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장

 15장 

1. Κα εδον λλο σημεον ν τ οραν μγα κα θαυμαστν, γγλους πτ χοντας πληγς πτ τς σχτας, τι ν αταῖς τελσθη θυμὸς το θεο.

『하늘에 크고 이상한(다우마스톤) 다른 이적(세메이온)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플래가스)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개역개정)

또 내가 하늘에 있는 크고 놀라운 다른 이적을 보니 일곱 천사가 마지막 일곱 재앙을 가졌더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것들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무대는 하늘이다. 단수의 하늘이므로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단수의 하늘에서도 관사가 없으면, 눈으로 보는 하늘이고, 정관사가 있으면 하나님 나라인 것이다. 복수의 하늘은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다우마스톤(θαυμαστν)은 놀라운 이라는 의미다. 세메이온은 표적을 의미한다. 표적은 어떤 싸인(메시지)을 의미한다. 이적은 기적을 의미한다. 일곱 천사가 가진 일곱재앙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끝이 나는 것을 말해준다. 천사는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그래서 재앙(플래게)은 복음과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플래가스(πληγς 기본형은 플레게 4128)는 편평하게 때리다 라는 의미다. 빚다, 주물을 만들다에서 유래되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 개념을 야차르라고 한다. 창세기 2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와이차르)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와이체르(기본형:야차르)라는 동사가 등장한다. 야차르가 토기를 진흙으로 빚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재앙이란 한 성도의 경우 옛사람이 부숴지고(재앙) 새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애굽 재앙은 열가지가 등장하는데, 애굽 땅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빚어내기 위한 재앙이라는 것이다. 마탄가지로 요한계시록에서도 일곱 재앙으로 나타난다. 세상에 살고 있는 존재들을 하나님 나라로 이끌기 위한 재앙인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의 속성에 대한 죽음을 의미한다. 일곱 쟁앙은 재앙이 목적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을 이루기 위함이다. 옛성전이 파괴되고 새성전이 세워지는 것이 구원의 복음이다.

일곱 심판 이야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첫째는 숫자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다. 하나님의 심판이 일곱이라는 숫자로 통일성을 가지는데, 이는 일곱이라는 숫자가 완전수로서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함을 의미하며, 일곱 개의 심판 중 처음 네 개는 통일성을 가지는데, 이는 4라는 숫자가 심판의 대상인 피조물 전체임을 의미하기에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고 했다. 둘째는 출애굽 열가지 재앙의 배경이 되는 출애굽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으로 설명하려는 것이다. 즉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에 담긴 심판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우박, , 피로 변함, 쓴물, 어둠, 황충, 독종, 개구리의 등장과 같은 출애굽 열가지 재앙과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는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다. 일곱 인에 담긴 심판에서는 그 심판이 피조물의 1/4에게 임하는데, 일곱 나팔에 담긴 심판에서는 피조물의 1/3에게 임하며, 일곱 대접에 담김 심판에서는 심판의 강도가 점점 강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일곱 심판 이야기는 결국 성도의 구원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다.

타스 에스카타스(τς σχτας 기본형은 에스카토)는 종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세상 끝의 종말이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무나짐을 의미하고, 나아가 성도의 심령 속에 옛성전(예사람)의 무너짐을 의미한다. 종말에는 성도가 성전으로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τελσθη θυμὸς το θεο』에테레스데(τελσθη 기본형은 텔레오)는 성취하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구원의 열정은 성취된다 라는 말이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다름 아닌 하나님 나라(지성소)이기 때문이다.

 

2. Κα εδον ὡς θλασσαν αλνην μεμιγμνην πυρ κα τοὺς νικντας κ το θηρου κα κ τῆς εκνος ατο κα κ το ριθμο το νματος ατο σττας π τν θλασσαν τν αλνην χοντας κιθρας το θεο.

『또 내가 보니 불(퓌리)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개역개정)

또 내가 보니 불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는데 짐승과 그의 형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승리한 자들이 하나님의 하프들을 가지고 유리 바다 위에 서서(헬라어 번역성경)

퓌리(πυρ)는 성령의 불로서 심판을 상징한다. 유리바다(달라싼 θλασσαν 휘아리넨 αλνην)는 투명한 바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보좌를(하나님 나라)의미한다. 궁창 위의 물에 해당된다. 세상 바다는 궁창 아래 물일 것이다. 요한계시록 46절에서『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출애굽기 2410절에서『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에스겔 126절에서『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청옥, 남보석, 둘다 푸른 색으로 표현했다. 요한계시록 46절에서는 수정 같은 유리바다에서 151절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로 전환되었다. 16장에서 심판이 곧 시행되므로 하나님의 심판으로 표현되었다.

불이 섞인 유리바다는 출애굽에 있어서 홍해를 상징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넌 것은 물세례를 받은 것이라고 말을 한다. 고린도전서 101-2절에서는『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물세례는 죄에 대해서 죽은 자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27절에서『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에이스)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즉 죄에 대해서 죽은 자(물세례받은 자)는 육체로부터 비롯된 혼()을 벗고, 그리스도의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이게 불과 성령세례이며, 그 결과 혼의 부활이 된다. 에이스는 합하기 라는 의미보다 ~안으로 들어가는 의미다. 그리스도로 옷을 입는 것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홍해를 건넌 자들은 출애굽의 기쁨을 건넌 것을 기뻐하는 것이다. 홍해를 건넌 후에 출애굽기 15장에서 노래를 부른다. 성도의 입장에서는 부활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이들을『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의미하며, 우상은 짐승의 우상이다. 이름은 짐승의 이름(육육육)이다. 그들이 유리 바다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찬양을 하는 모습이다. 에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이유는 성도들이 죄에 대해서 죽고혼에 대해서 죽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먼저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골로새서 212절에서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συνταφντες ατ ν τ βαπτισμ, ν κα συνηγρθητε δι τς πστεως τς νεργεας το θεο το γεραντος ατν κ νεκρν·

토 밮티스모 βαπτισμ)는 성령세례를 의미한다. 세례는 두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결과로서 인정하는 의식이다. 하나는 육의 몸(옛혼)이 죽고, 다른 하나는 영의 몸(새로운 혼)으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디아 δι)』 번역은 잘못되었다. 디아는 통하여 라는 말로서,『하나님의 효력있는 능력의 믿음을 통하여』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이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고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낸다. 그 일하심이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연결된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십자가의 사역과 성부 하나님께서 부활시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갖게 된다.

 

3. κα δουσιν τν δν Μωϋσως το δολου το θεο κα τν δν το ρνου λγοντες· μεγλα κα θαυμαστ τ ργα σου, κριε θεὸς παντοκρτωρ· δκαιαι κα ληθινα α δο σου, βασιλεὺς τν θνν·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텐 오덴 모위세오스), 어린 양의 노래(텐 오덴 투 아르니우)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개역개정)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이르되, 주 하나님 전능자여, 당신의 사역들은 크고 놀랍나이다 신이신 왕이여, 당신의 길들은 의롭고 참되나이다.(헬라어 번역성경)

신명기 31-32장에서는 상세하게 내용이 등장한다. 그리고 출애굽기 15장에도 모세가 출애굽한 후에 승리의 노래를 부른다. 민수기 289-10절에서『안식일에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두 마리와 고운 가루 십분의 이에 기름 섞은 소제와 그 전제를 드릴 것이니 이는 상번제와 그 전제 외에 매 안식일의 번제니라』이스라엘은 상번제를 드렸다. 안식일에는 아침 저녁 두번 번제를 드렸는데, 아친에는 신명기 31-32장의 못의 노래를 불렀고, 저녁에는 출애굽기 15장의 모세의 승리의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는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을 연결하는 것이고, 결국 여호수아와 예수를 연결하는 것이다.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넜고, 가나안에는 여호수아가 들어간 것이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분은 여호와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왔지만, 부활하신 분은 여호와라는 사실이다. 여호수아의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라는 의미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유사한 내용이 신명기 323-4절에서『내가 여호와의 이름을 전파하리니 너희는 우리 하나님께 위엄을 돌릴지어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그의 모든 길이 정의롭고 진실하고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바르시도다』

승리는 여호와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다. 텐 오덴 투 아르니우는 어린양에 대한 노래로서 모세가 찬양한 내용이 된다. 텐 오덴 투 아르니오스(어린양에 대한)는 소유격의 목적어 용법이다. 그러나 텐 오덴 모위세오스(모세의 노래)는 소유격의 소유 용법이다. 모세의 노래는 궁극적으로 악(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옛사람)과 싸워 이기는 승리의 노래가 된다. 이는 심령 속의 옛사람에 대한 전쟁이며, 파괴이며, 침노하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 것이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και αδουσιν την ωδην μωσεως δουλου του θεου και την ωδην του αρνιου λεγοντες μεγαλα και θαυμαστα τα εργα σου κυριε ο θεος ο παντοκρατωρ δικαιαι και αληθιναι αι οδοι σου ο βασιλευς των αγιων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이르되, 주 하나님 전능자여, 당신의 사역들은 크고 놀랍나이다 신이신 왕이여, 당신의 길들은 의롭고 참되나이다.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κα δουσιν τν δν Μωϋσως το δολου το θεο κα τν δν το ρνου λγοντες· μεγλα κα θαυμαστ τ ργα σου, κριε θεὸς παντοκρτωρ· δκαιαι κα ληθινα α δο σου, βασιλεὺς τν θνν·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며 이르되, 주 하나님 전능자여, 당신의 사역들은 크고 놀랍나이다 나라들의 왕이여, 당신의 길들은 의롭고 참되나이다.

스테파누스 성경에는 왕을 신이신 왕이라고 표현하며, 넷슬 알란드 성경은 나라들의 왕이라고 표현한다

 

4. τίς ο μ φοβηθ, κριε, κα δοξσει τ νομ σου; τι μνος σιος, τι πντα τ θνη ξουσιν κα προσκυνσουσιν νπιν σου, τι τ δικαιματ σου φανερθησαν.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개역개정)

오 주여, 누가 주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주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당신의 의로우신 일들이 드러났으므로 모든 나라들이 나아와 주 앞에 경배하리이다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유사한 내용이 출애굽기 1514-16절에서 나타난다.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여호와여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거룩은 신적 초월성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출애굽기 1511절에서 표현되었다.여호와여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이유는 그 분이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국(이방 나라들)이 다 주께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나라가 하나님 나라가 되는 것이다. 시편 28절에서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끝까지 이르리로다』로마서 111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이스라엘의 실패는 이방인의 구원으로 이어지고, 다시 이스라엘도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5-6. Κα μετ τατα εδον, κα νογη ναὸς τῆς σκηνῆς το μαρτυρου ν τ οραν, κα ξλθον ο πτ γγελοι [ο] χοντες τς πτ πληγς κ το ναο νδεδυμνοι λνον καθαρν λαμπρν κα περιεζωσμνοι περ τ στθη ζνας χρυσᾶς.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나오스)이 열리며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개역개정)

그 뒤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하늘에 있는 증거 성막의 성전이 열리고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에서 나오는데 그들은 순결하고 빛나는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출애굽의 승리 노래를 부르고 난 뒤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광야로 가서 시내산에서 율법과 상막의 청사진을 받는다. 원형 그대로 옮긴 것이 성막이다. 성소, 지성소, 법궤가 있다. 제사장을 세우고 성막 시대가 도래한다. 그래서『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십계명의 돌판을 성경에서는 증거판이라고 한다. 출애굽기 1634절에서『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출애굽기 3215절에서『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두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돌판에는 하나님의 언약이 있기 때문에 증거판이라는 말을 했다. 증거는 반복해서 증언하는 의미를 갖는다. 두 증인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돌판은 두개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 사람에 대한 계명으로 나누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다. 두 증인이라는 의미에서 두 돌판이지 의미는 하나이다. 증거판이 있는 장막을 증거막이라고 했다. 증거막은 이중으로 되어 있었는데, 하늘의 원형을 그대로 만들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것이다. 출애굽기 3821절에서『성막 곧 증거막을 위하여 레위 사람이 쓴 재료의 물목은 제사장 아론의 아들 이다말이 모세의 명령대로 계산하였으며』사도행전 744절에서『광야에서 우리 조상들에게 증거의 장막이 있었으니 이것은 모세에게 말씀하신 이가 명하사 그가 본 그 양식대로 만들게 하신 것이라』

성전을 나오스(ναὸς)로 표현했다. 히에로(성전)를 쓰면 건물을 의미하며, 나오스는 지성소 개념이 있다. 그래서 이 성전은 지성소라는 것이다. 증거 장막의 성전이라는 말은 두 돌판을 넣어준 지성소라는 것이다. 요한이 보고 있는 하늘의 증거 장막은 바로 지성소의 원형인 것이다. 히브리서 85절에서『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1절에서『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보이는 것은 참의 그림자라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참 성전은 눈에 보이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성전이 된다.

신약에서는 증거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요한계시록 12절에서『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19절에서는『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1412절에서『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1910절에서『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성전은 출애굽한 백성들이 성막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솔로몬이 성전을 세우고, 스룹바벨이 성전을 재건하고,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이 성전이 되시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성전이 되는 것이다. 성도 안에 예수가 호 로고스가 되어 증거판으로 있는 것이다.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요한계시록 1장의 예수님과 닮은 모습이다. 세마포는 제사장이 입는 옷을 상징한다. 천사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다. 그리고 일곱 천사(복음을 전하는 자)는 제사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는 역할이다. 그 천사들이 성전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다. 그 근원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다. 복음은 다름 아닌 하나님 말씀과 예수의 증언이다.

 

7. κα ν κ τν τεσσρων ζων δωκεν τοῖς πτ γγλοις πτ φιλας χρυσᾶς γεμοσας το θυμο το θεο το ζντος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ν αἰώνων.

『네 생물 중의 하나가 영원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들에게 주니』

네 생물들 중의 하나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 대접 일곱을 일곱 천사에게 주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대접은 얇은 사발이다. 일곱 촛대가 아니라 일곱 등잔대이다. 하나의 촛대에 일곱 등잔대가 달린 모양이다. 일곱 대접은 성소 안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이 대접에 불이 부어지면 흑암이 오는 것이다. 이 대접이 이스라엘에 부어진다.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거부한 것이다. 히브리서 1025-30절에서『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레위기 16장에서 속죄의 제사에서 일곱 피가 제단에 뿌려졌지만, 이제 등잔대의 일곱 불이 쏟아지며, 장막 대신에 땅(이스라엘)에 뿌려진 것이다.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스라엘에게 진노의 불이 부어지는모습이다.

 

8. κα γεμσθη ναὸς καπνο κ τῆς δξης το θεο κα κ τῆς δυνμεως ατο, κα οδεὶς δνατο εσελθεν εἰς τν ναν χρι τελεσθσιν α πτ πληγα τν πτ γγλων.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개역개정)

성전이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권능으로부터 나오는 연기로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아무도 능히 그 성전에 들어가지 못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했다. 그는 제단 앞에 있는 물두멍에 서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역사와 그 분에 대한 감사, 심판에 대한 호소, 열방의 회심에 대한 간절한 기롤 하고 난 뒤에, 역대하 71-2절에서『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일곱 재앙이 마치면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다.

출애굽기 4033-35절에서『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성전에 연기가 가득찼다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일어나면 성전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재앙이 일어나기 전에 성전에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재앙이 미치지 못하도록 사역자들이 하나님의 제사장직을 잘 감당하고, 성도들의 기도가 끊이지 않아야 함을 말해준다. 하나님은 성도의 기도를 듣고 계신다. 하나님의 심판은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심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경고를 포함하고 있다. 그 심판을 통한 경고가 끝나기 전에 돌이켜야 할 것이 있다면, 하루 속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불은 불심판을 의미한다. 동물을 불에 태워 제사를 드릴 때, 죽은 동물이 바로 그 죄인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자기를 불사르는 것을 불과 성령 세례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동물이 불에 타죽으므로 베사장이 성전에 들어가게 된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가진 자만 하나님의 성전이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를 갖는다. 일곱 재앙은 바로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불에 타 죽는 것을 상징한다. 일곱 재앙이 마치면 성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오순절에 성령의 불이 임했다. 이는 불과 성령 세례인 것이다. 이전의 것은 타죽고, 새로운 성전이 도래한 것이다. 바로 성도(교회)의 출연이다. 옛성전은 심판이고, 세성전은 부활의 메시지인 것이다. 피와 불과 연기가 등장하는데, 이는 옛시대를 끝내는 상징인 것이다. 이게 종말인 것이다. 그리고 새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 것이 천년왕국이다. 회개(히즈리어 쉐리브, 헬라어 메타노에오)는 심령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옛사람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부숴져야 함을 깨닫는 자가 회개하는 자인 것이다. 회개하는자에게 하나님이 일을 하셔서 성도의 심령 속의 옛성전을 파괴하는 것이다. 마치 여리고 성을 부수듯이, 성도는 잠잠하고,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부셔버린다. 성도의 심령 속의 옛사람은 선악지식, 율법, 자아, 등 여러가지로 불릴 수 있다. 회개의 결과는 마음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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