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14장 

1. Κα εδον, κα δο τ ρνον στὸς π τ ρος Σιν κα μετ’ ατο κατν τεσσερκοντα τσσαρες χιλιδες χουσαι τ νομα ατο κα τ νομα το πατρὸς ατο γεγραμμνον π τν 이τπων ατν.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개역개정)

또 내가 바라보니, 보라, 어린양께서 시온 산 위에 서 계시고 그분과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 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분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십사만 사천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말씀)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다. 짐승의 표를 가진 자와 전혀 다른 말씀이다. 어린양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은 진리릐 말씀이지만, 짐승의 숫자는 비진리에 해당되는 것이다. 어린양은 시온산에 있고, 함께, 십사만사천이 서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와 모래 위에 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시편 21-2절에서『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그런데, 시편16절에서『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온이라는 산은 사무엘하 57절에서 다윗 시온산을 빼앗는다. 종교적 정치적 확장을 의미한다. 여기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진다. 시온은 요새이며, 승리를 의미한다. 다윗은 승리를 표하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나귀새끼를 타는 모습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로마서 1126절에서『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시온은 구원에 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하나님을 대적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아들이 승리하는 모습이다.

 

2. κα κουσα φωνν κ το ορανο ὡς φωνν δτων πολλν κα ὡς φωνν βροντῆς μεγλης, κα φων ν κουσα ὡς κιθαρδν κιθαριζντων ν ταῖς κιθραις ατν.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데 내가 들은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이 그 거문고를 타는 것 같더라』(개역개정)

내가 하늘로부터 나는 음성을 들었는데 그것은 많은 물들의 소리 같고 큰 천둥소리와도 같더라. 또 내가 들은 소리는 하프를 치는 소리 같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물 소리와 우렛소리는 구약 성경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음성(임재)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이 들은 소리는 악기 소리라는 것이다. 에스겔 124절에서 『생물들이 갈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내렸더라』요한계시록 115절에서『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하나님의 임재를 많은 물소리처럼 말씀으로 경험한다.

천둥소리에 대해서 요한복음 1228-29절에서『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곁에 서서 들은 무리는 천둥이 울었다고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도 하니』천둥소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듣고 제자들은 천둥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거문고는 하프(수금)이다. 선지자들은 수금으로 오묘한 말을 예언했다. 사무엘상 1623절에서『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이를 때에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은 번역의 오류다. 하나님의 영이라고 해야만 한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의 수금으로 작용해서 사울의 악신이 떠나갔다는 것이다.

 

3. κα δουσιν [ὡς] δν καινν νπιον το θρνου κα νπιον τν τεσσρων ζων κα τν πρεσβυτρων, κα οδεὶς δνατο μαθεν τν δν ε μ α κατν τεσσερκοντα τσσαρες χιλιδες, ο γορασμνοι π τῆς γῆς.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개역개정)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 같은 것을 부르니 땅에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외에는 아무도 능히 그 노래를 배우지 못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새 노래는 다윗이 부른 노래 즉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복음인 것이다. 고린도후서 517절에서『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이런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십사만사천이라는 것이다. 긍극적으로는 진리의 복음을 전하는 성도를 가리킨다.

악기 소리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자는 십사만 사천명의 기도하는 군사들이었다. 이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자들이 땅에서 속량된 자들이다. 속량이라는 말은 값을 주고 노예를 사는 개념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값을 주고 죄로부터 해방된 자로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자를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아들의 상속을 받는 자를 의미한다. 이는 깨닫는 자만 알게 된다. 고린도후서 124절에서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땅에서 구속받았다고 한다. 땅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에서 구속하고(구원이 먼저 유대에게서 나고), 다음으로 이방으로 간다.

 

4. οτο εσιν ο μετ γυναικν οκ μολνθησαν, παρθνοι γρ εσιν, οτοι ο κολουθοντες τ ρνίῳ που ν πγ. οτοι γορσθησαν π τν νθρπων παρχ τ θε κα τ ρνίῳ,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에서 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개역개정)

이들은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니 순결한 자들이라. 이들은 어린양께서 가시는 대로 따라가는 자들이며 사람들 가운데서 속량을 받아 하나님과 어린양께 첫 열매가 된 자들이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십사만 사천명의 기도하는 자들은 세가지로 설명된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않은 자는 영적으로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비진리와 섞이지 않는 자를 의미한다.『더럽히지 아니하고』육체적 더럽힘을 넘어서 종교적인 의미에서 더럽히는 것이다. 여자는 음녀를 상징한다.

어린 양을 따라가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를 의미한다. 순종이 동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027절에서 『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속량함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가 되는 것은 속량되어 거룩한 자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음 162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동행하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의미한다. 즉 부모로 부터 받은 혼의 죽음이다. 이것이 자기의 부인이다. 스스로 노력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ζ δ οκέτι γώ, ζ δ ν μο Χριστός· δ νν ζ ν σαρκί, ν πίστει ζ τ το Υο το Θεο το γαπήσαντός με κα παραδόντος αυτν πρ μο

『내가 육체 가운데(엔 사르키 ν σαρκί) 사는 것』에서 엔 사르키(ἐν σαρκί)는 육체가 아니라, 육신의 종교심을 의미한다. 바울은 육신 안에서 율법을 따르는 종교심으로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엔 피스테이 조 테 투 휘우 ν πίστει ζ τ το Υο) 사는 것이라』여기도 『하나님 아들의 그 믿음 안에서 사는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믿음이다.

 

5. κα ν τ στματι ατν οχ ερθη ψεδος, μωμο εσιν.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개역개정)

그들의 입에서 거짓과 교활함을 찾을 수 없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좌 앞에서 이 없도다.』(헬라어 번역성경)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는 진리에서 벗어났으므로 모두 거짓말 하는 자들이다. 입은 말씀을 전하므로 오직 진리를 말하는 자들이다. 흠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한 자는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가 거짓없고 흠이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스테파누스 헬라어 성경)

και εν τω στοματι αυτων ουχ ευρεθη δολος αμωμοι γαρ εισιν ενωπιον του θρονου του θεου

 

그들의 입에서 거짓과 교활함과 흠을 찾을 수 없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좌 앞에서 이 없도다.

(넷슬 알란드 헬라어 성경)

κα ν τ στματι ατν οχ ερθη ψεδος, μωμο εσιν.

그들의 입에서 거짓흠 을 찾을 수 없었으니 


스테파누스 성경에는 하나님 보좌 앞에서 거짓과 교활함과 흠이 없었다고 되어 있으나, 넷슬 알란드 성경에는 하나님 보좌라는 말이 없다.

6. Κα εδον λλον γγελον πετμενον ν μεσουρανματι, χοντα εαγγλιον αἰώνιον εαγγελσαι π τοὺς καθημνους π τῆς γῆς κα π πν θνος κα φυλν κα γλσσαν κα λαν,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유앙겔리온 아이오니온)을 가졌더라』(개역개정)

또 내가 보니 다른 천사가 하늘 한가운데로 날아가는데 그가 땅에 거하는 자들과 모든 나라와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선포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헬라어 번역성경)

공중에 날아가는 천사란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이다. 유앙겔리온 아이오니온은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음이다. 그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다. 땅에 거주하는 자들 (τοὺς καθημνους π τῆς γῆς), 곧이라고 번역했는데, 곧은 앞의 것을 설명해는 관계대명사적 의미다. 그런데 카이(κα)는 그리고 라는 접속사이다. 땅은 타락한 이스라엘을 상징한다.땅에 거하는 자들과 모든 나라와 족속과 언어와 백성에게 선포할』이렇게 번역되어야 한다. 땅은 배도한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요한계시록 310절에서『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요한계시록 172절에서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그래서 복음은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다음에는 이방인에게 가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스라엘)과 부활(이방인의 구원)을 의미한다. 로마서 116절에서『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마태복음 2414절에서『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땅끝이라는 말은 바울에게서는 스페인을 두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골로새서 16절에서『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로새서 123절에서『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로마서 1018절에서『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오늘날 교회 사람들은 온 세상에 벅음이 전파되어야 종말이 온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온 세상에 복음이 전파되었다고 말을 한다. 실제로도 복음이 전파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종말은 돌로 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을 의미하며,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바로 종말인 것이다. 성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 그에게 개인적인 종말이 된다.

땅에 거주하는 자들 (τοὺς καθημνους π τῆς γῆς),은 헬라어 카데메노스로서 ~위에 올라 앉아있다 라는 의미다. 유대 랍비들은 회당에서 지혜가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이게 모세의 자리다. 그래서 이 말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있는 유대 지도자를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영원한 복음을 전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복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복음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께 대하여 죽을 자라는 것을 좀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래서 돌이켜 유대인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받아들이고 그 분과 함께 죽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천국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지금 하나님 나라가 성도에게 임한 것을 믿어야 한다.

 

7. λγων ν φων μεγλ· φοβθητε τν θεν κα δτε ατ δξαν, τι λθεν ρα τῆς κρσεως ατο, κα προσκυνσατε τ ποισαντι τν ορανν κα τν γν κα θλασσαν κα πηγς δτων.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개역개정)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들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두려워하라(포베테데 φοβθητε), 영광을 돌리라(도테 아우토 독산 δτε ατ δξαν), 경배하라(프로스퀴네사테 προσκυνσατε)는 세가지 명령이 있다. 명령의 대상은 육육육의 표를 받은 무리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 오늘날 교회에서 자기 식으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두려워하다(포베오) 라는 말은 두려운 의미 외에 공경하고 경외하는 의미를 갖는다. 하나님의 임재속 에서 경외하는 마음이다. 가짜 두려움은 이사야 2913절에서『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야레:헬라어 포베오)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율법을 하나님의 계명으로 가르치지 않고,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친다는 것이다. 자기 식으로 만들어서(왜곡해서)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영광을 돌리라(도테 아우토 독산 δτε ατ δξαν) 이 말은 나타남이다. 의견, 생각의 도케오 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요한복음 114절에서『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독사 δξα)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들에게 나타난 것이다. 요한복음 544절에서『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요한복음 1722절에서『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1724절에서『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영광은 아버지의 나타남인데, 하나된 아들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다. 서도 역시 아들이 되지 않고는 영광이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다. 육육육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도 않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넘겨주지도 못하는 것이다.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회개하라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하라는 것이다.

경배하라(프로스퀴네사테 προσκυνσατε)는 예배하라는 것이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하는 것이다, 영과 진리가 아닌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치고 예배하면 하나님이 안받으신다. 그들이 하는 예배는 용과 짐승에게 하는 예배라는 것이다.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λθεν ρα τῆς κρσεως ατο)』호 라는 심판의 때, 하나님의 긴박한 모습을 의미한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는 말과 비슷하다.

 

8. Κα λλος γγελος δετερος κολοθησεν λγων· πεσεν πεσεν Βαβυλν μεγλη κ το ονου το θυμο τῆς πορνεας ατῆς πεπτικεν πντα τ θνη.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에게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개역개정)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뒤따르며 이르되 저 큰 성 바빌론이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이는 그녀가 모든 민족들로 하여금 자기의 음행으로 인한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기 때문이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복음을 큰 성 바벨로인 무너지는 것으로 표현했다. 바벨론은 창세기 11장에서 바벨탑이 등장한다. 니므롯은 함의 자손이다. 바벨은 혼잡하다 라는 의미다. 말이 혼잡한 것이다. 진리가 비진리와 섞이므로 혼잡해지는 것이다. 바벨탑을 쌓으려고 하는 이유는 자기들의 이름을 내려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너뜨렸다. 자기의 이름을 내는 것이 우상이다. 요한계시록 118절에서『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못박히신 곳은 예루살렘이다. 예루살렘을 애굽, 영적 소돔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큰 성 바벨론은 다름 아닌 예루살렘을 의미하며, 예루살렘에 댈한 심판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제사장 나라였지만, 새로운 바벨론이 되었으므로 멸망하는 것이다. 그 거짓선지자들이 육육육을 주는 것이다. 오늘날 거짓 종교집단이 육육육을 주는 것이다.

『그의 음행으로 말미암아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큰 성 바벨론은 음행과 관련이 있다. 마태복음 164절에서『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표적을 구하는 자들이 음란한 자들이다. 음란(포르네이아)은 진리와 비진리가 섞이게 되는 것이다. 유대주의자들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율법주의를 지향한 자들인 것이다. 율법주의는 비진리에 있는 자들이다.

포도주는 진노(투 뒤모우το θυμο)의 포도주와 영생의 포도주가 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처음 포도주(율법)와 나중 포도주(복음)가 나오는데, 나중 포도주가 좋다는 것이다. 앞의 것은 진노의 포도주가 된다. 가나 혼인잔치의 사건은 진노의 포도주에서 영생의 포도주로 바뀌는 것이다. 누가복음 538절에서『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묵은 포도주가 좋다고 하는 자들이 음행하는 자이다. 진노의 포도주가 된다. 이런 자들이 비진리에 있는높은 성을 쌓는 자들이다.

 

9. Κα λλος γγελος τρτος κολοθησεν ατοῖς λγων ν φων μεγλ· ε τις προσκυνε τ θηρον κα τν εκνα ατο κα λαμβνει χραγμα π το μετπου ατο π τν χερα ατο,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개역개정)

『또 다른 천사 곧 셋째 천사가 그들을 뒤따르며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그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고 자기 이마에나 손 에 그의 표를 받으면(헬라어 번역성경)

음행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며,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다. 비진리의 말을 받아드리는 것이다. 짐승과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은 교회 신도들이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들은 신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신도들을 속인다. 그들은 신비주의, 영지주의를 앞세우고, 이적을 보여주고, 천사로부터 계시를 받았다고 하거나 신적인 능력을 가졌다고 과시한다. 이마에 표를 받는 것은 맘몬주의를 따른 자들이다. 교회가 돈과 결탁하는 것이다. 이마의 표는 값없이 사는 구원에 대한 하나님 말씀을 돈을 주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

 

10. κα ατὸς πεται κ το ονου το θυμο το θεο το κεκερασμνου κρτου ν τ ποτηρίῳ τῆς ργῆς ατο κα βασανισθσεται ν πυρ κα θείῳ νπιον γγλων γων κα νπιον το ρνου.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퓌리)과 유황(데이오 θεί)으로 고난을 받으리니』(개역개정)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곧 그분의 격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를 마시리라. 그가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통을 받으리니(헬라어 번역성경)

비진리를 받아드리는 자는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는 자가 된다.  말씀이 생명이 되지 못하고 율법주의나 인본주의 영지주의와 같은 비진리에 거하면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게 된다.『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포도주는 보통 여러 종류를 섞어서 순도를 맞춘다. 그런데, 브랜드 하지 않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은 강력한 심판이 있음을 말해준다.

퓌리는 성령의 불을 의미한다. 데이오(θεί)를 유황으로 번역했으나, 번제물의 불꽃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성령의 불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난을 받는 것은 둘째 사망을 의미한다. 불과 유황으로 번역하므로서 지옥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지옥과 둘째 사망은 다른 개념이다. 지옥은 갇혀있는 개념이지만, 둘째 사망은 심판이라는 개념이다.

불과 유황이라는 표현은 소돔과 고모라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표현이다. 둘째 사망은 성도가 살아있을 때 경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심판은 곧 구원과 이어진다. 십자가에서 함께 죽은 자는 함께 부활하는 것이다. 노아시대 홍수의 심판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한 심판이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약의 씨를 잊어버리므로, (진리와 비진리가 섞이므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이다. 심판은 물과 불로 하셨다. 그들은 다 물에 빠져 죽고, 불에 타 죽은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과 동시에 구원해 주신 것이다. 노아와 그 가족, 롯과 그 가족을 구원하셨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상징하며, 성도 역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심판을 받았고, 함께 부활한 것을 믿는 것이다. 둘째 사망은 성도가 살아있을 때 경험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316절에서『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물에서 죽은 자가 물세례요, 불에 타 죽은 자가 불세례인 것이다. 요한복음 3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여기에서도 물은 물세례 즉 물에 빠져 죽은 자이요, 성령은 불심판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늘로부터 난자가 되는 것이다.(거듭남) 그런데, 이를 믿지 못하는 자는 둘째 사망에 처해지는 것이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가 된다.

 

11. κα καπνὸς το βασανισμο ατν εἰς αἰῶνας αἰώνων ναβανει, κα οκ χουσιν νπαυσιν μρας κα νυκτὸς ο προσκυνοντες τ θηρον κα τν εκνα ατο κα ε τις λαμβνει τ χραγμα το νματος ατο.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개역개정)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으로 안식을 얻지 못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쉼이란 말은 안식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는 마치 예배를 안식으로 생각한다. 교회라는 이름으로 모이고 예배하고 부홍회하고 각종 일들을 추구한다. 그들에게는 오히려 안식이 없는 것이다.

 

12. δε πομον τν γων στν, ο τηροντες τς ντολς το θεο κα τν πστιν ησο.

『성도들의 인내(휘포모네)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텐 피스틴 예수)을 지키는 자니라』(개역개정)

여기에 성도들 심령 속의 하나님의 보좌에 머무는 인내가 있나니 곧 여기에 하나님의 명령들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성도는 휘포모네(보좌에 머물다)의 기도를 하고, 하나님의 명령들을 훼손하지 않고 보존하며,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지는 자라고 말을 할 수 있다. 첫째, 개역개정에는 성도들의 인내라고 번역하므로 환경에 견뎌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보좌에 머무는 인내인 것이다. 보좌에 머무는 인내가 없으면, 순식간에 심령 속에 옛사람이 등장하여 자신의 정체성이 혼란을 가져온다. 자아는 사라지고 오직 호 로고스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나가야 한다. 심령 속의 보좌에 있는 제사장의 모습이다. 이 휘포모네를 벗어나면 옛사람의 속성에 의헤서 육육육이 등장하는 것이다. 휘포모네를 벗어나면 죽음의 심판이 기다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과 예수의 믿음을 지킬 수 잇다.  

둘째, 하나님의 명령들은 예수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합되는 것이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명령(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조항을 철저히 지킨다는 개념이 아니라, 비진리로부터 보존하는 의미를 갖는다.

셋째, 예수에 대한 믿음이다. 개역개정은 예수에 대한 믿음이라고 번역했지만, 예수의 믿음에 들어가는 자라고 해야 옳다. 텐 피스틴 예수는 예수의 믿음이다. 예수의 믿음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는 믿음이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예수의 믿음과 연합되어야만 한다는 말이다.

 

13. Κα κουσα φωνῆς κ το ορανο λεγοσης· γρψον· μακριοι ο νεκρο ο ν κυρίῳ ποθνσκοντες π’ ρτι. να, λγει τ πνεμα, να ναπασονται κ τν κπων ατν, τ γρ ργα ατν κολουθε μετ’ ατν.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에르가)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개역개정)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나서 내게 이르시되, 기록하라. 이제부터 주의 죽음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께서 이르시되, 그러하다.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하려 함이니 그들의 행한 사역이 그들을 뒤따르리로다, 하시더라.(헬라어 번역성경)

14장의 전체적인 맥락을 보면, 1-12절까지는 세 천사가 등장하는데, 첫째 천사는 땅에 거할 사람들과 이방 나라에 영원한 복음의 때가 가까워 왔으니 회개하고 심판의 때를 면하라는 메시지다. 둘째 천사는 열방에 영적 간음을 한 큰 성 바벨론(이스라엘)이 무너졌다고 말을 한다. 세번째 천사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13절에선 네번째 천사에 관한 이야기인데,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14-16절은 곡식 추수에 관한 이야기이고, 17-20절까지는 포도추수에 관한 이야기 등장한다. 사람들은 곡식에 대해서는 성도의 구원, 포도에 대해서는 불신자(악인)의 심판 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요한계시록이 악인들에 대한 심판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이원론적 유형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의 시점은 역사의 마지막에 이루어질 것이라는 종말론적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래서 신도 자신은 구원받고, 적그리스도는 멀리 있으며, 그래서 항상 자기와 별개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곡식을 수확하는 이는 인자와 같은 이라고 표현되어 있고, 포도를 수확하는 자는 불을 다스리는 천사가 예리한 낫을 가진 자에게 명령하는 것으로 나온다. 그래서 신도들은 인자 같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19절에는 수획한 포도를 진노의 포도틀에 던진다는 표현이 있다. 그래서 던져지는 자는 성도가 아니라 악인이라고 생각한다. 성밖에서 틀에 밟히니 그 틀에서 피가 나서 1600스다디온에 퍼졌다 라는 표현이 있다. 이를 드고 심판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곡식과 포도는 십사만 사천을 의미한다. 이는 주 안에서 죽은 첫 열매를 상징한다. 곡식과 포도주로 죽은 성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옛사람)의 죽음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첫열매, 곡식과 포도가 죽어서 떡(곡식)과 포도주(포도)로 된 첫 열매를 의미한다. 그래서 13절에서 주의 죽음 안에서 죽은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이다. 개역개정은 주안에서 죽은 자라고 번역되었는데, 주의 죽음(아포드네스코) 안에서 죽은 자들(호이 네크로이)이다. 주의 죽음 안에서 라는 헬라어는 엔 퀴리오 아포드네스콘테스(ποθνσκοντες 기본형은 아포드네스코)이다. 그리고 죽은 자들은 호이 네크로이(ο νεκρο)이다. 로마서 68절에서『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이때 죽음은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옛사람)의 죽음이다. 고린도전서 1531절에서『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아포드네스코)』주 안에서 죽는 자는 육체적 죽음을 의미할 때도 있다. 그래서 십사만 사천은 주의 죽음 안에서 죽은 첫열매들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심판의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이다. 율법에서 곡식과 포도주가 등장한다. 성만찬에서도 떡과 포도주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상징한다. 떡이 살이고, 포도주는 피인 것이다.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아브라함에게 가져왔다. 요셉은 떡과 술맡은 관원장을 만났다. 이후에 요셉이 둘다 관리한다. 그런데, 곡식은 성도, 포도는 악인으로 이분법으로 생각하면 오류가 된다. 여기에서 곡식과 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며, 그와 연합된 교회(성도)도 떡과 포도주라는 것이다. 곡식과 포도를 거두는 것은 성도의 추수(주의 죽음에서 성도의 죽음)인 것이다.

6-13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세천사가 등장하는데, 15-20절까지 세천사가 다시 등장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14절에서 인자(사람의 아들)와 같은 이가 등장하는데, 결국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인자가 중심에 있는 것이다. 키아즘의 구조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각시킨다.

 

14. Κα εδον, κα δο νεφλη λευκ, κα π τν νεφλην καθμενον μοιον υἱὸν νθρπου, χων π τῆς κεφαλῆς ατο στφανον χρυσον κα ν τ χειρ ατο δρπανον ξ.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스테파논)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개역개정)

또 내가 바라보니, 보라,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 같은 분께서 앉으셨는데 그분의 머리에는 금 월계관이 있고 그분의 손에는 예리한 낫이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인자는 다니엘 713-14절에서『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영원한 왕권을 가진 메시야를 그린 말씀이다.

구약에서 왕은 전쟁과 심판을 상징한다. 전쟁에서 나타나는 왕은 서있는 모습이다. 심판에서 나타나는 왕은 앉아있는 모습이다. 인자가 금 면류관(스테파논 στφανον)를 가지고 있다. 스테파논은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자가 갖는 월계관이다. 디아데마는 왕들이 쓰는 면류관이다. 여기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쟁을 끝내고 심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30-31절에서『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이 말씀은 예루살렘 멸망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멸망과 마찬가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십자가의 죽음은 승리의 표현이다. 그래서 부활하심으로 영원한 왕권을 갖는다. 보이는 성전에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성전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보이지 않는 성전이 그들의 심령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15-16. κα λλος γγελος ξλθεν κ το ναο κρζων ν φων μεγλ τ καθημν π τῆς νεφλης·πμψον τ δρπανν σου κα θρισον, τι λθεν ρα θερσαι, τι ξηρνθη θερισμὸς τῆς γῆς.κα βαλεν καθμενος π τῆς νεφλης τ δρπανον ατο π τν γν κα θερσθη γ.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개역개정)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으신 분에게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수확물이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나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분께서 자기의 낫을 땅 위에 휘두르사 땅의 수확물을 거두시시니라.(헬라어 번역성경)

땅의 곡식과 땅에 휘두르는 낫이라는 표현이 있다. 땅은 이스라엘(유대주의자)을 의미한다. 예루살렘은 A.D.70년 경에 멸망했다. 땅인 옛성전에서 추수하는 유대인들이다. 이들이 옛사람인 것이다. 

추수는 마가복음 426-29절에서『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추수(종말)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종말도 있는 것이다. 개인에게도 옛성전(옛사람)이 있는 것이다. 옛성전이 무너지고 새하늘과 새땅이 되는 것이 바로 추수의 개념이다. 그래서 종말은 역사의 끝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17-18. Κα λλος γγελος ξλθεν κ το ναο το ν τ οραν χων κα ατὸς δρπανον ξ.κα λλος γγελος [ξλθεν] κ το θυσιαστηρου [] χων ξουσαν π το πυρός, κα φνησεν φων μεγλ τ χοντι τ δρπανον τ ξ λγων· πμψον σου τ δρπανον τ ξ κα τργησον τοὺς βτρυας τῆς μπλου τῆς γῆς, τι κμασαν α σταφυλα ατῆς.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역시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이르되 네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개역개정)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그에게도 예리한 낫이 있더라. 또 불을 다스릴 권능을 가진 또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을 가진 자에게 큰 외침으로 이르되, 너의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들을 거두라. 그 포도들이 충분히 익었느니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16절에서는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라고 말을 하는데, 여기는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예리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말을 하는 것이다. 불을 다스리는 천사는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83-5절에서『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면서 향로에 향을 피우고 제단에 피를 뿌리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기도를 하는 것이다.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는 대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불을 땅에 던지니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났다. 이 말은 사도행전에서 오순절에 성령이 불의 혀처럼 나타나는 것(하나님의 임재)으로 묘사했다. 오순절의 중요한 의미는 교회의 탄생(첫열매)을 의미한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주시는 임재의 장면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불을 다스리는 천사로 표현한 것이다. 첫열매(교회)의 추수를 위해 외치는 모습이다. 추수는 옛성전의 무너짐과 새성전의 세워짐이다. 성도 개인으로 볼 때는 옛사람의 죽음과 새사람의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19-20. κα βαλεν γγελος τ δρπανον ατο εἰς τν γν κα τργησεν τν μπελον τῆς γῆς κα βαλεν εἰς τν ληνν το θυμο το θεο τν μγαν.κα πατθη ληνὸς ξωθεν τῆς πλεως κα ξλθεν αμα κ τῆς ληνο χρι τν χαλινν τν ππων π σταδων χιλων ξακοσων.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개역개정)

그 천사가 자기의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즙 틀 속에 던지니 성 밖에서 그 포도즙 틀에 밟혔고 포도즙 틀에서 피가 흘러나와 말 굴레에까지 닿았으며 천육백 스타디온의 거리까지 퍼졌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틀에서 피가 났다. 포도주가 아니라 피가 나온 것이다. 피는 성도의 피이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두 짐승에 관한 것이고, 141-5절까지는 유대인 신자를 십사만 사천과 유대지파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처음 익은 열매로 표현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처음 익은 열매로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 교회(성도)가 마찬가지로 첫열매가 된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까지 40년간의 회개기간이 주어졌는데, 유대인들 중에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바로 메시야인줄을 깨닫고 회개하여 첫 열매가 된 것이다. 십사만 사천은 첫열매를 상징한다. 성소(하나님이 계신 곳)을 둘러싸는 열두 지파와 성소 주변에 12명의 레위 지파를 곱하면 십사만사천이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들어가는 자가 바로 십사만사천인 것이다.

146-7절까지는 첫째 천사가 심판의 때가 도래했다고 말을 하면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해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의 내용이 8절에서 바벨론(예루살렘 성)이 무너졌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9-11절에서는 육육육의 표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신다고 했다. 섞이지 않은 포도주로 표현되므로 강력한 심판을 의미한다. 짐승을 따르는 옛사람은 심판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12절에서 성도의 인내에 대해서 설명하고 13절에서는 주의 죽음 안에서 죽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포도주 틀에 짓밟히는 자는 성도들이다. 즉 포도(옛사람)가 틀에 밟히고 포도주(새사람)가 된 자들이 성도라는 말이다. 옛사람이 무너지고 새사람이 되는 모습이다. 성도의 옛사람이 죽어서 피가 된 것이 바로 포도주인 것이며, 이게 복음인 것이다. 성도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모습이다. 14절에서 추수이야기가 나오고, 14-20절까지는 주의 죽음 안에서 죽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그리스도는 성 밖에서 죽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죽는 모습이다. 히브리서 1311-15절에서『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사도행전 81절에서『사울은 그(스테판)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그러므로 성밖에서 죽는 것(옛사람의 죽음)은 구원인 것이다.

『말 굴레에까지 닿았고 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말 굴레는 멍애를 의미한다. 피가 말 키만큼 쌓인다는 것이다. 천육백 스타디온은 이스라엘 땅 전체를 의미한다. 사람의 키만큼 그리고 이스라엘 전역에 피로 덮힌다는 말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무너짐과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죽음은 성도들의 옛사람이 죽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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