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11장
1-2. Καὶ ἐδόθη μοι κάλαμος ὅμοιος ῥάβδῳ, λέγων· ἔγειρε καὶ μέτρησον τὸν ναὸν τοῦ θεοῦ καὶ τὸ θυσιαστήριον καὶ τοὺς προσκυνοῦντας ἐν αὐτῷ.καὶ τὴν αὐλὴν τὴν ἔξωθεν τοῦ ναοῦ ἔκβαλε ἔξωθεν καὶ μὴ αὐτὴν μετρήσῃς, ὅτι ἐδόθη τοῖς ἔθνεσιν, καὶ τὴν πόλιν τὴν ἁγίαν πατήσουσιν μῆνας τεσσεράκοντα [καὶ] δύο.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개역개정)
『또 내가 막대기 같은 갈대를 받으매 그 천사가 서서 말하기를, 일어나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 성전 밖에 있는 마당은 내버려 두고 측량하지 말라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주셨은즉 그들이
그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발로 짓밟으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성전을 측량하되(메트레데스 μετρήσῃς), 바깥은 측량하지 말라는 것이다. 성전과 재단을 측량하라는 말씀은 구약의 에스겔 40-48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성전을 측량하는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측량되는 성전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보호하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 성전은 하나님 나라이며, 성도를
의미한다.
성전은 하늘과 땅(우주)을 상징하기도 하고, 돌 성전인 예루살렘 성전을 나타내기도 하고, 성도의 심령 속의 성전을 나타내기도 한다.『하나님의 성전(투 나우)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투 나우(기본형은 나오스)는 성전의 성소 부분에 해당된다.
측량할 때는 소유권의 확인을 위할 때 하는 것이다. 측량도구는 지팡이(라피죠) 같은
갈대이다. 지팡이는 양을 칠 때 사용한다. 출애굽기 4장 17절에서『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모세가 지팡이를 땅에 던지므로 뱀이 되었다. 술사들도 막대기를 던지므로 뱀이 되었는데, 모세의 뱀이 술사의 뱀을
잡아 먹어버린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이와 같이 술사들이 던진 뱀과 같은 자이다. 술사의 뱀과 같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뱀에 먹혀야만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가짜들은 죽어야만 한다. 불뱀(사탄)과 놋뱀(그리스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뱀에 물려 죽지만, 놋뱀을
바라 볼 때 살아난다. 모든 인간은 불뱀에 물려 죽은 자인 것이다. 시편
23편 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지팡이는 갈대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측량하라는 것이다. 아모스 7장 7-9절에서『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다림줄을 가지고 쌓은 담 곁에 주께서 손에 다림줄을 잡고 서셨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다림줄이니이다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림줄을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 두고 다시는 용서하지 아니하리니 이삭의 산당들이 황폐되며 이스라엘의 성소들이 파괴될 것이라 내가 일어나 칼로 여로보암의 집을 치리라 하시니라』다림줄(아나크)은 건축할 때 수직으로 재는 기구이다. 수직이 되지 못하면 성전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서『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아들과 다림줄이 연관된다. 요한복음 12장
47-48절에서『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레마)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말(레마)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을 통해서 말은 성령(그리스도의 영)을 의미한다. 말씀이신 로고스 자체가 심판한다는 말이다. 로고스를 받을 때 그것이
그리스도의 영이 되는가 아니면 말로 끝나는가에 따라서 갈려지는 것이다. 심판은 분리를 의미한다. 로고스를 통해서 영을 받는 것이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과
분리되므로 심판인 것이다. 말씀이신 그리스도(호 로고스)가 다림줄인 셈인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다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들어올 때 구원받는 것이다. 내가 믿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생명이 들어올 때,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인하여 구원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지성소)과 제단(성소)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성전 바깥 마당(이방인의 뜰)은 측량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21장 24절에서『그들이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이면적으로는 교회에 대해서 말을 한다.
3. Καὶ δώσω τοῖς δυσὶν μάρτυσίν μου καὶ προφητεύσουσιν ἡμέρας χιλίας διακοσίας ἑξήκοντα περιβεβλημένοι σάκκους.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개역개정)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능을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 동안 예언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예루살렘
성이 짓밟히는 기간이 마흔 두달이라고 했다. 실제로 로마가 예루살렘 성을 마흔 두달 동안 포위했다고
한다. 마흔 두달은 삼년 반이다. 칠년의 절반이다. 즉 완전하지 못한 수이다. 야고보서 5장 17절에서『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비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비가
오지 않은 것은 말씀의 기갈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난무한 기간이다. 다니엘은
한때 두때 반때로 표현한다. 7장 25절에서『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요한계시록
12장 14절에서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그런데, 계시록 12장 6절에서는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광야에서
양육받는 기간이다.
마흔 두달은 짓밣히는 기간이다. 거짓선지자들의
활동기간이다. 1260일은 양육받는 기간이다. 두 증인이
활동한다. 두 증인은 회개의 복음을 전하는 선지자들이다. 참
선지자를 의미한다.
마른 두달은 달을 상징하고, 1260일은
해(헤메라)를 상징한다. 큰
광명체(해:복음)와
작은 광명체(달:율법)가
등장하는데, 큰 광명체는 영적으로 성숙한 자, 작은 광명체는
미성숙한 자(초등학문)를 의미한다. 골로새서 2장 8절에서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굵은 베옷은 거친(염소털이나
낙타 털로 만든 것) 베옷이다. 세례요한과 엘리야가 연상된다. 요나 3장 6절에서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회개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1장 21절에서『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예루살렘이 망하게 되었으므로, 세례요한이 회개를 선포했던 것이다.
두 증인은 교회를 회복하는 일과 관계가 깊다. 타락한 교회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회개가 필수적인 것이다. 예언은
회개에 대한 선포와 같은 의미다. 두 증인에서 둘이라는 의미는 다수의 복수의 의미다.
4. οὗτοί εἰσιν αἱ δύο ἐλαῖαι καὶ αἱ δύο λυχνίαι αἱ ἐνώπιον τοῦ κυρίου τῆς γῆς ἑστῶτες.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개역개정)
『이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올리브나무요 두 등잔대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스가랴 4장 1-6절에서 두 감람나무에 대해서 말을 한다. 두 감람나무는 유대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였다.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난 것 같더라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
하고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이르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하니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므로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스가랴
11-14절에서『내가 그에게 물어 이르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이르되 금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니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하는지라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이르되 이는 기름 부음 받은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서 있는 자니라 하더라』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에
멸망당하여 포로로 많이 잡혀갔는데, 고레스 왕때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래서 성전을 회복하는 것이다.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 유대 총독이었던
스룹바벨과 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였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물어보는데, 천사가
두 감람나무(올리브 나무)가 이 두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에서는 교회를 회개로 회복하게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다. 회개의
복음을 선포하는 자를 의미한다.
5.καὶ εἴ τις αὐτοὺς θέλει ἀδικῆσαι πῦρ ἐκπορεύεται ἐκ τοῦ στόματος αὐτῶν καὶ κατεσθίει τοὺς ἐχθροὺς αὐτῶν· καὶ εἴ τις θελήσῃ αὐτοὺς ἀδικῆσαι, οὕτως δεῖ αὐτὸν ἀποκτανθῆναι.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개역개정)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의에서 벗어나게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들의 원수들을 삼킬 것이요, 또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헬라어 번역성경)
『만일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이렇게 번역된 것은 수정이 필요하다. 공의에서 벗어나다(아디케다이 ἀδικῆσαι 기본형은 아디케오) 라는 의미다. 칠십인경에 따르면 히브리어 하타에서 번역한 것이아디케오이다. 사무엘하 24장 17절에서『다윗이 백성을 치는 천사를 보고 곧 여호와께 아뢰어 이르되 나는 범죄하였고(하타)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양 무리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소서 하니라』하타는 하나님께 대항하여 죄를 범하는 것을 의미한다. 죄는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이탈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된다. “만일 누구든지 그들(두 증인)을 의에서 벗어나게 하면”이라고 수정되어야 한다. 복음을 전하는
두 증인을 진리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것은 타락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의 원수를 삼켜 버릴 것이요(2068)』불은 하나님의 임재(구원또는 심판)를 의미한다. 알곡과
가라지로 나뉘어 지는 것이다. 누가복음 12장 49-50절에서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예수님이 진리를 선포하시므로 진리에 속하는 것과 비진리에 속하는 것으로 둘로 나뉘게 된다. 그래서 분쟁이 생긴다. 말이 곧 심판의 근거가 된다.
야고보서 3장 6절에서『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3장 10절에서는『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두 증인의 입에서 나오는 불은 진리의 말씀인 것이다. 진리의 말씀이 원수를 삼켜버린다. 삼켜버린다는 말은 참된 말을 전하는
자의 반대편(진리를 대적하는 무리)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6절에서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그와
같이” 라고
되어 있는데, “이와
같이”(후토스) 이다. 후토스는 앞의 방법과 같이 라는 말이다. 앞의 방법은 진리의 말씀으로 삼켜버리는 것이다. 십자가로 원수된
것을 죽이는 것이다. 결국 화목이 된다. 고린도후서 3장 6절에서『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에베소서 2장 14-16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두 증인이 진리의 말씀으로 유대주의자들을 영적으로 이길 것이다. 이기는 이유에 대해서
11장 6절에서 권능으로 설명하고 있다.
6. οὗτοι ἔχουσιν τὴν ἐξουσίαν κλεῖσαι τὸν οὐρανόν,
ἵνα μὴ ὑετὸς βρέχῃ τὰς ἡμέρας τῆς προφητείας αὐτῶν,
καὶ ἐξουσίαν ἔχουσιν ἐπὶ τῶν ὑδάτων στρέφειν αὐτὰ εἰς αἷμα καὶ πατάξαι τὴν γῆν ἐν πάσῃ πληγῇ ὁσάκις ἐὰν θελήσωσιν.
『그들이 권능을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개역개정)
『이들이 하늘을 닫을 권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자기들이 예언하는 날들에 비가 내리지 아니하게 하고 또 물들에
대한 권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들을 피로 변하게 하며 언제든지 자기들이 원하는 때에 모든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헬라어 번역성경)
권능(텐 엑수시안: τὴν ἐξουσίαν)은 비가 오지 못하게 한 것도 엘리야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적용하고 있다. 물을 피로 변하게 하는 것은 모세의 이야기다. 권능은 귀신을 내쫒는
이야기인데, 이들은 대적하는 영이다. 그래서 권능은 진리의
말씀이다. 진리의 말씀이 심령 속에 들어가면 거짓의 영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 권능은 하늘을 닫을 권능을 가지고 있다. 요한계시록 3장 7-8절에서『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하늘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성도가 스스로 성전을 닫았다가 열었다가 하는
것이다. 이게 권능이다. 참 진리의 말씀으로 성전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진리의 말씀을 받을 때 열리는 것이고,
받지 않을 때 닫혀버리는 것이다. 열리므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 오는 것이다.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엘리야의 사건을 연결시킬 수 있다. 누가복음 4장 24-27절『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가뭄이 왔는데, 엘리야는 환영받지 못하고(말씀을 받지 못하고) 오직 한 과부에게만 말씀이 임한 것이다. 가뭄은 진리의 말씀의 기갈을 의미한다.
『또 권능을 가지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모세를 연상한다. 재앙은 헬라어 플래즈(때리다
타격을 입히다)의 동사에서 나온 명사형이다. 히브리어에서는
야차르이다. 흙으로 사람을 빗다 라는 의미다. 여러가지 재앙으로
애굽 땅을 치는 것은 야차르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을 흙속에 가두는 것이 재앙인 것이다. 그래서 흙으로 빗는 것은 흙속에 영을 가두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1서 5장 6-8절에서『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성령과 물과 피는 모두 말씀을 의미한다.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가 두 증인이 되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율법(피)에서 복음(물)으로 복음에서 성령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정반대로 나가면 재앙이 된다. 그래서 애굽에서는 물이 피로 변하는 것이다. 피가 물로 되어야 하는데, 정반대인 것이다. 오늘날도 복음에서 다시 율법으로 들어가면 재앙이
된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의 피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넘어서 말씀 속으로 들어가야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7. Καὶ ὅταν τελέσωσιν τὴν μαρτυρίαν αὐτῶν, τὸ θηρίον τὸ ἀναβαῖνον ἐκ τῆς ἀβύσσου ποιήσει μετ’ αὐτῶν πόλεμον καὶ νικήσει αὐτοὺς καὶ ἀποκτενεῖ αὐτούς.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개역개정)
『그들이 자기들의 증언을 마칠 때에 바닥없는 구덩이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을 대적하며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죽이리니』(헬라어 번역성경)
시제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그들이(두 증인) 그 증언을 마칠 때에(과거)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현재분사)
짐승(거짓선지자)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미래) 그들을 이기고(미래) 그들을 죽일(미래) 터인즉』무저갱은
타락한 성전(교회)를 상징한다. 그곳에는 말씀의 생수가 없다. 황충과 같은 거짓 선지자들이 두 증인과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말이다. 거짓 선지자들이 참 진리를 전하는 두 증인인 성도를 이기고 죽일 것이라는
말이다. 영적으로 육적으로 전쟁을 해서 죽이는 것이다.
8. καὶ τὸ πτῶμα αὐτῶν ἐπὶ τῆς πλατείας τῆς πόλεως τῆς μεγάλης, ἥτις καλεῖται πνευματικῶς Σόδομα καὶ Αἴγυπτος, ὅπου καὶ ὁ κύριος αὐτῶν ἐσταυρώθη.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개역개정)
『그들의 죽은 몸이 그 큰 성의 거리에 놓이리라 그 도시는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이라고 하며 그곳은 또한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헬라어 번역성경)
예루살렘이
영적으로 소돔과 애굽과 같은 곳이라는 말이다. 유대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간의 영적 전쟁인 것이다. 두 증인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이다. 그래서
십자가와 연합된 자들인 것이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에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셨지만, 그와 연합되는 자도 예루살렘에서 죽은 것이다. 마태복음 23장 37절에서『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교회의 거짓선지자들은 소수의 진리를 전하는 자들을
죽이는 것이다.
죽은 두 증인(참된 신자)이 교회로부터 쫒겨나 큰 성 길에 시체로 누워있는 모습이다. 예루살렘
성전이 겉으로는 성전이지만 사실상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가 거룩한 성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 성전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돔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곳이고, 애굽은 열가지 재앙을 받은 곳이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곳이라는 의미다.
9-10. καὶ βλέπουσιν ἐκ τῶν λαῶν καὶ φυλῶν καὶ γλωσσῶν καὶ ἐθνῶν τὸ πτῶμα αὐτῶν ἡμέρας τρεῖς καὶ ἥμισυ καὶ τὰ πτώματα αὐτῶν οὐκ ἀφίουσιν τεθῆναι εἰς μνῆμα.καὶ οἱ κατοικοῦντες ἐπὶ τῆς γῆς χαίρουσιν ἐπ’ αὐτοῖς καὶ εὐφραίνονται καὶ δῶρα πέμψουσιν ἀλλήλοις, ὅτι οὗτοι οἱ δύο προφῆται ἐβασάνισαν τοὺς κατοικοῦντας ἐπὶ τῆς γῆς.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보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사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사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개역개정)
『백성들과 족속들과 언어들과 나라들 중에서 나온 자들이 그들의 죽은 시체를 사흘 반 동안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으므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그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온 세계 사람들이 두 증인을 비난하는 모습이다. 그 이유는 두 증인이 세상 사람들을 회개를 외치면서 괴롭게 하였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노아가 120년간 회개를 외쳤지만, 가족 7명 외에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가 없었다. 그들이 두 증인의 죽음을 보고 기뻐하는 것은 모든 교회들이 함께 회개를 외치는 참 신자들을 오히려 핍박하는 모양이다.
11-12. Καὶ μετὰ τὰς τρεῖς ἡμέρας καὶ ἥμισυ πνεῦμα ζωῆς ἐκ τοῦ θεοῦ εἰσῆλθεν ἐν αὐτοῖς, καὶ ἔστησαν ἐπὶ τοὺς πόδας αὐτῶν, καὶ φόβος μέγας ἐπέπεσεν ἐπὶ τοὺς θεωροῦντας αὐτούς.καὶ ἤκουσαν φωνῆς μεγάλης ἐκ τοῦ οὐρανοῦ λεγούσης αὐτοῖς· ἀνάβατε ὧδε. καὶ ἀνέβησαν εἰς τὸν οὐρανὸν ἐν τῇ νεφέλῃ, καὶ ἐθεώρησαν αὐτοὺς οἱ ἐχθροὶ αὐτῶν.
『삼 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개역개정)
『사흘 반이 지난 뒤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명의 성령께서 그들 속에 들어가시므로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 그들을 보던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들이 하늘로부터 자기들에게, 여기로 올라오라 말씀하시는 큰 음성을 듣고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바라보더라.』(헬라어 번역성경)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늘(우라노스 τοῦ οὐρανοῦ) 구름(테 네페레 τῇ νεφέλῃ)은 상징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문자적으로 보는 자들은 천체의
상황으로 이해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하늘과 구름은 부활과 승천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서는
하늘과 구름이 단수로 사용되었다. 하늘은 지성소를 상징한다. 구름은
여호와의 임재, 말씀, 성령을 상징한다. 그러나 복수로 사용되면 성도의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게 된다.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라고 번역된 것은 구름
속에서 하늘로 올라가니 라고 되어야 한다. 속에서 또는 안에서 라는 것은 엔이라는 전치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승천의 개념이다. 아네베산(ἀνέβησαν 기본형은 아나바이노)은 올라가다 라는 의미다. 요한계시록 4장 1절에서『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아나바이노)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올라오라는 말은 승천의 개념이다. 승천은 육체가 올라가는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개념인 것이다. 여기에서는
두 증인의 승천이다.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이다. 즉 오늘날
성도를 의미한다. 성도 역시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 부활과 승천이 있음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사람들의 대부분은 부활을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오해하고 있는데,
분명히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휴거라는 용어도 이와 연계해서 믿고 있는 것이다.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생명)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또 함께 일으키사(부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톤 우라논)에 앉히시니(승천)』하늘(복수)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은 전체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상징한다. 31-32절에서『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톤 우라논)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여기도 톤 우라논은 심령 속의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13. Καὶ ἐν ἐκείνῃ τῇ ὥρᾳ ἐγένετο σεισμὸς μέγας καὶ τὸ δέκατον τῆς πόλεως ἔπεσεν καὶ ἀπεκτάνθησαν ἐν τῷ σεισμῷ ὀνόματα ἀνθρώπων χιλιάδες ἑπτὰ καὶ οἱ λοιποὶ ἔμφοβοι ἐγένοντο καὶ ἔδωκαν δόξαν τῷ θεῷ τοῦ οὐρανοῦ.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개역개정)
『바로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그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으로 죽은 자들이 칠천 명이었더라. 그 남은 자들이 놀라며 하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지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마태복음 28장 2-3절에서『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예수님의
부활 때 지진이 난 것이다. 사도행전 16장 26절에서『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요한계시록 6장 12절『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마태복음 27장 51-54절에서『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예수님의 제자를 지칭)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로마 군인이 하나님의 임재를 인정하는 모습이다. 십자가 앞에서 도망갔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이 어둠(무덤)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을 말해준다.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성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하며, 오늘날 성도에게는
옛사람의 성전을 의미한다. 십분의 일은 십일조와 관계된다. 십일조는
십분의 일이라는 의미지만 전체를 대표하는 표현이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칠천이라 ὀνόματα ἀνθρώπων χιλιάδες ἑπτὰ』개역개정의 번역은 마치 칠천명으로 되어있지만, 칠천명이 아니라 이름이 칠천이라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바알에 무릎꿇지
않은 자가 칠천이었다고 한다. 열왕기상 19장 18절에서『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칠천은 하나님의 맹세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맹세가
이루어진 남은 자를 총칭해서 칠천이라고 한다. 죽었다는 말은 물리적으로 죽이는 것이고, 영적으로 죽이는 것은 에베소서 2장 14-16절에서『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십자가에서 원수된 것을 죽이는 것이다. 죽은 자는 성도의 옛사람이 죽은 것이고, 그래서 새사람으로 부활하여 승천한 진실한 성도(칠천)를 의미하는 것이다. 칠천이라는 성도의 옛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라는 것을 회개의 개념으로 말을 한다. 회개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한다.
14-17. Ἡ οὐαὶ ἡ δευτέρα ἀπῆλθεν· ἰδοὺ ἡ οὐαὶ ἡ τρίτη ἔρχεται ταχύ.Καὶ ὁ ἕβδομος ἄγγελος ἐσάλπισεν· καὶ ἐγένοντο φωναὶ μεγάλαι ἐν τῷ οὐρανῷ λέγοντες· ἐγένετο 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κόσμου τοῦ κυρίου ἡμῶν καὶ τοῦ χριστοῦ αὐτοῦ, καὶ βασιλεύσει εἰς τοὺς αἰῶνας τῶν αἰώνων.Καὶ οἱ εἴκοσι τέσσαρες πρεσβύτεροι [οἱ] ἐνώπιον τοῦ θεοῦ καθήμενοι ἐπὶ τοὺς θρόνους αὐτῶν ἔπεσαν ἐπὶ τὰ πρόσωπα αὐτῶν καὶ προσεκύνησαν τῷ θεῷ λέγοντες·εὐχαριστοῦμέν σοι, κύριε ὁ θεὸς ὁ παντοκράτωρ, ὁ ὢν καὶ ὁ ἦν,
ὅτι εἴληφας τὴν δύναμίν σου τὴν μεγάλην καὶ ἐβασίλευσας.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개역개정)
『둘째 화는 지나갔으며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임하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있어 이르되 이 세상 왕국들이 우리 주와 그분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었고 그분께서 영원무궁토록 통치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리에 앉아 있던 스물네 장로가 엎드려 얼굴 위의 하나님께 경배하며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주 하나님 전능자이시여,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앞으로 오실 주께서 친히 주의 큰
권능을 취하시고 통치하심이니이다.』(헬라어 번역성경)
8장 13절『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 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첫째 화는 다섯번째 나팔과 연계된다. 다섯번째 나팔을 부니 무저갱으로부터 황충(거짓 선지자)이 올라오는데, 수가 많고 영혼들을 잡아 먹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그로 인해 신도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는 것이다. 두번째 화는 여섯번째
나팔이다. 이만만 군대의 내용이 등장한다. 이만만은 사탄의
군대이며, 거짓 영들(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비진리가 나오므로 많은 사람들이 사망으로 가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머리는 뱀이고 뱀의 말을 하고 뱀의 도구로 사람을 해하는 것이다. 의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다. 회개를 강조하는 것이다.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과
연합되는 것이다. 비진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는 생활을 하므로 복음을 거부하는 것이다. 10장에서 11장 13절까지
작은 책과 두 증인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작은 책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복음을 의미하고, 두 증인은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말한다.
첫째
나팔은 전쟁에 사용되었고, 두번째 나팔은 임박한 심판에 대하여 회개를 촉구할 때 사용되었다. 세번째 나팔은 하나님의 임재를, 네번째 나팔은 예배나 전쟁 등의
경우 회중을 모을 때 나팔을 불렀다.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셋째 화는 일곱째 나팔과 연결된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그리스도가 왕노릇하기 때문에
화가 된다.
일곱
째 나팔은 왕이 새롭게 부임할 때 불었다. 이스라엘에서 나팔절은 새해가 되면 나팔을 분다. 이스라엘은 종교력으로 신년을 티쉬일 이라고 한다. 태양력으로는 9월말이나 10월 초쯤 된다. 새해에
나팔을 부는 것은 여호와께서 왕으로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감사하옵나니』이십사 장로는 구약의 성막에 배치된
열두 지파들을 의미한다. 가운데는 레위인이 성소를 둘러쌌다. 그래서
열두 지파와 열두명의 레위인을 합하여 이십사가 되는 것이다. 제사장 반열이 이십사 반열이고, 찬양대도 이십사 반열이다. 요한계시록 21장 에서는 열두 제자와 열두 지파로 변경된다. 이렇게 이십사는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을 상징하는 숫자가 된다. 이 숫자는 신약에서 왕 같은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 표현된다. 왕들 위에 왕이라는 것이다. 성도가 왕이고 예수님이 왕의 왕이라는 표현이다.
감사하다(유카리스투멘 εὐχαριστοῦμέν)에 대해서, 마태복음 26장
26-27절에서『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유카리스테사스)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고린도전서 11장 24절에서도『축사하시고(유카리스테사스)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그래서 감사하다 라고 표현된 것은 성찬의 축사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찬은
천국 음료를 마시는 것이다. 말씀을 생명으로 먹고 마시면 그것이 성찬인 것이다.
두 증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부활한 자(교회)를
상징한다. 두 증인 하늘로 올라갔는데, 하늘에서 보이는 모습이
바로 11장 14-17절의 모습인 것이다. 이 장면은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경배(예배) 장면이다. 휘장이 찟어지면서 이루어지는 예배인 것이다. 성도가 드리는 예배가 바로 이런 모습인 것이다. 왕 같은 제사장인
성도가 휘장이 찟어지면서 지성소로 들어가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성도가 그 현장에 있는 것이다. 이게 성도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런 성도에 대해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골로새서 3장 10절에서『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말을 한다.
일곱째 나팔을 불면 성도가 이렇게 새롭게 되는 것이다. 마치 여리고성이 무너지는 것 같이
성도의 심령 속에 옛사람이 무너지고 새사람의 성전이 세워지는 것이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 일곱번을
돌았는데, 이는 천지 창조 칠일을 연상한다. 가장 앞장 선
것이 언약궤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데, 이는 성도에게 언약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다. 잠잠하던
백성들이 칠일에 큰 소리로 외친 것이다. 본인에게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 성도 본인이 말씀에 화답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령 속의 휘장이 찢어지는
모습이다.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은 찬양의 모습이다.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의 대관식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는 자기 보좌에서 내려와 그리스도를 경배하는 것이다. “지금도 오시고 계시는” 미래 부분이 빠져있는
듯 하다. 왜냐하면 일곱 째 나팔이 불었으므로 성취되었기 때문이다.
18. καὶ τὰ ἔθνη ὠργίσθησαν, καὶ ἦλθεν ἡ ὀργή σου καὶ ὁ καιρὸς τῶν νεκρῶν κριθῆναι καὶ δοῦναι τὸν μισθὸν τοῖς δούλοις σου τοῖς προφήταις καὶ τοῖς ἁγίοις καὶ τοῖς φοβουμένοις τὸ ὄνομά σου,τοὺς μικροὺς καὶ τοὺς μεγάλους, καὶ διαφθεῖραι τοὺς διαφθείροντας τὴν γῆν.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카이로스 καιρὸς)로소이다 하더라』(개역개정)
『나라들이 분노하매 당신의 진노가 이르렀고 죽은 자들의 때가 이르렀으니 이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요, 또 주께서 주의 종 예언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보상을
주려 하심이며 또 땅을 파괴하는 자들을 멸하려 하심이니이다 하더라.』(헬라어 번역성경)
심판과
구원의 때를 그리고 있다. 여리고 성이 함락될 때 기생 라합이 구원(복음)을 받았다. 그러나 그곳의 왕들은 재앙이었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저주가 된다. 그래서 성경은 복과 저주가 함께
하는 것이다. 성경을 율법(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으로 받아드리는 자는 저주가 되고, 생명 나무로 받아드린 자는 복음이
되는 것이다. 유대주의자들에게는 재앙으로 된다. 마태복음
23장 35-36절에서『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카이로스 καιρὸς)로소이다
하더라』크로노스는 인간의 때를 의미하지만, 카이로스는 하나님의 때를 의미한다. 카이로스의 때에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에게는 상을 주시고, 죽은
자들은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이름(오노마)을 경외하는 것은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소중히 여기다 라는 의미다. 주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참 선지자, 성도라고 표현되고, 그렇지
못한 자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땅을 망하게 하는 자”에서
땅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죽음은 영적으로 죽은 것이다. 죽은
자가 네크로스이다. 영적으로 죽은 자들(유대주의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망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인본주의 율법주의
영지주의로 복음을 변질하는 자들은 교회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심판이 이루어진다. 마태복음 21장 43절에서『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그러나 성도는 심령 속에 성전이
세워지면 주님이 호 로고스로 임재하여(파루시안) 오시는 것이다. 성도의 옛성전이 무너지고 새성전이 세워지면 그것이 예수님의 재림인 것이다. 새성전이
새하늘과 새땅이며, 에덴동산이며, 천년왕국이며, 셋째 하늘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서『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라고 말을 한다.
19. Καὶ ἠνοίγη ὁ ναὸς τοῦ θεοῦ ὁ ἐν τῷ οὐρανῷ καὶ ὤφθη ἡ κιβωτὸς τῆς διαθήκης αὐτοῦ ἐν τῷ ναῷ αὐτοῦ, καὶ ἐγένοντο ἀστραπαὶ καὶ φωναὶ καὶ βρονταὶ καὶ σεισμὸς καὶ χάλαζα μεγάλη.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개역개정)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렸는데 그분의 성전 안에 그분의 언약 궤가 보이며 또 번개들과 음성들과
천둥들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헬라어 번역성경)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호 데오스의 하늘이 열린 것이다. 지성소가 열리므로 언약궤가 보인다. 번개와 우레, 지진, 우박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몸은 예루살렘 돌 성전과 같은 개념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돌로
만들어진 성전의 효력이 상실된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40년이 지나서 예루살렘 성전이 A.D. 70년 경에 무너진 것(확정)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기 위한 유예기간을
주신 것이다. 40년은 유예기간으로 불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성전이 무너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진
것이다. 마태복음 27장 51절에서『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휘장이 찟어진 것은 하늘이 열린 것이다.
그래서 성도의 영안이 열리는 것이다. 27장 52-53절에서는『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을 부는 것은 하나님의 비밀이 알려진 것이다. 요한계시록 10장 7절『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의 나팔을 불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그 비밀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하나님의 비밀은 골로새서 1장 26절에서『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비밀은 성도에게 나타난 그리스도이시다. 골로새서
2장 2-3절에서『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면 그리스도와 교회(성도)와의 관계를 알게 된다. 에베소서 5장 32절에서『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비밀에 대해서 첫사람 아담과 함께 온 영들이 마지막 사람 아담과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 비밀인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떠난 영들은 여자이지만, 그리스도를
만나면 한 남편의 아내가 된다. 그래서 에베소서 5장 33절에서『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라고 말을 한다.
교회는 성전이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성전은 성도의 심령 속에 있는 지성소를 의미한다. 히브리서 10장 16-20절에서『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또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에베소서
2장 21-22절에서『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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