는 것이다. 성도는 주님의 임재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멘 하고 주를 영접하는 자가 은혜가 되는 것이다. 주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자들이다.


아멘(μν)은 굳건히, 확실한, 신실한, 진리이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강조의 의미이다. 에수님은 아멘(진실로), 아멘(진실로)을 두번이나 말했다. 확실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언약의 이행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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